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핸곰곰 Jul 02. 2019

스위스의 작은 한국에 삽니다

스위스에 산다고 하기는 쫌 그렇네요.

한동안 상승세였던 프랑스어 실력이 다시 고꾸라지고 있다.

이게 다 인터넷이 제공하는 작은 한국의 안락함에 푹 빠져버린 탓이다. 전자책 구독 서비스, 이메일 일간 연재,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팟캐스트... 심지어 내가 직접 그려 올리는 인스타그램 그림일기 100일 챌린지까지. 한국에서도 이렇게 한국어에 몰입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없다고 한들, 나에게는 이미 7년 넘게 아무말 상대로 서로를 길들인/서로에게 길들여진 짝꿍이 있다.

기껏 외국인 체험을 하는데 왜 일상을 한국어로 채우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하고 이해가 안 간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영화 <미쓰 홍당무>의 양미숙이 말했다. “사람이 비상식적인 행동을 할 때는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잖아요. 선생님.”

비상식적인 행동도 그럴진대, 이건 그렇게까지 비상식적이지도 않다.

(현지 언어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 체험은 한국어권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말에 둘러싸여 살아왔는지 알려준다. 학교에서 마주치는 친구들과 나누는 5초도 안 되는 짧은 인사 (안녕. 밥 먹냐? 먹고 온다. 그렇군, 연구 파이팅. 심심하면 커피나 마시자.) 단골 카페 사장님과 나누는 이야기 (오늘은 제가 뭘 먹고 싶을 까요. 아이스 더치커피? 네, 맞아요. 역시 사장님이야.) 그 카페에 앉아있으면 들려오는 옆 테이블 대화 (주로 교회 얘기나 대학원생의 연구 이야기. 학기 중에는 학부생들의 과제 앓이.) 학교 식당에서 틀어놓은 YTN 뉴스가 들려주는 세상 돌아가는 소리 (‘뉴스 선정 참 뭐같이 하네’) KBS 클래식 FM에서 들려주는 음악과 DJ의 멘트.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아직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바뀐 세상은 아주 적막하다. <먼 나라 이웃 나라 - 스위스>로 예습을 하고 영어를 잘하고 프랑스어를 조금 하는 정도로는 이 적막감을 예습할 수 없다. 나는 생각을 하기 위해선 뭐라도 말하고 써야 한다는 걸, 그렇지 않으면 생각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인터넷을 타고 건너온 한국어조차 존재하지 않는 클린룸에서 나는 건강히 지낼 수 없다.

안다. 프랑스어를 못 해서 한국어에 빠져봤자 프랑스어를 더 못 하게 될 뿐이란 거. 그럴수록 ‘성공적인 해외 체류 경험’에서 멀어진다는 것. 하지만 당장 내가 아픈데 해외 체류가 성공인지 실패인지가 뭐가 중요할까. 나는 나의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 큰 관심이 없지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동거인의 삶이 망가지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언젠가는 이 작은 한국에서 나갈 걸 안다. 나는 비비크림의 답답함도 못 견디니까. 하지만 그건 이 작은 한국이 답답하게 느껴지고 난 다음 일이다. 나에게 성공적인 해외 체류란 유창한 외국어나 현지 경력이나 학위나 출산/육아(!) 따위로 증명되는 뭔가가 아니라 짝꿍의 행복이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건강해야 하고, 아직까지는 약간의 한국어가 필요하다.

프랑스어 감각은, 언젠가 다시 돌아올 거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는 재미가 없으니 사는 재미라도 있어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