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임산부들의 고비
내가 미혼이었던 약 3년 전쯤이던가. 우리 오래된 친밀한 단골 수강생께서 오랜만에 얼굴 볼 겸 커피 한 잔 하러 스튜디오에 잠깐 들르신 적이 있었다. 당시 40대 초반이었던 수강생분은 아주 멋지고 화려한 싱글 여성이었는데, 오래된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갖게 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계셨다. 정말이지 뽈록! 배만 나온 (여전히) 멋진 몸매로 반갑게 들어온 그 수강생분은 설레는 임신 스토리를 들려주셨다. 여전히 모델처럼 길쭉길쭉한 체형에 딱 임신해서 배만 나왔음에도 "선생님 저 임당이에요!"라고 말씀하셨다.
*임당: 임신성 당뇨병
그때만 해도 나와 다른 세계의 이야기, 임신 과정에 전반적으로 아는 것 없이 무지했던 나는 그게 뭔지도 잘 몰랐다. 하지만 엄마는 대번에 알아듣고, 왜 당뇨에 걸렸냐고, 평상시에 막 그렇게 단 음식을 좋아하거나, 많이 먹거나, 디저트를 즐기지도 않지 않냐며 의아해했다. 오래된 단골 수강생들의 식습관이나 입맛 취향 정도쯤이야 우리도 워낙 잘 알고 있으니까.
수강생 분은 본인도 잘 모르겠다고, 임당이라서 관리를 쭉 해야 한다며, 앞으로 출산을 하고도 관리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수강생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엄마는 걱정 어린 말을 내게도 건넸었다. 임산부가 임당 걸리면 그거 되게 힘든데, 식단 관리해야 해서 골치 아플 텐데, 당뇨가 참 무섭다, 등등. 다행히 수강생분은 무사히 출산까지 잘 마쳤고, 지금은 어엿한 꼬마숙녀가 된 딸내미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종종 올리고 계셔서 우리도 그 근황을 잘 보고 있다.
이토록 임산부들이 가장 걱정한다는 임신 중기의 임당 검사. 내가 임신 중기에 들어서면서, 주위 친구들과 안부 카톡을 나눌 때마다 다들 하나같이 물어보던 그 한 마디.
"임당 했어?"
26주 차에 나도 드디어 임당 검사를 했다. 마침 태아의 얼굴 윤곽을 볼 수 있는 입체초음파를 함께 할 수 있던 주차였는데, 아쉽게도 입체초음파는 그날 마침 차병원에 빈 자리가 없다 하여 그냥 안 하겠다고 재꼈다. 그래서 그냥 임당 검사만 하는 걸로. 평생 당뇨 걱정 없이 살아왔던 나지만, 임당 검사 약 2주 전쯤부터는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다. 임신하고서 시원한 맥주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안 마시니, 톡 쏘는 청량감 있는 시원하고 달달한 콜라가 그렇게 맛있더라. 평소에 딱히 생각나지 않던 초콜릿도 가끔 생각이 나고, 유난히 식욕이 도는 날이면 탄수화물도 많이 먹었던 것 같기도 하다. 가끔 남편이 식후에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할 땐 주저 없이 옆에 앉아 같이 수저를 들고 퍼 먹었다. 우리가 배민으로 즐겨 시켜 먹는 건 고작 치킨 아니면 아이스크림 두 개뿐인데, 아이스크림을 배달시킬 때면 남편이 '해나 뭐 먹을래?' 맛 고르라고 할 때 난 언제나 '쿠키앤크림!'을 외쳤다.
임신하고서 난 그렇게 국수류가 당겼다. 파스타, 우동, 막국수, 냉면, 칼국수 뭐 이런 것들. 후루룩 빠르게 먹기 좋은 국수류는 매일 먹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임당 검사 1주 전부터는 안 그런 척했지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탄수화물을 너무 좋아해, 내가...
오후에 임당 검사를 위해 찾은 산부인과. 점심 무렵부터 난 공복이었다. 혈압과 몸무게를 재고, 오렌지주스 같은 달달한 임당 시럽을 한 병 마시고 혈뇨와 혈당 검사를 했다. 초음파를 찍고, 의사 면담을 위해 잠시 대기를 했다. 이사하느라 최근에 무리를 해서 걱정했는데 초음파 너머로 꼬물이는 우렁찬 심장소리를 들려주며 꼬물꼬물 잘 지내고 있어 고마웠다. 이윽고 의사 선생님과 마주하고,
"혹시 운동하세요?"
"아니요? 전혀요..."
아, 의사 선생님은 허허 웃으면서 몸무게가 지난달 진료 때와 똑같길래 운동하시는 줄 알았다며 그냥 한 번 물어봤다고 말씀하셨다. 오예! 체중이 안 늘었다. 내가 좋아하기도 잠시, 의사 선생님은 그래도 앞으로는 막달까지 몸무게가 훅훅 늘어날 거라고 하셨다. 눼... 임당 검사 결과는 저녁쯤 문자로 통보된다고 하셨다. 이 날따라 병원에 사람이 없어서 진료가 빨리 끝나서, 엄마 아빠와 맛있는 샤브샤브로 이른 점저 식사를 했다. 아주 맛있게, 많이도 먹었다. 내내 공복이었으니 얼마나 맛있었겠나. 쩝.
그리고 저녁 7시, 병원에서 칼 같이 문자가 왔다.
임당 검사 가뿐히 통과! 내가 임당 통과해서 너무 다행이라고 엄마한테 얘기하자, 엄마는 '당연히 통과하지!' 쿠킹클래스 하는 애가 당연히 임당을 통과해야지, 통과 못하면 그건 엄마가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셨다. 맞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