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머리를 7년째 집에서 잘라주고 있다. 오랜 기간 괜찮은 미용실을 찾지 못한 집돌이는 와이프가 미용 강좌를 듣고 와 직접 머리를 해주기를 바랐다. 그때는 딸아이 미용실 보내는 비용도 아까웠던지라(항상 앞머리와 뒷머리만 조금 자르는 게 다였다) 내가 하는 게 낫겠다 싶어 큰 맘먹고 집 근처 마트 문화센터의 미용 수업을 수강했다. 그렇게 배운 기술로 남편과 아이의 머리를 손질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말했다.
“내 머리도 네가 좀 손 봐줘.”
호스피스에 들어가기 한 달 전쯤이었다.
건강했던 엄마의 머리는 새카맣고 풍성했다. 세상 모든 어머니들이 같은 미용실에서 쓰고 나온 듯한 꼬불꼬불 파마머리가 어린 내 눈엔 참 신기해 보였다.('응답하라 1988'에 명료하게 고증되어 있다) 시대가 추구하는 스타일에 따라 숙희 씨의 헤어는 때로는 갈색 빛으로 바뀌고 컬도 세련돼졌다. 나중에 알았지만 엄마는 납작한 뒤통수를 콤플렉스로 여겨 ‘뽕’을 띄우는데 진심이었다. 그런 엄마에게 항암이라는 몹쓸 것이 들이닥쳤다. 머리칼을 잃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독한 약제가 건강했던 모근과 정신을 태워버리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숙희 씨는 탐스러웠던 머리칼이 뭉텅이로 빠지는 모습을 절대 보여주지 않았다. 엉망이 된 머리 자체도 세상에 내보이는 걸 꺼려했다. 엄마의 무너지는 마음을 알려주는 건 거실 한 구석에 놓인 쓰레기통 속 머리 뭉치뿐이었다. 이런 상황에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랐던 철없는 딸내미는 그저 저며오는 마음을 혼자 그러 안았을 뿐, 엄마에게 위로의 말도 제대로 건네지 못했다. 아니, 어떤 말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는 게 더 정확했다. 참 별 도움 안 되는 딸이었다.
항암이 얼추 마무리되던 무렵의 엄마의 머리는 머리칼이라고 부르기 힘든 상태로 새롭게 자랐다. 생기가 없고 퍼석한 머리 가닥들이 힘없이 자라났다. 안타까운 와중에 엄마는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야, 잔디인형 머리 같지 않냐?”
우느니 차라리 웃기자는 마음인 건지, 엄마는 자신의 모습을 자조적으로 표현했다. 웃으며 이야기하니 같이 웃기는 했지만 그 누구도 속으론 웃지 못했을 멘트였다. 이렇게 말하기까지 숙희 씨가 뒤에서 얼마나 많이 울었을지 감도 오지 않았다.
엉망이 된 머리의 회생을 포기한 엄마는 가발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짙은 갈색에 컬이 자연스럽게 유지되는 가발들 몇 가지를 사서 두상에 어울리게 손질해 쓰고 다녔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솜씨 좋은 엄마가 요리조리 튜닝을 잘해 제법 자연머리처럼 어울리게 되었다. 역시나 손끝이 야무진 김숙희 씨였다. 화장대 위에는 항상 거치대에 올려진 가발과 뒤통수 볼륨을 위한 뽕 가발 그리고 롤 브러시, 머리핀이 정리되어 있었다. 식사자리나 모임에 갈 때, 여행을 갈 때도 예쁘게 가발을 쓰고 단장을 하고 나갔다.
“짜쟌, 머리 잘 됐지?”
한참 매 만지고 나서 기쁜 얼굴로 자랑하던 엄마의 미소를 기억한다. 스타일링이 매우 잘 된 어떤 날에는 셀카도 찍어서 SNS 프로필 사진에도 올려놨었다. 소녀 같고 아가씨 같았던 숙희 씨였다.
급격하게 상태가 안 좋아져 이미 한번 호스피스에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던 가을, 별안간 엄마가 머리를 맡기겠다고 했다. 조금 당황했지만 해드리겠다 답하고 도구를 챙겨 친정집에 갔다. 가을 햇볕이 따사로이 들어오던 거실에 숙희 씨는 묵묵히 신문지를 폈다. 나에게 등을 보이고 앉은 엄마의 뒷모습이 낯설고 서글펐다. 엄마가 이렇게 작았던가. 머리카락이라기엔 부스러기에 가까운 상태의 머리를 살짝 만지고 있으니 엄마가 말했다.
“뒤에만 조금 다듬어줘.”
거의 사라진 숱이었지만 그래도 정돈되어 보이지 않은 건 싫었나 보다. 들쭉날쭉해 보이는 부분부터 조금씩 자르고 다듬었다. 전문가용 가위라 날이 무척 날카로워서 행여 엄마 몸에 상처라도 낼까 싶어 숨을 참아가며 이어갔다. 아픈 이후로 엄마의 머리를 이렇게 자세히 본 건 처음이었다. 정수리에는 두개골 위로 자라난 작은 암덩어리가 튀어나와 있었다. 둔탁한 것에 맞아 볼록하게 올라온 혹처럼 보이는 녀석을 속상한 마음에 조금 어루만지니 엄마가 불편해했다. 금방 손을 떼고 말없이 뒤통수의 잔머리들을 정리했다. 어지간하면 맡기지 않는 자존심 강한 숙희 씨가 미용을 요청하는 날이 오다니. 그것도 이렇게까지 아프게 되었을 때라니. 멈춘 듯한 시간 속에 복잡한 감정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얼추 마무리한 후 거울을 본 엄마는 만족스럽다는 표시를 했다.
“음! 제법이군.”
“배워두길 잘했네요.”
남편의 요청으로 시작한 미용이지만 그날은 정말 배워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단장을 한 엄마는 내 손길을 끝으로 인생의 마지막 미용을 마쳤다.
최근 머리를 새로 하면서 이날 생각이 많이 났다. 한껏 구불구불해진 내 머리를 숙희 씨는 부럽다며 만지작거렸을 거다. 엄마가 이용한 마지막 미용실이 나여서, 짧지만 오래 간직할 추억이 남아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