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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Apr 24. 2023

소설서평. 중심에 대한 저항과 예술의 본령에 대한 순종

양귀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쓰다, 2022)


서론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의 내용 소개    

 

  강민주는 ‘인간 실현을 위한 여성 문제 상담소’의 봉사자이자 여성의 폐쇄적 심리를 연구하는 대학원생이다. 강민주가 이러한 일과 공부를 하게 된 것은 아버지로부터 연유한다. 강민주는 아버지가 외도하여 낳은 자식인데, 아버지는 걸핏하면 어머니에게 폭행했고 그 아버지의 본처라는 여자도 강민주 모녀를 괴롭히긴 마찬가지였다. 강민주는 여섯 살 때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를 향해 장독대 뚜껑을 던짐으로써 그 시절 할 수 있는 저항을 다 했으나 늘 역부족이었다. 그러던 중 열한 살 때 아버지에게 새 여자가 생기면서 강민주 모녀는 비로소 아버지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이후 강민주 모녀는 모친의 노력으로 부유해지긴 했지만, 울타리가 필요했으므로 강민주의 어머니는 황남기라는 사내를 가까이 두었다. 황남기는 주로 불법적이고 거친 일을 하며 살았지만 자기 가족에게 경제적으로 시혜를 베푼 강민주 모녀에게는 지극히 충성하였다. 황남기는 동갑인 강민주를 선생님이라고까지 부르며 강민주 모친이 죽은 이후에도 강민주에게 충성을 다하였으나 속으로는 강민주를 사랑하고 있었다.

  상담하면서 강민주는 많은 여성이 남편의 폭력 아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과 어머니의 삶이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한편, 여성들 역시 남성성에 대한 여전한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강민주는 이러한 문제가 획기적인 사건을 통해 사회의 수면 위로 끌어올려짐으로써 극적으로 해결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머니의 기일 날, 강민주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환상을 깨기 위한 실험을 기도(企圖)한다.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백승하라는 남자 배우를 납치하고 아파트에 감금하여 사육하기 시작한 것이다. 성역할을 바꿔보는 실험을 통해 강민주는 백승하의 이미지 뒤에 숨은 추악한 남성성과 나약함을 드러내어 남성의 우월성이 허상임을 확인시키고, 나아가 그 우월성을 전복시키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백승하는 오히려 강민주의 가설을 전복시키는 실험 대상이었다. 백승하는 영상에서 보던 대로 언제나 부드러웠고 강민주의 폭력에도 저항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강민주라는 여성의 지성을 신뢰했으며 지지했다. 더불어, 강민주에게 백승하는 남성과 여성의 문제를 넘어 인간의 문제를 마주하게 하는데, 이는 그곳에서 가난에 의한 상처와 어린 시절 집을 나간 어머니에 향한 그리움과 예술에 관한 욕망을 깊이 마주한 백승하의 고백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백승하의 욕망을 깨달은 강민주는 그에게 둘만의 연극을 제안하고, 둘은 이오네스코의 『수업』으로 연기 수업을 한다. 백승하와 대화하고 연기로써 소통하면서 점차 강민주는 남성의 폭력적이고 가부장적인 보편적 특질에 대한 선입견을 해체하게 되고 백승하를 남성이 아니라 개별자로, 그리고 예술가로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백승하와 강민주의 연극이 상연되는 날, 관객의 자격으로 연극을 관람하던 황남기는 연극에서 교수 역을 맡은 백승하가 아가씨 역을 맡은 강민주를 살해하려는 장면에서 실제로 총을 쏘아 강민주를 살해한다. 이렇게 해서, 강민주의 시도는 실패하게 된다.         



  

  본론출판 당시 사회적 상황 설명 및 작가의 의도 해석

  

  우선,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 출판된 1992년은, ‘인구’라는 키워드로 살펴볼 수 있다. 1990년대 초는 근대적 인구 관리에 의해 태어난 아이들이 성인이 된 때이다.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유명한 문구를 통해 알 수 있듯 당시엔 4인 가족을 이상적으로 바라보고, 다산은 부부의 행복의 장애 요인으로 바라봄으로써, 은밀히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던 때였다. 이를 위해 여성의 출산은 외부에 의해 조절되어야 하는 행위였으며, 피임하는 여성은 현대적이고, 그렇지 않은 여성은 현대적이지 못한 사람이 되어 버리기도 했다. 

  다음으로, 이 소설이 출판된 1992년은 ‘인권’이라는 키워드로 살펴볼 수 있다. 1992년은 나혜석의 「경희」가 발표된 1918년에 비하면 여성의 인권에 관한 법·제도적 정비가 이루어짐으로써 여성은 이전에 비해 더 많은 형식적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가정 내부를 들여다보면 여성은 여전히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었으며 남성의 억압과 폭력에서 허덕이고 있는 형편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이 출판된 1992년은 ‘가부장제’라는 키워드로 살펴볼 수 있다. 가부장제라는 용어는 1960년대 후반에 통용되기 시작하였는데, 이 소설의 화자이며 스물일곱 살의 ‘강민주’는 이러한 용어로 표상되는 사회 구조 아래서 성장한 성인이다. 나혜석과 같은 여성 작가들이 글쓰기를 통해 여성 해방을 위해 분투했지만, 사회는 가부장제라는 용어를 내세우면서 전통적 성역할을 재생산하고 고착화하였다. 가부장제 아래 모든 남성은 남성이라는 이유로 여성보다 우월한 지위를 획득하였으며 여성은 종속적인 존재가 되어야 했다. 그래서 강민주는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 대학의 남학생들은 아직도 나혜석을 매도하는 시대에서 한 걸음도 진보하지 못했음을 슬퍼한다.”(양귀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쓰다, 2022, 34쪽)


  한편으로는 ‘딸·아들 구별 말”자라는 캠페인이 시작되었고, 여성에게 이전보다 형식적 자유가 주어졌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부장제라는 사회 구조가 고착화되었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면, 1990년대를 살았던 2030 세대 여성들은 부조리의 한복판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환경이 대외적으로는 여성 문제에 대한 변화의 목소리에 부응하고 있었지만, 대내적으로는 어머니의 삶과 자기 삶이 아무래도 아버지와 남자 형제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머니와 딸은 가정에서 아버지와 아들에 비해 암묵적으로 하등한 존재였으며, 사회적 역할을 맡더라도 남성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도 이제 남성처럼 배우고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시대라는 목소리는 높아졌지만, 그 가능성은 말로만 존재했으므로 여성에게 자유는 사방이 유리로 막힌 초원이나 마찬가지였다. 1970년대 전혜린에 의해 한국 여성에게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의 ‘니나’의 고백처럼 말이다. 


“인생은 끝없이 펼쳐져 있는 풀밭이 아니라, 그 속에서 내가 있는 힘을 짜내야 하는 네 개의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일 뿐이야.”(루이제 린저 지음, 『삶의 한가운데』, 박찬일 옮김, 민음사, 2007, 69~70쪽)


  즉, 1918년에 나혜석이 폭로한 시대의 문제는 1990년대의 딸들에게 계속되고 있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나혜석의 시대와는 달리, 그러한 문제를 글쓰기를 통해 깊이 자각하는 여성 작가가 많아졌다는 점과 그러한 문제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매체가 더욱 다양해졌다는 점일 것이다. 이를테면, 당시 TV 드라마는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으며 이 시대의 문제는 무엇인지를 마주하게 하기도 하였는데,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하여 <아들과 딸>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아들과 딸>(MBC 드라마, 1992. 10. 3. ~ 1993. 5. 9. 64부작)이라는 드라마가 1990년대 초에 방영되었으면서도 1960~1970년대 상황을 배경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는 점은 여전히 가부장제를 토대로 한 남아선호사상과 성역할의 구별과 교육 기회의 차별과 성별에 따른 상이한 미래 전망 등에 대해 많은 여성이 공감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에서 이귀남(최수종)이 당연히 꿈꿀 수 있는 것을 이후남(김희애)에게는 소망할 수는 있어도 금지된 것이었는데, 이는 가부장제 아래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에 의해 더 강하게 금지되곤 했다. 즉, 당시 강민주와 같은 여성은, 남성뿐만 아니라 이전 세대의 여성들, 더하여 변화의 필요를 자각하지 못하고 변화를 의지하지 않는 당대 여성들 모두에게 부조리를 느껴야 했다. 

  위와 같은 상황을 토대로 했을 때, 이 소설에서 양귀자는 세 가지를 의도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여성 인권에 관한 주장, 보편 인권에 대한 성찰, 그리고 사회 문제를 예술적으로 승화하는 일이다. 우선, 이 소설에서 당장 발견할 수 있는 작가의 의도는 남성에게 억압당하고 종속된 여성의 인권을 해방하는 일이다. 실제로 강민주는 여성들과 상담할 때 상대의 사연을 경청한 후에 법·제도 차원에서 여성의 권리를 설명해주고 이혼을 권하기도 한다. 강민주가 생각하기엔,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그들의 감정을 해소해줄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실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봉사하는 ‘인간 실현을 위한 여성 문제 상담소’는 말 그대로 상담을 해줄 뿐이며, 이 역시 소장의 정치 욕망을 위해 만들어진 상담소라는 점에서 여전히 여성이 목적 그 자체로 대해지는 곳이 아니라 수단화되고 있는 곳이나 마찬가지였다. 즉, 강민주가 생각하기에 남성중심적 사회의 변화도 필요하지만, 상담을 요청해오는 여성들과 이러한 상담소를 마련한 자칭 여성 지도자들이 이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도 필요했다. 그래서,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억압은 교묘하고 복합적이다. 이런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일상적으로 이해되고, 그리하여 일상의 하나로 무심히 잊히는 사회는 진정 옳지 않다. 그래서 강민주가 등장했다. (중략) 현실에는 없지만, 소설에서는, 소설이므로, 강민주 정도는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양귀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쓰다, 2022, 357쪽)     


  다음으로, 이 소설의 끝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보편 인권에 대한 성찰이다. 강민주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품고 살아왔고, 그 분노는 남성 전체에 대한 적대감으로 확대되었지만, 그가 납치한 백승하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품게 되면서, 모든 억압된 것에 대한 연민을 품게 된다. 백승하 역시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고 강민주가 그랬듯이 아버지와 단둘이 모진 세월을 살아냈지만, 그는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었다. 이러한 백승하를 보면서 강민주는 여성에 대한 연민을 넘어 점차 상처 입은 인간에 대한 연민을 품게 된다. 다음은 강민주의 내적 시선이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어머니에 대한 연민을 넘어 억압자에 대한 분노와 피억압자에 대한 연민으로 향하게 되면서 그녀의 심리에 변화가 생겼음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모든 젖어있는 것들은, 그것이 여자의 얼굴이건 남자의 얼굴이건 관계없이 나를 슬프게 한다는 것을 나는, 이제, 서서히 깨닫는다. 모든 젖어있는 것에 나는 태연할 수 없다. 젖은 얼굴의 비애 앞에서 나는 꼼짝도 하지 못한다.”(양귀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쓰다, 2022, 301쪽)     

 

  강민주의 위와 같은 고백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작가가 이 이 소설에서 강민주 역시 변화하고 성장하게 함으로써, 종국에는 여성 인권을 넘어 보편 인권에 대한 성찰을 의도했다는 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를 직접 언급한다.     

 

“나는 가능하면 이 소설이 여성소설의 범주에서만 읽히지 않고 세상의 온갖 불합리와 유형무형의 폭력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에게 함께 읽히기를 감히 소망한다. 그것이 삶을 대하는 진정한 예의라고 믿는다.”(양귀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쓰다, 2022, 357쪽)     


  즉, 작가는, 남성을 중심으로 한 일방적이고 수직적 관계를 여성을 중심으로 전복시키려고 했던 강민주가 백승하와의 수평적이고 연대적인 관계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이 소설이 여성 소설의 지평을 극복하게 한다. 실제로, 강민주는 백승하 역시 남자라는 한 종(種)에 불과하므로 그의 이미지는 환상일 뿐이며, 따라서 그러한 환상을 해체하고 결국 백승하의 실체인 남성성을 드러내어 여성들이 환상에서 벗어나,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연대하여 여성 문제를 극복하기를 바랐다. 한편, 강민주는 납치범이면서도 스스로 인간성을 져버리지 않는 매우 인간적인 사육자가 되려고 했고, 그로써 남성보다 성숙하고 우월한 존재임을 과시하려고 하였으며, 그러한 우월성을 토대로 백승하를 지배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강민주는 백승하를 남성이라는 보편적·생물학적 존재가 아니라 어린 시절 상처를 입고도 타인에게 사랑과 배려의 손길을 기꺼이 내놓는 성숙한 개별자로 깨닫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에서 작가가 의도한 것은 사회 문제를 예술적으로 승화하는 일이다. 강민주는 이오네스코의 『수업』을 대본 삼아 백승하와 연극 수업을 함으로써 인생 수업에 참여하였다. 강민주는 이오네스코의 부조리극을 연기해보면서 삶의 부조리를 새로운 방식으로 체험하고 마지막엔 황남기에 의해 극적으로 살해됨으로써 예술의 장(場)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사실, 강민주는 백승하 납치를 계획했을 때 품었던 소망을 실현했다고 할 수 있다.      


“나의 이 계획은 필연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가능한 한 이 일이 예술의 경지에 이르기를 바란다는 것까지는 덧붙일 수 있다.”(양귀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쓰다, 2022, 29쪽)     


  이러한 예술에 관한 관심과 갈망으로 인해 이 소설은, 남성이라는 주류 집단에 대한 여성이라는 비주류 집단의 저항에서, 기존의 주류 예술에 대한 새로운 예술의 도전에 관한 관심으로 시선을 옮겨 간다. 아파트라는 비현실적 공간에서, 강민주가 젠더 문제를 실험하였다면, 백승하는 통속극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새로운 연극에 대한 갈망을 구현하였다. 즉, 강민주와 백승하는 한쪽 부모로부터 상처를 입었다는 점, 그리고 기존의 것에 대한 염증을 느끼고 있었으며 새로움을 갈망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닮았다. 작가는 이러한 이들의 유사성을 통해 종국에는 인간성에 대한 성찰과 현실의 부조리를 드러내려고 한 것이다.     



      

결론독자의 반응 및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이유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발간 당시 한국 사회에 페미니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의 소재가 꽤 파격적이었으므로, 다른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페미니즘 주장이 주는 충격과는 달랐을 것이다. 강민주는 여성에 관해 진부한 주장을 하는 인물이 아니라 여성이 당한 것을 남성에게 되갚아줌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물이다. 이러한 면에서 강민주는 이전의 여성 소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성 인물과는 다른 차원에서 적극적이며 실천적인 인물이다. 이렇게 이 소설은 이야기 자체가 파격적이고 충격적이었으므로 당시 대중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소설이 이러한 파격성만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아니다. 당시의 베스트셀러를 넘어 한국의 고전 소설이 된 것은, 쇄신과 초월에 관한 인간의 근본적 욕망, 연민이라는 인간의 감정, 그리고 지성에 대한 인간의 신뢰를 보여줌으로써 삶의 철학을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강민주의 어머니는 언제나 강민주를 낳은 존재는 신이라고 하였다. 자신은 지상적·육체적 어머니일 뿐이며 신이 보낸 아이를 맡아 기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에 강민주는 아버지로부터 깊은 상처를 입었지만, 어머니의 사랑과 존중 덕에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강민주는 다른 사람들과 존재적 지위부터 달랐으므로, 당시 여성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강민주에게 삶의 과제란, 신의 자녀로서의 자신을 실현하는 것이므로,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는 출발선이 달랐으며, 자기의 과제는 신의 자녀로서 짊어진 과제이므로, 그것은 당위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강민주는 여성 문제를 위한 전사(戰士)가 되어야 했다. 그런데, 강민주의 자기 정체성에 관한 생각은, 나혜석의 「경희」를 떠올리게 한다.    

  

“경희도 사람이다. 그다음에는 여자다. 그러면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이철원 김 부인의 딸보다 먼저 하느님의 딸이다. 여하튼 두말할 것 없이 사람의 형상이다.”(나혜석 지음, 『나혜석, 글쓰는 여자의 탄생』, 「경희」, 민음사. 2022, 64~65쪽)     


  한편, 이 소설이 이전의 페미니즘 소설과 다른 점은, 여성에게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여성이기 이전에 하느님의 모상(模像)으로서의 자신을 자각하게 하는 것을 넘어 개별자로서 인간성에 대해 자각하게 한다는 점이다. 작가는, 평범하고 부유한 집안의 딸인 경희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 폭력적인 아버지와 그의 첩인 어머니를 둔 강민주의 분노를 통해 남성에 대한 여성의 적대감을 폭로하였으며, 이것을 넘어 강민주 역시 백승하를 통해 자기중심적이며 오만한 선입견을 해체당하고 자기를 반성하는 변증법적 성찰 과정에 내던져지게 하였다. 

  그러고 보면, 강민주는 남성을 중심으로 한 주체 중심주의를 해체하고 싶었지만, 결국 주체 중심주의를 벗어나지는 못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강민주는, 백승하를 통해 실존적·개별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이해하게 되면서, 자기 경험과 심리학적 지식을 토대로 인간을 관찰하고 재단함으로써 대상화했던, 그래서 주체 중심주의에 빠졌던 자기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강민주의 서사는 실패의 서사구조와 초월의 서사구조를 모두 보여준다. 우선, 그녀의 이야기가 실패의 서사구조인 이유는, 강민주의 선입견과 남성 감금 실험의 가설이 해체되었을 뿐만 아니라 강민주는 그녀에게 억압당하면서도 그녀를 사랑하던 황남기에 의해 살해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그녀의 이야기가 초월의 서사구조인 이유는, 강민주는 여성의 소외를 넘어 인간의 소외에 관해 성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넓은 의미에서의 페미니즘이란 결국 여성이라는 소수자의 소외로부터 시작하여 소외된 모든 존재를 향해 연민과 관심을 확장시켜 나가는 시선 혹은 실천이라고 한다면, 강민주는 좁은 의미에서의 페미니즘을 초월하여 주체 중심주의적 시선을 해체하고 타자의 주체성을 깨달으며 확장된 페미니즘을 향해 자신을 성장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이 소설은, 여성이 새로운 방식으로 인간으로서의 자기를 반성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전의 페미니즘 소설을 내용 차원에서 극복하였으며, 부조리극의 서사 형태를 취함으로써 이전의 페미니즘 소설을 형식 차원에서 극복하였다. 작가는 부조리극인 이오네스크의 『수업』을 소설에 끌어들임으로써, 남성이 여성에게 감금되고 길들여지는 환상적인 장소에 비현실의 요소를 더함으로써 현실의 부조리를 더욱 예술적으로 고발한다. 즉, 작가는 강민주와 어머니가 겪었던 여성 소외와 백승하와 황남기가 겪었던 인간 소외라는 오래된 문제를 현대적인 방식으로 구성하였다. 

  정리하면,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당시 독자에게 여성 소외와 인간 소외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모든 주체 중심주의를 폭로하고, 이를 부조리극 서사 형태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실험함으로써, 대중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즉, 이 소설은 모든 개별자에게 깃들어 있는 폭력성과 상처를 마주하게 함으로써 인간 내면을 마주하게 하였고, 전통적 주제를 새로운 형태로 실험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이다. 나아가 이 소설은 금지된 것을 소망하고 초월하고자 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보편적 특성이며, 예술의 본령(本領)임을 상기하게 하였다는 점에도 시대를 초월한 의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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