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으니까, 커피부터!

내 건 사 오지 마라 (네!!!)

by 해온





우리 사장님은 미국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어릴 적,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자라 결혼과 아이 탄생, 육아까지 함께 했던 나라였으니 말이다.


사장님은 평소엔 면바지, 청바지 같은 캐주얼한 차림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내게 말을 걸어오셨다.


“야, 오늘 내 스타일 어떠냐? 미국 거 입었다.”


그날은 베이지색 면바지 차림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잘 어울린다고, 멋지다고 입에 발린 소리를 했다.

그러자 사장님은 으쓱하며 덧붙이셨다.


“비싼 바지다. 이거 내 와이프가 미국에서 사서 보내준 거다.”


며칠 동안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귀에 딱지가 앉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케이블 TV 홈쇼핑에서 똑같은 바지를 팔고 있었던 것이다. 단돈 39,900원에 세 장 세트로!



사장님의 미국 사랑은 간식에서도 이어졌다.

사이다는 안 드시면서도 콜라는 엄청 좋아하셨고, 한국 것도 ‘미국식’으로 만든 거라면 찬양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 선물이 들어왔다.

거래처 직원분이 직접 만든 비누였는데, 사장님이 미국 것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그분이 ‘made in USA’ 스티커를 따로 붙여 보내주신 것이다.

사장님은 포장을 뜯자마자 얼굴이 활짝 펴졌다.

“역시 미국 거라 향도 다르다”, “센스 있다”며 한동안 칭찬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뒤, 그 선물을 보낸 분이 회사에 방문해 한 마디를 던졌다.


“아, 그거 제가 만든 거예요. 그냥 스티커만 붙인 거예요.”


그 순간 사장님 얼굴이 굳더니, 갑자기 온몸을 긁기 시작했다. 대놓고, 아주 열심히.

아무 말도 못 하고 넘어갔지만, 다음 날 남은 비누를 몽땅 들고 와서는 우리에게 내던지듯 주며 말했다.


“애초에 나랑은 안 맞았는데 성의 생각해서 좋다고 한 거다.”


며칠 전까지 향이 좋다느니, 미국 거라 체질에 맞는다느니 하시던 분이 맞나 싶었다.



커피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사장님은 스타벅*나 커*빈 같은 브랜드 커피만 드셨다.

어느 날 내가 편의점에 들렀다가 직원들 간식으로 캔커피 여섯 개를 사 온 일이 있었다.

사장님 것도 챙겨 드리려고 했는데, 갑자기 버럭 화를 내셨다.


“캔커피인 줄 알았으면 안 먹었다!”


순간 얼어붙은 나는 뭐라 대꾸도 못했는데, 그분은 내 손에서 캔커피를 하나 낚아채더니 원샷을 해버렸다.

그럴 거면 왜 화를 내셨던 걸까.


그 후로는 내가 커피 사러 간다 하면 꼭 “내 건 사 오지 마”라고 못을 박으셨다.

그런데도 정작 사 오지 않으면 또 눈치를 주셨다.


그래서 나는 이번엔 작정하고 복수하기로 했다.
늘 “내 건 사 오지 마라”던 사장님 말이 얄미워서, 일부러 스타벅*에 들렀다.

생전 마셔본 적도 없는 카라멜 마끼아또를 다섯 잔이나 주문해 직원들 책상 위에 줄줄이 올려놓았다.

커피 향이 사무실 가득 퍼지는 동안, 사장님 자리에는 아무것도 올려두지 않았다.


그때 사장님이 내게 날린 눈빛은, 스물여섯 해 인생에서 처음 받아본 아주 뜨겁고 날카로운 째림이었다.

복수는 성공했지만, 후폭풍은 있었다.

며칠 동안 사장님은 틈만 나면 “나 없이 먹으니 그렇게 맛있었냐?”라며 갈궈댔다.


게다가 진짜 웃긴 건 따로 있었다.
나는 카페인에 몹시 약한 체질이라, 그날 카라멜 마끼아또를 마시고 하루 종일 손을 덜덜 떨어야 했다.

생각해 보면, 사장님을 괴롭히려다 결국 벌은 내가 받은 셈이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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