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라는 건 정말 신비한 일인게, 숙제처럼 주어지면 죽었다가 깨어나도 하기 싫었다가도 마음이 갈 때는 쓰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나의 글쓰기에도 이 두 속성이 가득하다. 처음 글을 쓸 적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숙제같았다. 몇 주간 날씨만 체크된 일기장을 볼 때면 숨이 턱 막히고 벌써부터 하기 싫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이와 반대로 쓰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때도 생겼다. 수업 시간에 생각한 상상이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쓰는 편지나 다친 마음과 반쯤 눈물 고인 눈으로 쓴 일기나 잠이 오지 않을 때 회색 하늘에 쓰여진 글자들이 그랬다.
종종 나에게는 그 두 순간이 맞물려서 대단히 좋은 시절도 있었다. 17살 쯤이었나 나는 그 때 내가 글쓰기의 귀재인 줄 알았다. 꽤 자주 쓰지 않고는 온 몸이 간지러워지는 순간이 찾아왔으며, 우연치 않게 꼭 싸야하는 순간과 잘 맞아 떨어졌다. 그럴 때면 운 좋게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타는 것도 가능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상을 타기 시작하니까 울퉁불퉁 못쓴 글은 그 어디에서 찌끄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못생기고 울퉁불퉁한 글자들이 어쩌다 마주쳐 생긴 우연의 칭찬에 나는 이제 더는 스스로 글쓰기를 좋아하지 못하는 멍청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쓸모 있는 글자들을 골라내느라 쓸모 없지만 반짝거리는 마음과 두 손가락과 글자들과 어쨌든 그 것들을 내팽개쳐 버린 채로 나는 그렇게 둥둥 떠다니며 꽤 괜찮은 것들을 찾아 헤맸다. 나의 10대와 20대는 그렇게 흘러갈 줄 알았다.
내가 조금 더 마구잡이로 글자를 적게 된 건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쓰게 되면서다. 글이라는 건 정말 용도도 다양해서 멋진 글자를 골라내는 일에 투자하는 시간보다 빠르게 써내야 하는 시간이 더 소중한 순간이 찾아오고 그럴 때마다 나는 돈을 받고 이런 글을 판다는 것에 대한 자괴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게 조금씩 글이 팔려갈쯤, 나는 아무렇게나 쓸 수 있게 됐다. 오히려 아무렇게나 쓴 것들이 더 솔직하고 투명하며 맛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쓴 글들에 의탁해 나의 돈벌이도 시작됐다.
하루가 끝날 때 쯤이면 나는 아무렇게나 글쓰는 시간을 찾는다. 이제는 루틴처럼 익숙해져서 나 뿐만 아니라 내 주위사람들도 하나 둘 등장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실 하나만큼은 기꺼웠다.
나의 글쓰기와 하루의 역사가 만나는 지점. 나는 오늘 그 지점에 섰다. 돈을 받고 파는 글을 스스로 잊었을 때쯤, 그렇게 나는 다시 하루의 역사와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