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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ena May 29. 2017

행복한 왕자.

아일랜드. 

Phoenix Park에 있던 Wellington Monument.

내가 아일랜드로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내 친구들은 다 의아해했었어. 파리, 비엔나, 피렌체, 홍콩, 도쿄 등 더 화려하고 큰 도시가 아닌 왜 '아일랜드'로 가느냐고. 내가 아일랜드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어디로 여행을 갈까 한창 고민하고 있을 무렵,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할아버지께서 사주 셨었던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가 눈에 띄었어. 몇 달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더욱더 할아버지와의 어렸을 적 추억을 곱씹고 있을 때라 그 책이 눈에 더 띄었었나 봐. 어렸을 때 이 책을 읽으면서 바보같이 주기만 하는 왕자가 불쌍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그런 착한 마음을 가진 왕자가 멋있다고 생각했었거든. 그 순간, 오스카 와일드가 나고 자란 아일랜드가 궁금해졌어! '그래, 한번 가보자!'라고 생각한 뒤 주저하지 않고 바로 티켓을 끊었어. 어쩌면 할아버지가 아일랜드로 나를 인도한 거 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정확히 한 달 뒤 아주 간단한 짐만 챙겨 아일랜드로 떠났어. 

더블린 시내.

처음 도착했을 때 날씨가 너무 꾸질 꾸질 해 약간 실망을 했었어. 분명히 전날 날씨를 확인했을 땐 해가 뜬다고 나와있었는데, 더블린에 도착했을 땐 부슬부슬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어. 그래도 빨리 도시를 둘러보고 싶은 마음에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려 시내로 나가기로 했어. 와 근데 진짜 차 빌리는게 이렇게 비싼줄은 몰랐어! 스틱을 운전할 줄 모르니까 오토매틱으로 렌트를 했는데 보험비에 뭐에 거의 600유로 정도가 나온거야. 혹시라도 나중에 너가 간다면 가기전에 스틱 쓰는법을 알고가렴 ㅋㅋ.. 어쨌뜬, 나는 제일 먼저 피닉스 공원으로 가기로 했어. 피닉스 공원에서는 주차를 공짜로 할 수있다고 어떤 블로그에서 봤거든. 공항에서 피닉스 공원까진 그렇게 안멀었는데 너무 긴장을 해서 운전을 하니 몇 시간 한것처럼 힘이들더라고. 또 오른쪽에서 차를 운전하는 게 처음이라 너무 무서워서 두 손으로 핸들을 꼭 잡고 경직된 자세로 천천히 운전을 했어. 뒤에 있는 차들이 빨리 좀 가라고 바짝 붙고 난리도 아니었어. 그렇게 초긴장한 상태로 공원에 도착해 차를 세우고 무작정 시내로 걸어나갔어. 생각보다 공원이 너무 커서 (진짜 장난 아니게 커) 공원에서 빠져나오는데만 걸어서 30분이 걸린 거 같아. 무료로 세울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는 대신 많이 걸어야 한다는 게 함정이었지! 그렇게 또 20분 정도를 더 걸었을까? 시내가 보이기 시작했어. 

처음 본 더블린의 인상은 굉장히 우울하고 헐어있다고 해야 하나? 다른 대 도시들에 비해서 상당히 낡아있었어. 분명 날씨가 한몫을 더했겠지만 빛바래고 때가 낀 건물들 사이에서 음울함이 스멀스멀 나오고 있었어. 내가 생각한 더블린은 이거보다는 시끌벅적하고 조금 더 세련된 이미지였는데 너무나도 우울했어. 그래서 아이리쉬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시나?라고 생각했을 정도니까. 


더블린 기차역

이런 우울함에 휩싸여 온 지 몇 시간도 안됐는데 집에 가고 싶어 지는 거야. '이런 우울감에 빠질 순 없어!!' 하고 내가 여행 오기 전에 적어놓은 더블린에서 가야 할 곳이 적혀있는 노트를 펼쳤어. '음 일단 여기로 갔다가, 이거 보고, 그리고 저기로 갔다가 다시 와서 이거 보면 되겠다!'라고 혼자 15곳을 들릴 루트를 정한 뒤 또 무작정 걷기 시작했어. 너무 걸어 다리도 아프고, 비 맞아 축축하고, 춥고, 무섭기도 하고, 배고프고, 집에 있는 강아지도 보고 싶고... 점점 우울감이 몰려와서 기분 전환도 할 겸 근처에 있는 pub(술집)에 들어가 맥주를 한잔 시킬라고 했는데 이게 웬일... 하필 또 내가 도착했을 때가 Good Friday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금요일. 항상 부활절 전에 있음)라고 모든 pub들이 문을 닫았지 뭐야! (아일랜드는 가톨릭 국가기 때문에 이런 종교적인 날들은 거의 빠짐없이 잘 지킨다고 해.)  그럼 패트릭 성당을 가보자! 하고 갔는데... 역시나 닫았다는 거야. 나 원참. 그때 허탈감은 정말이지 울고 싶었다니까!  그냥 그렇게 우울한 마음 한가득 안고 예약해둔 에어비엔비 숙소로 가 저녁도 안 먹고 일찍 잠을 청했어. 침대에 누웠는데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핑 돌았었어. 

Phoenix Park에 있던 튤립과 다른 꽃들.

더블린의 첫인상은 되게 안 좋았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친구들 말대로 파리나 로마 이런 곳으로 갈걸 했나? 생각이 계속해서 드는 거야. 그렇게 한참을 꿀꿀해하다가 잠이 들었어. 시차 때문인지 아님 꿀꿀한 마음 때문인지 생각보다 엄청 일찍 눈이 떠졌어. 아침 일찍 일어났으니 그냥 일찍 떠나야겠다 하고 짐을 챙기고 있는데 집주인 아주머니가 똑똑 노크를 하시더라고. 문을 열었더니 아주머니께서 "너 깬 거 같아서 왔어. 아침을 차려주고 싶은데 먹고 갈래?" 밥맛도 없고 울적해 있는 나는 괜찮다고 사양을 했더니 아주머니께서 안탑깝다는 눈으로 보시더니, "아일랜드에 왔으면 아침은 꼭 먹어봐야 해. 아침을 먹으며 기분이 좋아질 거야." 그래... 어차피 굶고 가는 것보단 낫겠다 싶어서 알겠다고 했지. 한 30분만 기다려 달라고 하시더라고. 그냥 침대에 누워서 인터넷 좀 하다 보니까 아침 준비됐다고 나오라고 하시는 거야. 별 기대 안 하고 나간 나는 입이 정말 떡 벌어졌어. 콩 수프서부터 수란, 토스트, 아주머니가 만드신 각종 잼들, 푸딩, 과일, 차, 커피, 우유, 시리얼 등이 무슨 뷔페처럼 테이블 위에 있는 거야! 내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니까 아주머니께서, "Welcome to Ireland my dear!" 그때 나는 느꼈어. 아 내가 내 여행을 망치고 있었구나.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데로, 가고 싶은 곳들이 문을 닫으면 닫은데로, 발이 아프면 아픈데로, 내 주위에 있는 것들을 보고 느끼는 것이 여행인데 나는 지금 불평불만만 하고 있었구나! 아주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먹으니 정말 우울함들이 비에 씻겨 내려가듯이 쑥 내려갔었어! 아주머니께 너무 감사하다고 전해드렸더니 손을 꼭 잡아 주시면서 "어제 너와 같이 얘기도 하고 너에 대해서 알고 싶었는데 네가 너무 지쳐있는 거 같아 말을 못 하였어. 혹시 다시 더블린으로 오게 된다면 꼭 우리 집에 머물러줘." 이 말을 듣는데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가 떠오르는 거야. 따뜻하고 배 풀어줄 주 아는 왕자처럼 거의 내가 만난 모든 일랜드 사람들은 친절하고 따뜻했어. 더 이상 우울해하지 말고 불평불만하지 말고 정말 진짜 여행을 해보자! 하고 다짐한 뒤에 다음 목적지를 향해 떠났어. 정말이지 다시 더블린으로 온다면 꼭 이 아주머니 집에 다시 머물러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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