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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미리 Jan 03. 2022

나와 글쓰기와 하루의 역사

글쓰기라는 건 정말 신비한 일인게, 숙제처럼 주어지면 죽었다가 깨어나도 하기 싫었다가도 마음이 갈 때는 쓰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나의 글쓰기에도 이 두 속성이 가득하다. 처음 글을 쓸 적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숙제같았다. 몇 주간 날씨만 체크된 일기장을 볼 때면 숨이 턱 막히고 벌써부터 하기 싫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이와 반대로 쓰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때도 생겼다. 수업 시간에 생각한 상상이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쓰는 편지나 다친 마음과 반쯤 눈물 고인 눈으로 쓴 일기나 잠이 오지 않을 때 회색 하늘에 쓰여진 글자들이 그랬다.


종종 나에게는 그 두 순간이 맞물려서 대단히 좋은 시절도 있었다. 17살 쯤이었나 나는 그 때 내가 글쓰기의 귀재인 줄 알았다. 꽤 자주 쓰지 않고는 온 몸이 간지러워지는 순간이 찾아왔으며, 우연치 않게 꼭 싸야하는 순간과 잘 맞아 떨어졌다. 그럴 때면 운 좋게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타는 것도 가능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상을 타기 시작하니까 울퉁불퉁 못쓴 글은 그 어디에서 찌끄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못생기고 울퉁불퉁한 글자들이 어쩌다 마주쳐 생긴 우연의 칭찬에 나는 이제 더는 스스로 글쓰기를 좋아하지 못하는 멍청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쓸모 있는 글자들을 골라내느라 쓸모 없지만 반짝거리는 마음과 두 손가락과 글자들과 어쨌든 그 것들을 내팽개쳐 버린 채로 나는 그렇게 둥둥 떠다니며 꽤 괜찮은 것들을 찾아 헤맸다. 나의 10대와 20대는 그렇게 흘러갈 줄 알았다.


내가 조금 더 마구잡이로 글자를 적게 된 건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쓰게 되면서다. 글이라는 건 정말 용도도 다양해서 멋진 글자를 골라내는 일에 투자하는 시간보다 빠르게 써내야 하는 시간이 더 소중한 순간이 찾아오고 그럴 때마다 나는 돈을 받고 이런 글을 판다는 것에 대한 자괴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게 조금씩 글이 팔려갈쯤, 나는 아무렇게나 쓸 수 있게 됐다. 오히려 아무렇게나 쓴 것들이 더 솔직하고 투명하며 맛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쓴 글들에 의탁해 나의 돈벌이도 시작됐다.


하루가 끝날  쯤이 나는 아무렇게나 글쓰는 시간을 찾는다. 이제는 루틴처럼 익숙해져서  뿐만 아니라  주위사람들도 하나  등장시킬  있게 되었다.  사실 하나만큼은 기꺼웠다.


나의 글쓰기와 하루의 역사가 만나는 지점. 나는 오늘 그 지점에 섰다. 돈을 받고 파는 글을 스스로 잊었을 때쯤, 그렇게 나는 다시 하루의 역사와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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