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 하는 게 용하다
무증상의 별 이슈 없는 임산부도 임신기간 내내 귀차니즘이 발동하는 건 마찬가지다. 매일 여전히 쿠킹스튜디오로 부지런히 출퇴근을 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 기특할 정도다. 임신을 하고서 27주 차에 접어든 지금까지, 여전히 아침 7시면 눈을 떠서 남편 도시락을 챙겨놓고, 8시 좀 안 돼서 출근을 한다. 좀 늦게 나가도 되는 날은 오전 9시~10시 사이에 느지막이 출근한다. 퇴근은 별일 없으면 오후 4시에, 아니면 통상적으로 5시쯤 집으로 귀가한다. 집에 오면 씻고 좀 쉬다가, 남편 퇴근시간에 맞춰 저녁을 준비한다.
퇴근길 지하철이 만원이라도 괜찮다. 나에겐 부적 같은 임산부석 핑크색 배지가 있으니. 물론 임산부 배려석마다 이미 임산부가 앉아있거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앉아계셔 내가 피차 못 앉더라도, 그 옆자리에 앉아있던 고마우신 분들이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해 주시는 일들이 많으니 대부분 감사하게 자리에 앉아 출퇴근을 하고 있다.
그래, 출퇴근은 다 괜찮다 이거야. 그런데 화장하고 옷 입고 치장하는 게 너무 귀찮다. 이젠 배가 쪼여서 추리닝 바지도 갑갑할 때가 있다. 그래서 레깅스에 펑퍼짐한 임부복 원피스 정도만 입는 게 제일 편하긴 한데, 문제는 레깅스가 자꾸 줄줄 내려가서 불편하다. 아직은 추운 겨울. 겉에 패딩만 입으면 내가 안에 뭘 입던 상관은 없는 계절. 쿠킹스튜디오에서도 난 출근하면 항상 앞치마를 입으니, 앞치마 안에 내가 뭘 입던 상관이 없다. 그래서 난 항상 추리닝, 추리닝, 추리닝이다.
화장하는 것도 너무 귀찮아. 미세먼지도 있고 지하철에 사람도 많으니 요즘 다시 마스크를 하고 다니는데, 솔직히 매일 쌩얼로 다니고 싶다. 화장하려고 앉아 스킨과 로션 두드리는 것도 너무 귀찮다. 내가 애초에 뭐 대단한 화장을 하고 다니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배 많이 나온 계절이 겨울이라는 것도 나름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봄이나 여름, 가을이었으면 그래도 다양한 옷들을 입지 않았을까 핑계 중. 겨울이니 기승전-패딩이다.
엄마는 날 보면 가끔 '좀 예쁘게 입고 다녀', '임산부도 예쁘게 입고 다니는 임산부 많은데' 하며 자신의 최애가 항상 예뻐 보이길 바라는 마음에 아쉬운 소리를 툭툭 보내지만... 아우, 귀찮아서 그게 안 된다. 오죽하면 남편은 내가 옷 샀다는 소리를 제일 좋아한다. 내가 평소에 좀처럼 나한테 투자하는 게 없으니, 항상 나만 보면 '임부복 사러 가자', '해나 옷 사러 가자' 소리를 종종 하는데 그 몇 개월만 입을 임부복에 돈을 쓰는 게 너무 아까워 쇼핑에 손이 잘 안 간다. 그러다 지난 주말, 세일 중이던 무인양품에 우연히 구경 갔다가 라임색 원피스를 9900원에 팔길래, 원피스 하나 샀다고 하자 남편은 내게 엄지를 척 보였다. 아주 잘했어! 남편은 예전에 엄마에게도 '장모님, 해나가 맨날 추리닝만 입고 다녀요' 말했는데, 엄마는 '응, 그 추리닝 그것도 내가 새로 사준 거야' 다들 나의 패션을 안타까워하는구먼.
그렇다고 임신 무기력증이냐, 그건 아니다. 일상생활은 잘 굴러가면서, 몸매는 D라인으로 바뀐 지 오래에, 난생처음 보는 몸무게 갱신 중이지만 거울 속으로 비치는 내 모습은 볼 때마다 항상 신기하다. 그냥... 그냥 옷 입고 화장하는 것만 누가 매일 해줬으면 좋겠다.
아! 이제 양말을 혼자 신기가 버겁다. 그런데 또 바닥에 떨어진 물건은 잘 줍는다.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