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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안 드시죠?

그 많은 음식은 누가 다 소화하는가

by 달집사

요리수업에서 엄마가 시연으로 선보인 모든 음식들은 테이블 한쪽에 정갈하게 담아 세팅한다. 그리고 나면 수강생들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저마다의 기록을 남긴다.


'이렇게 예쁘게 담아놓으면 누가 드세요?'

'수업 끝나고 나면 이 음식들은 어떻게 하세요?'


우리 스튜디오를 처음 찾아주신 신규 수강생님들의 약 80%가 으레 물어보시는 질문들. 정말이지 10명 중 8명은 꼬박꼬박 물어보신다. 그 이유를 나중에 듣기를, 엄마나 나나 두 분 다 많이 안 드실 것 같은데, 우리가 수업을 매일 하다 보니 분명 음식은 매일 많이 나올 텐데, 그 음식들을 어떻게 다 해결하시는지 궁금했다고들 말씀하신다. 수업에 플레이팅하는 음식들은 아래와 같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당연히 수업 끝나고 저희가 다 먹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허겁지겁 대충 치우고 자리에 앉는다. 왜 허겁지겁이냐 묻는다면 배고프고 힘들어서 그렇다. 보통 수업 전에는 준비하느라 바빠서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지 않을 때가 많거든. 나는 노트북으로 넷플릭스나 티빙에 들어가 못 본채 밀려있는 드라마나 예능, 유튜브 따위를 틀어놓는다. 밥 먹는 동안 봐야 하니 한 영상의 길이는 20분 이상이어야 한다. 그리고 엄마가 플레이팅 해놓은 음식들은 반찬 용기에 일부분 덜어놓는다. 우리가 먼저 먹다가 남기는 게 아니라, 집에 가져가 아빠나 동생이 먹을 음식을 먼저 깔끔하게 옮겨두는 것이다. 그리고 남은 음식을 엄마와 내가 마주 보고 앉아서 편히 먹는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엄마와 내가 둘 다 마른 체질이라, 평소 식사를 많이 안 하실 것 같다는 이야기를 수강생들로부터 정말 많이 듣는다. 실제로 나의 경우는 최근 몇 달 전부터 식욕이 줄어서 소화할 수 있는 음식 양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엄마는 밤 11시에도 국에 밥을 말아먹고, 새벽 12시에도 배고프다며 남아도는 빵쪼가리에 꿀을 발라 먹는다. 스튜디오 출근길에는 같은 빌딩 안에 있는 빵집에서 고로케를 사 먹고 싶어 매일 아침 가판대를 기웃거리고, 고로케를 못 사 먹은 날에는 냉장고 안에 차갑게 굳은 식빵 쪼가리를 버터에 구워 커피와 함께 먹는다. 이것이 우리의 루틴이라면 루틴.


엄마는 탄수화물 중독까진 아니지만 탄수화물을 안 먹고는 힘을 못 쓴다며 밥과 빵을 정말 좋아하신다. 늦은 시간 많이 먹어도 절대 엄마의 식단이나 건강을 걱정하지 않는 이유는, 그 만큼 낮에 상당한 에너지를 쏟으시기 때문. 실제로 건강검진 결과에도 별 이상은 없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가끔 내가 우리 공식 sns채널에 #스텝밀 이라고 해서 위와 같은 사진들을 업로드할 때가 있다. 냉장고 안에 남아도는 식재료들로 대충 요리해 끼니를 해결하려고 먹었는데 의외로 생각보다 맛있을 때.


이를 테면 소고기를 오래 푹 삶고 남은 육수가 있어서 남은 에그누들, 남은 소고기, 남은 대파와 양파, 그리고 고수를 올려 뚝딱 끓였더니 어쩐지 우육면 사촌 같은 느낌일 때. 그럴 때 우리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기록을 해두면 나중엔 수강생님들이 말씀하시길,


'선생님, 수업하시는 음식들보다 따님이 드시는 스텝밀이 더 맛있어 보여요'

'스텝밀 너무 탐나요'

'다음에 스텝밀 드실 때 저 좀 초대해 주세요'


아무래도 음식을 다루는 공간에서 매일 몸 담고 일하다 보니, 음식을 가려먹거나 많이 안 먹을 순 없다. 밤 10시에 끝나는 직장인들을 위한 야간수업 이후에도 우리는 자리에 앉아 수저와 젓가락을 드는 걸.. 그때도 허겁지겁 먹는다.


왜, 저녁을 안 먹어서 배고프니까!



사진 출처: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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