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던 대학교를 휴학하고 다시 입시를 시작한 지 몇 개월쯤 되었을 때 엄마의 갑작스러운 제안을 받았다. 당시 나는 다시 어렵게 주어진 소중한 기회에 조금의 후회도 남기고 싶지 않았기에, 모든 즐거움을 배제하고 공부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 좋아하던 만화책도 끊었고 노래도 듣지 않았으며, 휴식도 밥 먹을 때나 잠깐 가지는 게 전부였다. 그런 딸이 안쓰러웠는지 뭐라도 해주고 싶으셨었나 보다.
“엄마랑 목욕탕 가서 때 벗기고 맛있는 것도 먹고 오자.”
아무래도 딸이 피로해 보였나? 어쩌면 너무 꾀죄죄해 보였을지도? 좌우지간 빳빳하게 긴장해있던 나를 풀어준 말랑한 엄마의 말에 흔쾌히 날을 잡았다.
행선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용산 어디쯤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요즘처럼 찜질방 문화가 보편적이지는 않아서 그냥 보통 동네 목욕탕 같은 곳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엄마와 나란히 수건으로 머리를 둘둘 감싸고 따끈한 욕탕에 몸을 담갔을 때의 그 기분은 여전히 잊히질 않는다. 특히 욕탕 맞은편 타일 벽에는 거대한 산과 소나무가 그려져 있었는데 산이 형태가 후지산과 비슷해서 인상적이었다. 분명 엄마랑 보고 낄낄댔을 것이다. 여기가 일본이야 뭐야-하면서 말이다. 욕탕에 앉아서는 딱히 별 이야기는 안 했던 것 같다. 우리는 좋게 말하면 쿨, 나쁘게 말하면 무뚝뚝한 관계여서 서로의 마음을 살갑게 헤아려주기보다는 웃겼던 뉴스나 지인들의 근황, 옛날이야기 같은 것들을 나누는 걸 즐겼다. 팍팍한 입시생의 삶에도 황당하고 엉뚱한 일들은 있기 마련이라 시시콜콜 말씀드리면 엄마는 아주 재미있어하셨다. 수다는 우리 모녀의 사랑 표현법이었다. 마음의 온도가 욕탕의 온도만큼 오르는 시간이었다.
“때를 뺐으니 이제 배를 채워야지. 너 도가니탕 먹어본 적 있니?”
도가니탕? 생전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이었다. 여쭤보니 설렁탕이랑 비슷한데 물컹한 연골이 들어있는 거라고 설명해주셨다. 한창 식감에 예민했던 나에게 모험같이 느껴졌다. 그래도 엄마가 몸보신 시켜주시는 거니 먹어보기로 하고 가까운 가게로 들어갔다. 주문한 도가니탕의 생김새는 친숙한 듯 낯설었다. 숟가락을 넣어 뽀얀 국물 사이로 보이는 해파리와 젤리뽀 그 사이 어디에 있는 듯한 물체를 들어 올렸다.
“그건 와사비 간장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다.”
엄마 말씀대로 먹어봤다. 간장을 좁쌀만큼 적셨기는 하지만. 맛은 참 고소했다. 동시에 구수하기도 했다. 아, 하지만 이 식감은 쉽지 않았다. 물컹거리는 느낌을 반감시키고자 혀와 입천장 사이로 으깨어 삼켰다. 표정은 아마 가관이었을거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엄마는 재밌어하셨다. 그때는 몰랐는데 아이를 기르는 지금 돌이켜보니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처음’을 알려주는 그 기쁨과 즐거움을. 내 모습을 보며 엄마도 같은 걸 느끼셨겠지? 도가니탕이 뱃속도, 마음도 뜨끈하게 데워준 순간이었다.
엄마의 뭉근한 응원 덕분에 남은 일수를 더욱 열심히 달릴 수 있었고 그해 말, 원하던 입시 결과까지 얻었다. 집 전화로 합격 확인을 하던 순간의 엄마의 표정이 생생하다. 그 남다른 환희의 표정을 보며 효녀 노릇을 톡톡히 했음에 어깨가 으쓱했다. 사실 그때는 내 기쁨에 휩쓸려 있어서 엄마에게 감사함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가족들도 챙기고 개인 사업에 내 입시 뒷바라지까지 하느라 고생하셨을 텐데 말이다. 내 입시가 끝나고 고작 4년 뒤에 엄마가 암 환자가 되실 줄은 꿈에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