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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적 Mar 03. 2020

집사의 계획

나른한 c




1차선 도로 위, 몸을 닦던 c의 고개가 자꾸만 접힌다. 요즘엔 먹기만 하면 눈이 감긴다. c는 달라진 게 세월뿐이라는 생각에 괜스레 나이를 탓해본다. 어젯밤은 모처럼의 회식이었다. 무엇을 먹었는지 들키지 않기 위해 검은 봉투에 넣고 불투명 봉투에 담아온 음식. 보이는 게 다가 아니란 걸 알지만 매번 보이는 것에 의존한다. 한 입에 넣기에도 힘들고 혼자 먹기에도 벅찬 양이었다. c가 자신의 몫만큼을 끌어안자 이내 허기진 손들이 c를 앞지른다. 바닥에 툭툭 떨어진 침을 보니 s도 왔나 보다.


s는 유난히 경계심이 많았다. 다른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했고,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말들은 계절을 타지 않고 무성해졌다. 다른 동네에서 끔찍한 일을 벌이고 쫓겨났다더라. 부모가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떠돌이가 되었다더라. 무시무시한 전염병에 걸려 가까이 가면 피부에 고름이 차고 눈이 멀게 된다더라. s에 대한 이야기가 c의 귀에 닿았을 땐 모두가 s를 피하고 있었다.


c의 동네는 매스컴을 통해 보이는 자극적인 동네들과는 달랐다. 추운 겨울이면 바람을 피할 집이 있었고, 약속된 장소에 가면 항상 먹을 것이 있었다. 살기 좋은 동네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주변 동네에서 이사 오는 이들도 늘었다. 보통은 혼자 와서 짝을 짓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마을의 아이가 되어 따뜻한 보살핌을 받았다. s만 빼고.


s는 차려진 음식엔 손도 대지 않고 항상 길거리 음식만 찾아다녔다. 주변에서는 s를 이해할 수 없다고, 동네의 분위기를 망친다고 말이 많았다. 하지만 정작 s에게 말을 전하거나 행동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s는 거리로 나갔다. 편안함보다는 모험을 택한 삶이었다. c가 볼 때는 s의 삶이 위태로워 보였다. 그리고 그가 궁금하기도 했다. s에게도 분명 사정이 있을 것이다.


최근 새롭게 약속된 장소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공기를 가른다. 겹겹이 쌓인 벽 너머로 s가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적어도 10명은 먹을 수 있을 음식과 미지근한 물을 바닥에 쏟고는 발로 차고 있었다. 막 음식을 입에 넣으려던 b는 참지 못하고 s와 길바닥에 뒤엉켰다. 그 뒤로 줄을 섰던 이들은 말리거나 합류하지도 못하고 가만히 지켜보고만 섰다. 속으로는 다들 b가 s를 제압하여 s가 도대체 왜 그랬는지 그 이유라도 듣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모두의 간절함은 신에게 닿지 않고 되돌아왔다. 손질되지 않은 손톱으로 b의 이마와 옆구리 살을 뜯은 s는 피와 물이 섞인 바닥을 밟으며 자리를 떠났다.


그 후로 b의 모습은 동네에서 보이지 않았다. 포악한 s의 모습을 보았던 이들도 하나둘씩 동네에서 자취를 감췄다. 항상 먹을 것으로 채워져 있던 약속의 장소의 음식들도 더 이상 줄지 않았다. c는 도저히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도로로 몸이 떨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평소와 달리 몸을 많이 움직인 것도 아니고, 최근 잠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예측 가능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다만 s와 b의 다툼이 있었던 현장을 다음 날 다시 찾아 목을 조금 축인 것 말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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