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망한 기억을 날리기 위한 기록
기왕 눈물이 많을 거라면 잘 털어내기라도 하면 좋겠는데, 나는 좋은 추억도 싫은 기억도 좀처럼 잊지 못하고 차곡차곡 끌어안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것들은 햇살이 드는 조용한 방에서, 응시하던 아이패드 화면 너머로, 겨우 잠든 날 꿈속에서 무작위로 튀어나오곤 한다. 아마 이 날의 기억도 언젠가 별생각 없이 뒹굴대는 와중에 갑자기 떠올라 이불을 발로 차올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능숙하지 못한 언어로 몇 번이고 같은 말을 주워섬긴 탓일까? 준비한 것은 많았지만 대화를 시작한 지 반 시간도 지나지 않아 다 소용없는 것이 되었다. 그녀는 이야기를 끊고 바로 그 자리에서 나의 부족한 부분을 짚어주었는데 그게 또 틀린 말은 아니라, 낯뜨거움을 누르고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나라 사람들의 화법 치고는 조심스레 표현하려는 노력이 차라리 고마웠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방구석에서 메일을 열어보고 혼자만의 청승맞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적응이나 되었지 면전에서 당신은 우리와 함께 할 수 없다 통보당하는 것은 참으로 새로운 경험이었다. 나는 이제 널리고 널린 서바이벌 프로그램 탈락자들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로의 입장을 잘 설명하고 마무리했기 때문에 썩 나쁜 기분도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전원을 끄고 보니 까만 노트북 화면 속에는 어딘지 영 민망한 표정의 내가 있었다. 여러 감정이 섞인 어색한 얼굴의 나와 마주했던 그 순간을 십 년 후의 나는 어떻게 추억하고 있을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나는 주말 낮 마트 주차장에 들어와 내게 필요한 빈자리가 생길 때까지 빙글빙글 돌며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빈자리인 줄 알고 다가가면 작은 차 한 대가 숨어있듯 서 있기도 하고, 실제로 비어 있지만 폭이 너무 좁아 들어서지 못하는 공간이 있기도 하다.
주차 구역에 들어찬 차들은 나름대로의 볼일을 보고 있으므로 그들을 원망할 것도 아니고, 내 차가 너무 못난 나머지 마트 직원들이 그들의 주차장에 내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냥 우연히 손님이 박 터지는 시간대에 방문한 것뿐이니까. 초보운전 주제에 조바심 내다 어딘가 긁어먹을 바에야 라디오나 들으며 조금 더 천천히 돌아보려고 한다. 언제나 그랬듯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차 한 대쯤은 편히 댈 곳이 나타날 거라고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