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늘 Jan 13. 2021

선풍기와 목

벽에 붙은 선풍기가 오른쪽을 보고 있다. 그는 여름의 끝물이나 가을의 초입쯤, 어떤 이의 더위를 식혀주다 그대로 멈춰 섰을 것이다. 긴 가을과 겨울을 지나는 동안, 기지개 한 번 켜보지 못하고 멈춰있었을 것이다. 어느 날엔 자신의 왼편으로 날아온 조그만 벌레 한 마리를 사랑했을 수도 있겠다. 고개를 돌려 그를 보려다가, 오른쪽으로 굳어있는 목 때문에 한참을 슬퍼했을 수도 있겠다.


나도 어느 여름에 한 사람의 더위를 식혀주다 그대로 멈춰선 적이 있다. 나는 기지개 한 번 켜보지 못하고 그가 떠난 방향으로, 그가 가장 마지막에 머물렀던 방향으로 고개가 굳어선 한참을 정지해 있었다. 이따금 왼편으로 날아오는 것들을 사랑하고 싶어 하면서, 좀처럼 돌려지지 않는 고개를 슬퍼하면서, 나는 가만히 그가 떠난 자리를 바라보았다.




작가의 이전글 곁을 내어주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