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ena Nov 06. 2017

Utah로.

Zion National Park


6시 55분. 

항상 알람이 울리기 5분 전에 왜 눈이 떠지는 걸까? 

난 그 5분이 너무나도 아깝다. 그래서 알람을 끄고도 5분을 더 자는 건가 보다. 

온몸이 질척이는 무언가로 덮인 거 같은 피로감을 안고 

너무나도 위험한 이불 밖을 나와 터벅터벅 화장실로 간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 때문인지 이제는 차가운 물로 세수하기가 싫어진다. 

치약거품이 칠갑이 된 내 얼굴 보며 오늘은 어떻게 회사에 입고 나갈지 걱정한다. 

어차피 아무도 신경 안 쓸 텐데도 항상 뭘 입고 갈지가 너무나 고민된다. 

아침밥은 포기해도 커피는 포기 못해 항상 아침에 속이 쓰리다 못해 애리다. 

뭐라도 먹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은 들지만 몸이 나보다 늦게 깨는지 영 입맛이 없다. 


8시 14분.

피곤한 몸 겨우 이끌며 들어온 회사. 피곤한 사람들로 여기저기 

기지개 켜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부터 모두의 하루가 시작이 된다.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전화와 팩스, 신경질적인 타자 소리와 커피 홀짝이는 소리를 들으며,

내 영혼은 어마어마한 업무량 덕에 지구 밖을 나갔다 들어오기를 수백 번을 반복한다.  

요즘 말로 정말 영혼이 탈탈 털리는 기분이다. 

가끔은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조차 분간이 안될 만큼 정신없다.

이렇게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6시. 

퇴근 시간이다. 

아-. 퇴근시간이다. 모두들 달리기를 막 끝낸 사람들 마냥 한숨들을 길게 쉰다. 

'수고했어, 내일 봐.' '고생 많이 하셨어요, 내일 봬요.' 다들 인사를 하며

터벅터벅 아침에 들어왔던 그 문으로 다시 나가 각자의 집으로 향한다. 


7시 5분. 

집에 도착해 널브러진 집을 보면 한숨만 나오지만 일단 배가 고파 밥부터 먹고 고민하기로 한다. 

요리를 하고 싶은데 몸에 진이 빠져 아무것도 차리고 싶지가 않아 또 배달을 시킬까 고민을 하다가

갑자기 요번 달 돈 내야 하는 것들이 마구마구 생각나서

결국은 그냥 집에 있는 라면을 끓여먹기로 하고 물을 끓인다. 


9시.

화장 지우는 게 가장 귀찮다. 화장을 깨끗이 지워주는 로봇이 있음 세상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대충대충 얼굴을 지운다. 화장을 하는 거보다 지우는 게 더 중요한 건 알지만 정말이지 너무 피곤하다. 

머리도 다 말리지 못한 채로 침대로 향한다. 


10시.

책을 읽을까 말까 하다가 하루 종일 온갖 서류와 문서들로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침대에 누워 책 대신 핸드폰을 만진다.

인스타에 잘 나가는 내 친구들 사진들을 보며 나는 언제쯤 잘될런가 고민을 하다가

시간을 보고 깜짝 놀란 나는,


11시 30분.

잠이 든다. 


아니, 원래 같으면 자야 하는 이 시각에


나는 잠을 들지 못한다. 

잠을 지금 자야 내일 그나마 조금 덜 피곤 하걸 알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메스꺼움이 밀려온다. 

내일도 똑같이 알람 5분 전에 눈을 뜨고, 아까워서 5분 더 잠을 자고, 쓰린 속 붙잡고 커피를 타며 뭘 입을지

고민하고 있을 내가 보여 짜증 나기 시작한다. 바뀌는 거라곤 조금 더 쌀랑하진 날씨 때문에 

약간 더 뜨거워질 내 세숫물을 빼고는 하나도 바뀌는 게 없을 거라는 게 짜증 나고 역겹다. 


변화가 필요하다. 그게 무언가가 되었든 달라져야 한다. 


6시 50분.

전 날밤의 그런 생각 덕분인 건지 알람 5분 전이 아닌 10분 전에 일어났다. 음. 그래 어제와는 틀리다. 

오늘은 일찍 일어난 탓에 아침도 먹고 커피도 인스턴트커피가 아닌 원두커피로 내렸다. 


8시. 

회사도 평소보다 빨리 도착했다. 

회사에 와서 스트레칭도 하고 명상도 조금 해본다. 


분명 조금 틀려졌다. 

변화가 있는데도 나는 아직도 뭔가가 메스껍다. 


그다음 날에는 조금 더 바꿔서 아침에 일어나 요가도 해보고,

아침에 생과일주스까지 갈아 마셨는데도 여전히 메스껍다. 


이렇게 계속 변화주기를 2달. 


메스꺼움은 계속 내 안에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 날, 공기가 찰대로 찬 풍선 같은 나를 터뜨려준 한 사람이 있었다. 


항상 갑질을 해대며 이 사람 저 사람 불편하게 만들었던 한 회사 선배가 있다. 

그 선배가 그날도 평소와 같이 갑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원래 같았으면 그냥 웃으며 넘어갈 일이었을 텐데,

마치 뾰족한 바늘 끝이 나를 터뜨린 것과 같이 펑하고 터져버렸다. 


슬프지도 않은데 눈물이 줄줄 세어 나오고 말도 제대로 안 나와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그 선배는 알아듣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울고불고 다 쏟아부으니 내가 지금까지 왜 메스꺼웠는지를 알 수 있었다. 


회사였다. 


빌어먹을 이 회사 때문에 나는 계속 메스꺼워했던 거다. 


선배 혹은 상사랍시고 지랄해대는 나랑은 아무 관련 없는 사람들. 

내 인생에 하나도 도움 안 되는 영양가 없는 업무들. 

기억할 추억 하나 없는 회색 콘크리트보다도 단조로운 일상.

나를 위한 시간은 없고 회사만을 위한 시간들로 가득 찬 인생. 

끔찍하다. 


'저 그만둘게요.' 


사표를 던졌다. 


처음에 팀장님이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홧김에 그러지 말라고. 

하지만 나 말고도 이 세상에는 내 자리를 대신할 사람들로 넘쳐나고,

더 이상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말씀을 드렸다. 


학자금 대출과 여러 청구서들이 나를 괴롭히겠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지금 당장 죽는다고 했을 때 내가 내지 못한 청구서들이 생각나겠는가

아님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가 크겠는가?


사표를 던진 후,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을 하기 앞서 나는 자연을 보고 싶었다. 

오염된 내 정신을 조금이나마 정화시키고 싶었다. 


그러다가 머릿속을 스친 한 곳,

바로 미국 UTAH 주에 있는 Zion National Park이었다. 

많고 많은 곳 중에 왜 이곳이냐고 물어보면 

딱히 이유는 없다. 그냥 가고 싶었다.

 

다행히도 나랑 가장 친한 친구가 나랑 같은 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했다. 일주일 정도가 빈다고 해서 같이 가자고 물어보았다. 

솔직히 유타까지 혼자 가기가 약간 두려웠다. 


'콜. 가자.' 

친구의 유쾌한 대답으로 나는 이로써 떠날 준비가 다되었다. 



가자. 유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