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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ena May 29. 2017

Malahide Castle

집이 집이 아닌 곳. 

아일랜드엔 가봐야 할 성이 참 많아. 그중에 제일 먼저 숙소 근처에 있던 말라하이드 성에 가보기로 했어. 12세기에 지어진 성이라고 하더라고. 생각보다 보존이 너무 잘되어있어서 깜짝 놀랐어. 티켓을 사러 매표소로 들어서니 가족 단위로 많이 들 와있더라고. 다시 한번 엄마 아빠 그리고 우리 집 강아지가 너무 보고 싶었어. 왜 그런지 여행만 가면 가족이 보고 싶더라. 같이 있을 때 더 잘해야 하는데 말이야. 어쨌뜬, 조금 느지막이 도착했어서 마지막 오후 4시 45분에 있는 투어를 예약을 하고 매표소 안에 있는 커피점에 들려 작은 아메리카노 하나 사들고 시린 손을 녹이며 성 외곽을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어. 

Malahide Castle 정면

조금 걷다 보니 성 뒤쪽으로 큰 정원이 있더라고. 그래서 들어가 봤더니 정말 너무 어마 무시하게 큰 거야. 식물원 수준이었어! 우와! 하면서 걷고 있는데 젠장!!! 비가 또 뚝뚝 오기 시작하는 거야 짜증 나게! 얼른 빨리 아주 큰 이름 모를 나무 밑에 잠깐 몸을 숙여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어. 이 놈의 비는 진짜 시도 때도 없이 오더라고. 그러다가 또 그쳤다가 또 왔다가 정말이지 우리 할머니의 말을 빌리자면 저녁 굶긴 시엄마 같은 날씨였다니까! (아직 시엄마가 없어서 진짜 그런지는 확인 불가지만 ㅋㅋ) 근데 정말 아일랜드 있는 동안 내내 날씨를 가늠할 수가 없었어. 하루에 날씨가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몰라. 나중엔 날씨 어플도 안 보고 다녔어. 필요가 없더라고. 

말라하이드 성 내부

외관에서 본 성은 좀 작은 거 같아서 내가 생각했던 큰 성의 이미지가 아니라 약간 실망했었는데, 이게 웬일! 내부가 생각보다 너무 화려해서 깜짝 놀랐어. 방마다 진한 오렌지색, 민트색으로 벽이 도배가 되어있는 거야! 옛날에 귀족들은 자신의 부를 자랑하기 위해 이렇게 밝은 색으로 색을 칠했다고 해. 그때는 지금처럼 색을 내는 염색약이 없었기 때문에 천연재료들로 색을 내야 하는데 이 성의 내부처럼 밝은 색을 만들려면 어마어마한 양의 꽃과 사람들이 필요했기 때문이거든. 보는 내내 입을 다물지 못했었어. 

말라하이드 성 내부 2

여기서 가이드가 웃긴 얘기를 하나 해줬어. 저 위에 있는 사진에서 이상하게 생긴 소파가 보이지? 저런 소파는 저 성에서만 아니라 다른 성에서도 종종 본 적이 있었는데, 저 소파에서 큰 공간은 남녀가 서로 앉아서 얘기를 할 수 있는 곳이야. 종종 저녁 파티나 티파티를 할 때 서로 관심 있는 남녀가 저기에 앉아서 썸(?)을 탔다고 해. 근데 저 소파가 웃긴 게 뭐냐면, 소파 끝에 작은 공간은 그 남녀의 조부모님이나 다른 친척 어른들이 앉아서 그 남녀의 얘기를 들으면서 둘이 종교적인 얘기나, 정치, 혹은 가족에 관한 얘기가 오가면 혼내거나 대화를 말렸다고 해. 그 얘기를 들으니 뭔가 너무 답답하고 이상했어. 내 가족이 나와 내 남자 친구의 얘기를 들으면서 얘기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조종했다고 생각해봐. 너무 답답하지 않아? 정말 이상해.

말라하이드 성 내부 3


말라하이드 성 앞 정원
말라하이드 성 내부 4

성을 구경하는 내내 '이렇게 화려하고 멋진 집에서 산 사람들의 인생은 얼마나 행복했을까?'라고 생각이 들기보단, ' 아 남의 시선을 얼마나 신경을 쓰고 살았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언제나 항상 가장 비싸고 가장 귀하고 가장 고급진 물건들을 들여야 하고, 사람들을 초대해 그걸 자랑하고, 또 시간이 지나면 다른 걸로 치장하고, 또 바꾸고, 또 사고... 집이라는 건 내가 편히 지낼 수 있는 따뜻한 둥지 같은 곳인데 항상 무슨 미술관 혹은 박물관 같은 곳에서 산다고 생각해봐. 그릇 하나라도 흠이 날까 밥도 제대로 못 먹을 거 같아. 갑자기 우리 집이 그립더라고. 그냥 막 다닐 수 있고 세상에서 내가 가장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우리 집. 조금 촌스럽고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저렇게 딱딱한 집보단 말 그대로 정겨운 내 집이 그립더라고. 이 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이 곳을 정말 자신들이 쉴 수 있는 그런 home sweet home으로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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