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화 부재의 시대와 풍경화의 시대
그림이미지: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1919, 캔버스에 유채, 94.8X74.8, 함부르크 미술관
(출처: 다음이미지)
고·중세 미술과 르네상스 미술에서 자연이 재현되는 방식의 차이는, 자연이 갖는 지위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앞 시대의 회화 속 자연은 부수적인 지위를 갖는다. 고대 그리스·로마·이집트 시대의 ‘신들의 이야기가 그려진 도기들’, ‘파라오 왕의 사후세계를 위한 벽화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자연은 “배경”으로 취급되었다. 중세의 회화 속 자연 또한 ‘이콘’을 통해 알 수 있듯 성경 내용을 재현할 때 필요한 “배경” 정도로 취급되긴 마찬가지였다. 즉, 이전 시대의 회화 속 자연의 이미지는 “심안(心眼)” 혹은 “영원성의 눈”으로 관조한 이상 세계의 부수적인 “배경”으로만 필요했다. 반면, 르네상스 회화 속 자연은 본질적인 지위를 갖는다. 이러한 지위에 걸맞게 자연이 화면에 “전경”으로 등장하게 된 원인은, 종교개혁, 과학의 발전, 원근법의 발견에서 찾을 수 있다. 수직적이며 천상적인 이미지를 중시한 중세와 달리, 종교개혁 이후 칼뱅의 가르침에 따라 르네상스 시기는, 세속적인 것, 이를테면 신과의 직접적인 만남 및 일상의 노동에 시선을 두게 되었고, 이렇게 시선이 점차 아래로 향하게 되면서, 일상에서 발견하는 자연 역시 모방 대상으로서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경건한 신”은 “숭고한 자연”에 미적 대상의 지위를 넘겨주게 된다. 다른 하나는 과학의 발전이다. 과학의 발전은,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의 <짙은 안개를 내려다보는 방랑자>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인본주의적 시각을 확산시켰으며, 과학의 방법인 “육체의 눈”을 통한 관찰 방법을 더욱 신뢰하게 했다. 이러한 세계의 변화 위에서 르네상스 화가들은, “믿음”의 대상인 삼위일체의 신비,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의 생애를 “전경”으로 드러내고 그 신비의 경건함을 연출하기 위해 자연을 “원경”으로 재현했던 이전 시대와 달리, 이콘의 이미지 중 현실 세계에서 경험할 수 있는 사실, 즉 자연을 이콘에서 해방하고 모방 대상으로 삼아 “전경”으로 내세웠다. 즉, 르네상스인들은 중세인들의 믿음으로부터 해방되어 중세의 가르침이 억압했던 눈으로 본 것을 알거나 믿는 것으로부터 해받시킬 수 있었다. “알거나 믿는 보이지 않는 세계”는 “알거나 믿게 하는 보이는 세계”에 의해 전복당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과학의 발전은 회화 역시 과학적으로 변모하게 했다. 테오도르 루소(Théodore Rousseau, 1812~1867)의 풍경화인 <퐁텐블로 숲 어귀>나 <도토리나무, 퐁텐블로 숲> 등은, 화가에게 발견된 자연을 수평적인 구성을 토대로 원근법을 적용하여 합리적으로 그림으로써, 감상자에게 자연을 낯선 한편 생생한 “풍경”으로 체험하게 한다.
그런데, 자연이 “풍경”이 된다는 것은, 자연이 관찰 주체에게 낯설게 발견된다는 것, 그래서 어떤 이미지로 구성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아무래도 자연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자연에 대한 이방인인 도시인에게 더 어울리는 일이었다. 혹은 같은 자연을 매일매일 낯설게 바라보려는 시도에 의해서도 같은 자연을 시시각각 “풍경”으로 체험하고 다르게 재현할 수도 있다. 엑상프로방스에서 나고 자란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은 “생 빅투아르 산”을 여러 차례 그렸는데, 그에게 “생 빅투아르 산”은 그릴 때마다 다른 “풍경”으로 발견되었다. 중세인들에게 자연의 현실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낙원”이었다면, 근대인들에게 자연의 현실은 “지금, 여기”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이 된 것이다. 따라서 르네상스 시기의 화가들은 이전 시대의 이콘 속 가치체계를 전복시켰다. 더하여 세잔은, “생 빅투아르 산”만 다르게 보게 한 것이 아니라, 정물화를 통해 “사과”와 같은 흔한 사물을 새롭게 보게 했으며, 자신의 부인과 아들의 초상화를 통해 실존하는 개별자를 캔버스의 전면에 등장시키기도 했다. 이전 시대 화가들은 신의 시선으로 보편성의 세계, 영원성의 세계, 추상적인 세계를 그려냈다면,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은 인간의 시선으로 특수성의 세계, 구체성의 세계를 그려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그는 자연에 숨어 있는 질서를 깨닫고, 그것을 회화로 표현함으로써 새로운 회화 방식을 선보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그림을 통해 사람들에게 그동안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들에 시선을 돌리게 했다.
이렇게 해서, 중세의 이콘 화가들은 감상자에게 묵상의 효과를, 르네상스의 풍경화 화가들은 감상자에게 여행의 효과와 같은 자연과의 만남을 가능하게 한다. 나아가 르네상스의 풍경화 화가들은 감상자에게 숭고미와 그로 인한 숭고의 감정을 체험하게 한다. 그런데, 이 숭고는 “초인간적인 역동성의 표상”으로 자연에 내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에게 내재한 것이다. 숭고는 인간의 인식이 자연과의 만남에서 발생하는 관념적 혹은 감정적인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14세기에 페트라르카가 방투산의 정상에서 자연에 압도된 채 고향을 그리워하는 자신의 정신을 의식했으며, 그 의식에 의해 고향을 보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