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꽃인지 모르지만

by 해온

눈살이 절로 찌푸려질 만큼의 통증을 느끼면서도 애써 감은 눈은 일부러 뜨지 않았다. 버스 창문에 부딪히는 머리야 깨지든지 말든지.


나는 엄살이 심한 편이다. 단지 그걸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그러니 연신 박아대는 머리가 아프지 않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엄살도 그것에 응해줄 대상이 있어야만 부리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 존재를 잃은 지가 언제였더라? 열심히 손가락을 헤아려봐도 열 개뿐인 숫자로는 셈이 될 리 만무하니, 어쩌면 속으로만 삭여버리는 것과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마인드를 가지게 된 것이 자의가 아니라 타의였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갑자기 손끝에서 낯선 감각이 느껴진다.


울렁-


눈을 크게 뜨고 봐도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하찮은 가시 하나가 박혔다. 비틀고, 잡아 뜯고, 긁어봐도 이 귀찮은 녀석은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점만큼 작은 크기이건만 그 존재감은 가히 지나치다.


아프다.

따갑다.


정말, 성가시다.


신경질이 나서 죽겠다.


그러다 눈물이 맺혔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눈물이다. 고작 이 정도로 이럴 필요가 없는데, 오히려 그 사실이 명치 어딘가를 찔러댄다. 그 고작이 자꾸 마음을 건드린다. 빈틈없이 꽉꽉 들어찬 사람들의 시선은 어쩌려고 속도 없이 이러는지. 얼른 소매를 끌어올려 눈가를 훔쳤다. 하품이라도 하는 것처럼. 봄이라서 그렇다고, 피곤해서 그렇다고 아무 말이나 막 갖다 붙인다. 변명은 항상 준비되어 있다. 단지 그 변명을 들어줄 사람만 없을 뿐이다.


아무래도 봄은 사람 마음을 어쩔 수가 없게 만드나 보다. 근래의 나는 내가 몹시도 낯설다.


터덜, 터덜-

버스에서 내려 골목으로 들어선다. 터덜거리는 발걸음이 유난스레 크게도 들리는 듯하다. 눈을 아무리 씻고 봐도 흙은 보이지 않는 길이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빈틈없이 덮어버렸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틈 사이에서 민들레와 제비꽃들이 한창이다. 겨우내 숨죽이던 녀석들이 저 좁은 틈새를 비집고 올라와 비로소 틔워낸 작은 꽃잎들이 대견도 하다. 희미한 실바람에도 온몸을 흔들면서도 저들은 꽃을 피워냈다.


저 녀석들은 본인들이 어떤 꽃인 줄 알고 있었을까? 보라색 꽃을 피울지, 노란색 꽃을 피울지 가늠이라도 하고 있었을까? 아니, 스스로가 꽃인 줄은 알고 있었을까? 아니면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그냥 올라온 것일까.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몰라도 그저 밀려 올라온 것. 단지 그 뿐이었을까?


나는 아직 어떤 색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분홍색인지, 빨간색인지, 아니면 끝내 아무 색도 아닌 채로 남을지. 어쩌면 잡초일지. 차라리 잡초인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름 없는 풀이라면, 굳이 내 존재 가치와 기준을 증명해내야할 필요도 없을테니.


선인장의 잎은 수분 손실을 막기 위해 가시가 되었다고 했다. 찔레의 가시는 꽃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 안에서 자라난 이 뾰족하고, 모가 난 것들도 이유 없이 생겨난 것은 아닐 것이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혹은 무언가를 잃지 않기 위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나는 종종 쌀쌀맞다는 소리를 듣곤 한다. 다정하다는 말과는 거리가 먼 사람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 말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말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나 스스로가 알고 있으니 큰 의미를 두지 않을 뿐이다. 본래 유약하기 짝이 없는 성미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차가운 사람"이라는 가시로 둘러놓아야 하니까.


손가락에 박힌 가시는 여전히 빠지지 않는다. 작고 하찮은 것 하나가 이렇게 나를 귀찮게 할 줄은 몰랐다. 어쩌면 저 가시도 비슷한 처지였을지 모른다. 소중하거나 혹은 약한 어떤 것을 지켜야 했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이 가시를 억지로 빼내지 않기로 했다. 억지로 잡아 뜯을수록 더 깊이 박힌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대신 그 불편함을 그대로 두기로 한다.


골목 끝에서 다시 바람이 분다. 민들레가 흔들린다. 제비꽃도 함께 흔들린다. 꺾이지 않는 유연함이 부럽다.


나는 아직 어떤 꽃인지 모른다.
굳이 미리 알아야 할 이유는 없겠지.

이미 나로 살아내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