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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집사 Feb 07. 2023

많이 안 드시죠?

그 많은 음식은 누가 다 소화하는가

요리수업에서 엄마가 시연으로 선보인 모든 음식들은 테이블 한쪽에 정갈하게 담아 세팅한다. 그리고 나면 수강생들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저마다의 기록을 남긴다.


'이렇게 예쁘게 담아놓으면 누가 드세요?'

'수업 끝나고 나면 이 음식들은 어떻게 하세요?'


우리 스튜디오를 처음 찾아주신 신규 수강생님들의 약 80%가 으레 물어보시는 질문들. 정말이지 10명 중 8명은 꼬박꼬박 물어보신다. 그 이유를 나중에 듣기를, 엄마나 나나 두 분 다 많이 안 드실 것 같은데, 우리가 수업을 매일 하다 보니 분명 음식은 매일 많이 나올 텐데, 그 음식들을 어떻게 다 해결하시는지 궁금했다고들 말씀하신다. 수업에 플레이팅하는 음식들은 아래와 같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당연히 수업 끝나고 저희가 다 먹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허겁지겁 대충 치우고 자리에 앉는다. 왜 허겁지겁이냐 묻는다면 배고프고 힘들어서 그렇다. 보통 수업 전에는 준비하느라 바빠서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지 않을 때가 많거든. 나는 노트북으로 넷플릭스나 티빙에 들어가 못 본채 밀려있는 드라마나 예능, 유튜브 따위를 틀어놓는다. 밥 먹는 동안 봐야 하니 한 영상의 길이는 20분 이상이어야 한다. 그리고 엄마가 플레이팅 해놓은 음식들은 반찬 용기에 일부분 덜어놓는다. 우리가 먼저 먹다가 남기는 게 아니라, 집에 가져가 아빠나 동생이 먹을 음식을 먼저 깔끔하게 옮겨두는 것이다. 그리고 남은 음식을 엄마와 내가 마주 보고 앉아서 편히 먹는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엄마와 내가 둘 다 마른 체질이라, 평소 식사를 많이 안 하실 것 같다는 이야기를 수강생들로부터 정말 많이 듣는다. 실제로 나의 경우는 최근 몇 달 전부터 식욕이 줄어서 소화할 수 있는 음식 양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엄마는 밤 11시에도 국에 밥을 말아먹고, 새벽 12시에도 배고프다며 남아도는 빵쪼가리에 꿀을 발라 먹는다. 스튜디오 출근길에는 같은 빌딩 안에 있는 빵집에서 고로케를 사 먹고 싶어 매일 아침 판대를 기웃거리고, 고로케를 못 사 먹은 날에는 냉장고 안에 차갑게 굳은 식빵 쪼가리를 버터에 구워 커피와 함께 먹는다. 이것이 우리의 루틴이라면 루틴.


엄마는 탄수화물 중독까진 아니지만 탄수화물을 안 먹고는 힘을 못 쓴다며 밥과 빵을 정말 좋아하신다. 늦은 시간 많이 먹어도 절대 엄마의 식단이나 건강을 걱정하지 않는 이유는, 그 만큼 낮상당한 에너지를 쏟으시기 때문. 실제로 건강검진 결과에도 이상은 없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가끔 내가 우리 공식 sns채널에 #스텝밀 이라고 해서 위와 같은 사진들을 업로드할 때가 있다. 냉장고 안에 남아도는 식재료들로 대충 요리해 끼니를 해결하려고 먹었는데 의외로 생각보다 맛있을 때.


이를 테면 소고기를 오래 푹 삶고 남은 육수가 있어서 남은 에그누들, 남은 소고기, 남은 대파와 양파, 그리고 고수를 올려 뚝딱 끓였더니 어쩐지 우육면 사촌 같은 느낌일 때. 그럴 때 우리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기록을 해두면 나중엔 수강생님들이 말씀하시길,


'선생님, 수업하시는 음식들보다 따님이 드시는 스텝밀이 더 맛있어 보여요'

'스텝밀 너무 탐나요'

'다음에 스텝밀 드실 때 저 좀 초대해 주세요'


아무래도 음식을 다루는 공간에서 매일 몸 담고 일하다 보니, 음식을 가려먹거나 많이 안 먹을 순 없다. 밤 10시에 끝나는 직장인들을 위한 야간수업 이후에도 우리는 자리에 앉아 수저와 젓가락을 드는 걸.. 그때도 허겁지겁 먹는다.


왜, 저녁을 안 먹어서 배고프니까!



사진 출처: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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