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임은정, 못할 게 없다고요!
달동네 끝자락, 빼곡히 맞닿은 슬레이트 지붕 집들을 따라 골목을 내려오면 꼭 보이는 게 있었다.
만수 아저씨의 낡은 분식트럭.
붉은색 도장이 벗겨져 군데군데 맨살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튀김냄비 안에서 기름 냄새가 솔솔 풍기면 동네 애들 발길은 저절로 향했다.
떡볶이 국물 자글자글 끓는 소리, 튀김이 바삭바삭 튀겨지는 소리. 그건 달동네에 울려 퍼지는 소리 중 가장 배부른 소리였다.
그런데 오늘 그 트럭 앞에 선 만수 아저씨 얼굴은 심각했다.
담배를 뻑뻑 빨며 트럭을 쓰다듬던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에휴.. 이제 진짜 못 해 먹겠다. 폐차장으로 보내야지.”
마침 할머니의 약을 사러 다녀오던 은정의 귀에 그 말이 딱 꽂혔다.
“뭐라고요, 아저씨?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만수 아저씨는 고개를 푹 떨군 채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은정은 양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아저씨!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우리 만수 아저씨!
그거 팔지 말고 기다려요. 내가 꼭, 꼭 사러 올 거예요. 알았죠?”
만수 아저씨는 허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이 트럭을? 허허, 에라이. 지나가던 독구가 웃겠다.”
“아저씨, 저를 너무 얕잡아보시네. 저 은정이에요. 임은정!
꽃다운 스무 살, 달동네 에이스! 지는 게 뭔지도 모르는 슈퍼 에이스를 뭘로 보시고?”
은정은 운동화 뒤축을 ‘쿵’ 차며 달려갔다.
등 뒤로 아저씨의 어이없는 웃음소리가 따라왔다.
“허허, 요란스럽기는..”
집에 들어서자 은정은 방문을 벌컥 열며 소리쳤다.
“할미! 할미! 나 이제 떡볶이 장사 할 거야!”
밥상을 차리던 할머니 손에서 젓가락이 덜컥 떨어졌다.
“얘가 시방 또 뭔 소리대? 떡볶이 장사라니?”
“할미, 내가 우리 할미 호강시켜 줄 거야!
알바해서 모아둔 돈 있잖아. 칠백! 무려 칠백만 원!”
“칠백?!”
할머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그거 어디서 났어. 설마 내 지갑 턴 건 아니제?”
“아이구 참, 내가 무슨 도둑년이야?
편의점, 치킨집, 카페, 신문배달까지!!
내가 피땀으로 모은 돈이란 말이에요.”
은정은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
“내 이 손! 고등학교도 못마치고 일찌감치 때려치웠어도 세상 야무지다니까!
이제 이 손으로 떡볶이 국자 흔들고 토스트도 구워낼 거다 이 말이야!”
할머니는 허리를 꺾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요란타 요란해. 이 지지배가 기차 화통을 삶아 쳐뭇나.”
은정은 웃으며 할머니 손을 덥석 잡았다.
“아무렴, 기차 화통도 삶아 먹고, 고추밭할매 고추도 삶아 먹고,
내가 이 서울 바닥 돈도 다~ 삶아 먹을 거야.
할미, 이제는 내가 책임질게! 나만 믿어! 알겠지이?”
할머니는 눈시울이 붉어지면서도 입을 꾹 다물었다.
“에휴, 이 잡것. 할미 속 타는 건 안 보이냐! 경을 칠 년아!”
그날 저녁, 은정은 결국 휴대폰을 꺼내 만수 아저씨에게 돈을 이체해 버렸다.
‘삐빅!’ 이체 완료 메시지가 뜨자 은정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끝났어요! 이제 이 트럭은 제 거예요!”
밤이 되자 15년 된 트럭이 은정이네 달동네 공터에 들어왔다.
겉보기엔 낡았어도 25만 킬로를 달린 주제에 자동차 상태는 의외로 괜찮았다.
만수 아저씨가 정성껏 손질해 온 덕이었다.
은정은 트럭 앞에서 손을 허리에 얹고 외쳤다.
“좋아, 이제부터 내가 널 데리고 달릴 거야!”
저녁상을 물린 뒤, 은정과 할머니는 방바닥에 마주 앉았다.
“가게 이름은 뭐로 할까?”
“정직허니 이름을 걸고 장사해야제. 네 할배가 너 태어났을 때 지어준 이름 있잖애.”
“은정..?”
“그려. 은정이란 이름, 은혜와 정을 베푸는 사람이 되라고 지은 거라 이 말이여.
그 이름 걸고 해야 않겄냐.”
은정은 두 손을 번쩍 들며 웃었다.
“좋다! 은정 토스트&떡볶이! 이름도 찰떡이구만?”
할머니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아이고, 요란타 요란해.. 그래도 기특한 가시나..
천둥벌거숭이 같던 게 언제 커서 지 밥벌이를 한다고 저래쌓는지.”
다음 날, 은정은 현수막 가게에서 노란 글씨가 번쩍이는 간판을 뽑아왔다.
“은정 토스트&떡볶이.”
트럭 앞에 현수막이 달리자 은정은 손뼉을 치며 외쳤다.
“됐다! 완전 멋져요!”
막걸리 한 병을 사 와 할머니와 함께 트럭 주위를 돌며 뿌렸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우리 트럭아.”
할머니는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은정은 트럭의 문짝, 핸들, 타이어에까지 뽀뽀를 퍼부었다.
“아이구, 요란타 요란해. 뭐 한다고 지랄이여! 다 큰 지지배가 차한테까지 입을 맞추고 자빠졌어.”
할머니는 투덜거렸지만, 눈가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은정은 잠시 멈춰 섰다.
어릴 적, 젖도 떼기 전에 부모가 “돈 벌러 간다”는 말만 남기고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는 걸, 은정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할머니 곁을 지키고 싶었다.
세상 누구보다 든든하게, 꼭 붙어 있어야 했다.
은정은 트럭을 한 번 더 꼭 끌어안았다.
“이제부터 너 이름은.. 햇님이다! 햇님아, 잘 부탁해!”
그날따라 햇살은 유난히 따뜻했고,
달동네 골목 끝까지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은정은 두 팔을 번쩍 치켜들며 외쳤다.
“햇님이랑 은정이, 이제 진짜 출발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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