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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하고 따듯한 마음을 담아 쓰고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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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 씨, 무슨 생각해요?
장난을 잘 치는 김숙희 씨-1
‘장난을 잘 치는 타카기 양’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장난의 고수인 여중생 ‘타카기’와 이에 매번 당하는 허당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필통을 깜짝 상자처럼 만들어서 열어보게 해 놀라게 한다든지, 늘 타고 오던 자전거 없이 등교하고서는 ‘너랑 손잡고 학교 가고 싶어서’라고 말해 심쿵하게 만든 달지 하는, 그야말로 중학생다운 귀여운 장난들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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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25. 2025
숙희 씨, 무슨 생각해요?
발로 전하는 사랑
엄마와 나란히 걷는다. 어느새 나보다 약간 낮아진 왼팔에 슬쩍 오른팔을 감는다. 국수 타래처럼 차지게 휘감기길 바라지만, 어쩐지 건조하고 휑뎅그렁한 공간이 우리 둘 사이에 서려있다. “불편해.” 잠시 견뎌주며 걷던 숙희 씨는 이내 슥- 팔을 빼고 남은 걸음을 재촉한다. 머쓱해진 내 오른편은 익숙한 듯 그러려니 한다. 우리가 외출할 때면 팔짱 기싸움이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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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18. 2025
숙희 씨, 무슨 생각해요?
채집의 여왕
부모님 손에 이끌려 이곳저곳 다니던 어린 시절, 나의 기억 속에는 채집을 한 경험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두 분 중 특히 엄마가 수확하는 걸 참 좋아해서 겨울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에는 항상 뭔가를 잡거나 캐고는 했다. 봄은 머위의 계절이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서울집이 아닌 양양에 주로 계셨는데 머위가 많이 자라는 노지를 귀신같이 찾아서 한 보따리씩 따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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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11. 2025
숙희 씨, 무슨 생각해요?
배틀시티
“엄마가 딱 한 판만 더 하고 줄게. 기다려~” “쳇, 알았어.” 놀랍게도 이것은 나와 딸의 대화이다. 우리 집에서 게임을 제일 좋아하는 건 초등학생인 딸도 게임 회사 직원인 남편도 아닌 바로 나다. 종종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빠질 때가 있는데 남편 말로는 그때 내 눈빛은 살짝 돌아있다고 한다. 닌텐도 스위치가 생기고 ‘동물의 숲’을 시작했던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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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04. 2025
숙희 씨, 무슨 생각해요?
행복을 짓는 사람
슥슥 스르륵 사각사각 은반 위 피겨 스케이터의 날처럼 천 위를 누비는 가위질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엄마는 자기 몸만큼 긴 자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닳고 닳은 자그만 하늘색 초크로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잘라 낸 각 부위들을 부라더 미싱기로 드르륵 박고 꼼꼼하게 마무리를 하고 나면 뚝딱 옷 한 벌이 만들어진다. 손 끝이 야물지 못한 나는 엄마가 만드는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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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5. 2025
숙희 씨, 무슨 생각해요?
버건디와 화이트
엄마 뱃속에서 나왔지만 엄마랑 나는 아주 반대의 캐릭터를 가졌다. 친탁을 한 내 외모부터 성격, 취향까지 이렇게 안 닮을 수도 있구나 싶었다. 이러한 우리의 다름을 색상으로 표현해 보자면 와인 색깔이 떠오르는 ‘버건디’와 눈처럼 하얀 ‘화이트’가 아닐까 싶다. 엄마의 인상은 꽤나 강렬한 편이었다. 검고 짙은 풍성한 머리칼과 다부진 눈썹, 다소 부리부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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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8. 2025
숙희 씨, 무슨 생각해요?
Mama in NewYork
911 테러가 발생하기 불과 한 달 전, 우리는 뉴욕에 사는 큰 외삼촌 댁에 있었다. 외할머니의 생신을 기념하여 작은 외삼촌 식구들까지 모두 함께 단체 여행을 갔기 때문이다. 엄마를 포함해 모두 합쳐 8명이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첫 해외여행이었고 아무 생각이 없었다. 뉴욕은 그저 친척이 살고 있는 도시였을 뿐이었다.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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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1. 2025
숙희 씨, 무슨 생각해요?
부업의 여왕
엄마는 국세청 공무원이었다. 지금은 다들 못 해서 안달인 공무원직을 동생을 낳으면서 그만두었다. 그 아까운 걸 왜 그만두었냐는 나의 질문에 엄마는 씁쓸하게 대답했다. “할머니가 두 명은 못하겠다 싶으셨나 보지.” 내가 그렇게 말썽을 부렸던가? 허구한 날 동네를 쏘다니고 이웃집에 가서 밥 잘 얻어먹고 오고 그랬긴 하다만, 내향적인 할머니한테는 버거운 손녀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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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04. 2025
숙희 씨, 무슨 생각해요?
이양과 커피
인턴 시절, 나 혼자 사무실을 지키던 중 손님이 방문했다. 현직에서는 물러났지만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와 관련 있던 사람이었는데 약속 없이 갑자기 온 것이다. 그는 디자인 스튜디오에 처음 와본 듯 연신 두리번거렸다. 그러고는 차 드시겠냐는 형식적인 인턴의 응대에 손사래 치며 테라스 자리로 갔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흑발로 염색한 머리와 두툼한 풍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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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28. 2025
숙희 씨, 무슨 생각해요?
아파트의 여인
1989년 어느 봄날, 엄마와 나 그리고 돌쟁이 남동생은 상도동 금잔디 연립을 떠났다. 18평 남짓되는 공간은 어른 여섯 명과 아이 둘이 살기에는 무리였기 때문이다. 해외 출장 중이던 아빠 대신 가족과 지인의 도움을 받아 이사한 곳은 상계동의 한 주공아파트였다. 엄마 인생의 첫 아파트, 게다가 전에 살던 곳과 같은 평수지만 3명밖에 살지 않는 쾌적한 인구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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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21. 2025
숙희 씨, 무슨 생각해요?
도둑이 아니에요.
할머니가 치매 진단을 받은 건 2005년도의 일이었다. 그 시절은 치매에 대해 무지하던 시기였다. 단지 기억력이 많이 나빠지는 것일 뿐, 병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물건을 자주 깜빡한다든지 이미 한 행동을 두 번, 세 번 반복한다든지 하는 본격적인 증세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철부지 고등학생이었다. 할머니의 병이 얼마나 중한지, 엄마가 어떤 고충을 겪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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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14. 2025
숙희 씨, 무슨 생각해요?
어미새의 가르침
모처럼 친정에 들렀던 어느 날, 엄마가 집 근처에 자주 가던 초밥집에 가야 한다며 채비를 하셨다. 초밥이 드시고 싶으신가 했지만 목적은 전혀 달랐다. 얼마 전 손님 대접차 갔다가 단체로 탈이 나서 그에 대한 책임을 물으러 가야 한다고 했다. 혼자 가는 것보다 둘이 가는 게 낫다 싶으셨는지 나에게도 같이 가자 하셨다. 사실 나는 소위 말하는 ‘쫄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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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07. 2025
숙희 씨, 무슨 생각해요?
휴재합니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는 것조차 목 안에서 맴도는 연말이네요. 있어서는 안 될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신 많은 분들과 사랑하는 사람을 한순간에 잃은 유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따듯하고 정겨운 이야기를 올리는 것이 도저히 내키지를 않아 휴재를 결정했습니다.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몇 시간 후면 2025년이네요. 청사의 해, 큰 복을 바라기보다는 그저 평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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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31. 2024
숙희 씨, 무슨 생각해요?
쥐와 개의 습격
가끔씩 해주는 옛날이야기를 들어보면 엄마의 어린 시절은 참 어렵고 힘들었다. 대한민국의 7,8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어른들의 대부분이 그랬겠지만, 직접 들은 일화를 떠올리면 우리는 얼마나 풍요롭게 사는 건지 죄송스러울 지경이다. 그래도 쿨하고 위트 있던 엄마는 궁핍했던 시절마저 우스갯소리로 승화시켜 들려주곤 했다. 한창 직장에 다니던 때, 엄마는 아끼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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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24. 2024
숙희 씨, 무슨 생각해요?
소금 좀 주세요
이불에 지도를 그리고 말았다. 아마 네 살에서 다섯 살 무렵쯤이었을 거다. 아직도 그날이 기억나는 걸 보면 꽤나 강렬한 경험이었나 보다. 전날 물을 많이 마시고 잔 건지 아님 화장실 가는 꿈을 꿨는지는 몰라도 내가 그린 노오란 얼룩을 발견하고 느꼈던 당혹감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나 오줌을 싼 것보다 더 강렬하게 남은 기억은 엄마가 준 벌칙이었다. “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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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17. 2024
숙희 씨, 무슨 생각해요?
목욕탕과 도가니탕
다니던 대학교를 휴학하고 다시 입시를 시작한 지 몇 개월쯤 되었을 때 엄마의 갑작스러운 제안을 받았다. 당시 난 모든 즐거움을 배제하고 공부에만 몰두하던 시기였다. 그 좋아하던 만화책도 끊었고 노래도 듣지 않았으며, 휴식도 밥 먹을 때나 잠깐 가지는 게 전부였다. 씻는 시간마저 아끼다 보니 지하철에서 경찰에게 행려병자로 오해받은 적도 있었다. 그런 지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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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10. 2024
숙희 씨, 무슨 생각해요?
동대문, 추억 한 그릇
엄마와 동대문종합시장 쇼핑 후 꼭 가던 중국집이 있다. 자투리 천과 부자재가 담긴 깜장봉다리를 익숙하게 내려놓고 짜장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고민하던 소소한 시간들…… 함께 밥 먹으며 지인들의 소식과 일상 속 단상들을 나누던 그 공간에 이제 엄마는 오실 수 없다. 엄마가 떠나고 팬데믹이 터지는 바람에 동대문은커녕 어디도 갈 수 없었지만 계속 그곳이 그리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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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03. 2024
숙희 씨, 무슨 생각해요?
숙희 씨의 36년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책 기획이 하나 있다. 바로 엄마에 관한 책이다. 5년 전 멀리 소풍을 떠나버린 우리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엄마는 아주 오래전부터 가계부 겸 짧은 일지를 썼다. 검은색 인조가죽 커버에 금색이나 은색으로 그 해의 연도가 형압 처리된 옛날식 노트에 기록을 했다. 엄마가 기록을 꾸준히 해온 걸 안 것은 고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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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2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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