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영화, <물안에서>
물안에서 in water, 2023 제작
한국 | 드라마 | 2023.04.12 개봉 | 12세이상 관람가 | 61분
감독: 홍상수
*이미지: 다음포토
세 인물은 ‘돌의 섬’에서 영화를 찍기로 한다. 영상은 영화의 배경이 제주라는 사실을 충분히 짐작하게 하지만, 인물들은 그곳을 두고 ‘제주’라는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돌의 섬’이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관객 역시 ‘돌의 섬’이 상징하는 바를 궁금해하게 된다. ‘돌의 섬’이라는 이름은 신비한 신화적 서사를 품고 있는 곳과 같은 인상을 준다. 돌은 종교, 신화, 의례 등에서 성물(聖物)로 쓰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영화를 찍기 위해 머무르기로 한 그곳은 일종의 신화적 장소로 기능할지도 모르겠다.
아닌 게 아니라, 감독역을 맡은 인물이 구상한 영화의 이야기는 신화적이다. 그 이야기란, 한 남자가 ‘돌의 섬’에 온 많은 관광객이 드나드는 길 아래에서 쓰레기를 줍는 한 여인을 만나고, 그 여인에게 감화되어 그 여인을 좋아하게 된 후 땅 위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게 되지만, 그 여인은 그를 받아 들여주지 않았으므로, 그는 땅 위로도 갈 수 없었고, 그렇다고 땅 아래에서도 머무를 수 없게 되었으며, 결국 바다로 갈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마치 지하의 여신을 만나게 된 후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경계에 존재하게 되었으며 결국 모든 질료의 원형인 ‘물’로 되돌아가는 사람에 관한 신화 같은 이야기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카뮈의 소설인 <이방인>과 영화 <마틴 에덴>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두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결국 실현하고자 했던 자기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어떤 세계에도 속하지 못한 채 바다를 향해 헤엄쳐 나간다. ‘돌의 섬’에서 여신을 만난 후, 바다로 나아가 깊은 물에 잠겨 자기를 해체해 버린 그는, 어떻게 변모되었을까.
한편, 이 영화는 아웃 포커스 실험을 통해 영상 이미지를 흐릿하게 처리하였다. 세인(世人)들의 일상의 이미지를, 시시각각 변하는 인간 세상의 인상을 마치 인상파 화가가 실험하듯, 혹은 어항 속 물고기들이 서로를 보듯, 그렇게 화면에 담아냈다. 그럼에도, 아웃 포커스 실험을 하지 않은 장면이 있는데, 인물들이 머무르는 집주인 여자가 등장하는 장면과 해변에서 쓰레기를 줍는 여자가 등장하는 장면이다. 두 장면의 공통점은 이타적이고 이상적인 인간상을 엿볼 수 있는 여자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또, 세 인물 중 배우를 맡은 여성 인물은 이 영화에 참여하여 감독을 돕는 이유가 감독의 ‘됨됨이’ 때문이라는 말을 한다. 이 여성 인물 역시 앞의 여성들처럼 보이지 않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타적인 인물상을 보여준다. 즉, 타인을 환대하고 자연을 귀하게 대하고 사람의 성품을 우선시하는 사람들, 즉 자신과 관계된 모든 것을 배려하고 염려하는 사람을 보여줄 때만 물 밖인 듯이 인물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더하여, 이 여성 인물은 보이지 않는 세계와 윤리의 실재를 상기시키는 기능을 한다. 그녀는 밤에 돌연 “정신차려!”라는 큰 소리를 들었는데, 이 말소리에 자연히 죄책감이 일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자기 잘못을 쉼 없이 보고 듣는 어떤 신적인 존재가 보다 못해 호통을 치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말이다.
한편,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는 영화학과 교수와 학생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이전 영화들에선 이들 간에 영화에 대한 고민과 사랑과 연애의 서사가 있던 반면, <물안에서>에는 영화를 공부한 청년들만 등장하며 단편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한 고민의 서사만 있다. 이러한 변화의 양상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영화학도와 영화인을 향해 증대되어 가는 감독의 특별한 관심과 시선이다. 이야말로 그와 다른 감독들 간의 중요한 차이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