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이이이이하아아오오오오’ 다르고 ‘니 하오~’ 다르다
닫힌 니하오 열린 니하오
1. 니이이이이하아아오오오오
혼자 여행하는 파리. 피카소 미술관에서 나와 파리에서 유학 중인 지인을 만나러 가는 길 횡단보도. 나는 파란 불을 기다리며 피카소 개인의 추잡하고 유해한 인생과 피카소의 이름이 붙은 작품들의 멋짐을 생각하고 있었다. 찝찝함 반, 충만함 반인 전시의 뒷맛을 음미하는데 누가 내 오른쪽 귀때기에 소리를 질렀다.
“니이이이이하아아오오오오!!!!!!!!!”
씨발 깜짝야!
레이시스트를 마주치면 무시하고 지나가라고들 한다. 혼자 다니는 동북아 여성일 경우 더더욱 조심하고 몸 사리라고도 했다. 상대해봤자 내 기분만 상하고 열을 내면 되려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배운 대로 행하기에는...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욕을 어떻게든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다.
“뻑 큐”
나의 멀티링구얼 분노를 보고 빡빡이 배불뚝이 백인 남자는 쫄아서 사라졌다.... 면 얼마나 좋을까. 대신 그는 “뻑 큐!! 뻑 큐!! 니이이이하아아오오!! *쀼땅!!”이라고 외치며 나를 따라 횡단보도를 건넜다.
속으로 욕을 하든 입 밖으로 욕을 하든 알아들을 수 있는 욕을 하든, 결국 엔딩은 뒤돌아보지 않고 빨리 걷는 것 하나뿐이다. 저 새끼가 평생 할 수 있는 중국어도 니이이이이하아아오오오오 하나뿐이겠지.
*쀼땅 putain: 씨발
2. 니 하오~
오늘은 무슨 과일을 살까? 그냥 할인하는 거 아무거나 사자. 마트에서 동거인과 오늘의 장보기 아이템을 정하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키가 1미터도 안 되는 아이가 도도돗 달려왔다. 예쁜 애기네. 나에게 최초로 각인되었던 어려서 배운 금발 벽안 백인 서양인 이미지와 똑 닮았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아이가 입을 열었다.
“니 하오~”
아오, 이럴 땐 어떡해야 하지. 지난번에 니하오를 들었을 때는 욕했는데. 별 소용은 없었지만. 어리니까 넘어가야 하나. 그런데 그런 우야무야가 쌓여서 그 새끼 같은 인간이 되는 건 아닐까. 정색한다고 알아들을까. 내가 제대로 설명할 수는 있을까. 저기에 보호자로 보이는 사람이 같이 있는데, 일이 시끄러워지지 않을까. 일단 뭐라도 말을 해야...
“안녕하세요~”
동거인을 돌아봤다. 이렇게 현명할 수가! 복잡했던 머릿속까지 시원해지는 답이다.
생각이 멈추니 그제야 눈 앞의 사람이 보였다. 아이는 몸을 배배 꼬고 있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이긴 했지만 악의나 짓궂음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딱 한 마디 아는 중국어를 써보고 싶어서 근질근질했겠지. 어렸을 때 우리가 몇 문장 안 되는 영어를 써보고 싶어서 서양인처럼 보이는 아무에게나 "헬로" 한 것처럼.
쓸 수 있는 말을 다 쓴 아이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좀 더 배배 꼬더니 유제품 코너 앞에 있는 보호자에게 다시 도도돗 달려갔다.
저리도 적극적이니 어떤 언어도 빨리 배울 것 같다. 그리고 세상엔 동양인처럼 생겼지만 중국어를 전혀 쓰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알게 되겠지. 지나가는 외국인은 나의 듀오링고가 아니란 것도.
그래도, 내가 겪은 유일한, 미래가 조금이나마 궁금한 니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