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정토스트&떡볶이(2화) 아이고, 요란타 요란해

첫 단골 등장이오!

by 해온



새벽 다섯 시.

달동네 끝, 은정이네 슬레이트 지붕 집에서 또다시 와장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야, 또 뭔 놈의 소리여!"


할머니가 방문을 벌컥 열었다.


"할미이이이이~ 계란 세 개나 깨먹었어! 근데 괜찮아.

계란은 원래 깨지라고 있는 거잖아!"


앞치마엔 밀가루가 하얗게 묻고, 머리엔 삐뚤어진 수건이 위태롭게 얹혀 있었다.


"계란은 깨지라고 있는 게 아니고, 먹으라고 있는 거여!"

"아이구~ 잔소리 요정 등장하셨네~"


은정은 능청맞게 웃으며 엎어진 프라이팬을 치웠다.




오늘은 첫 장사 날.

밤새 설레서 한숨도 못 자고, 썰어둔 양배추만 두 통, 식빵 굽기 리허설만 열 번이었다.

하지만 막상 아침이 되자,

버터는 타고, 달걀은 흘러내리고, 양배추는 철판 밖으로 휙휙 튀어나갔다.


"아이고 요란타 요란해. 이 꼴로 장사를 하겠다고?"

"할미, 걱정 붙들어매! 제가 누구예요, 은정이에요! 임은정!

달동네 에이스, 실패도 재밌게 하는 여자!"




트럭 '햇님이'에 올라서자,

은정은 버터통과 케첩통, 식빵 꾸러미를 줄 맞춰 올려놓았다.

철판에 버터를 얹는 순간, 고소한 냄새가 골목을 가득 메웠다.


"은정 토스트요~ 따끈한 토스트! 새벽 출근길, 꼬마김밥도 있어요~!"


트럭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라디오였다.

DJ의 낮은 목소리가 새벽 공기 속에 번졌다.

‘오늘도 힘차게 하루를 시작해요, 여러분.’

그 말이 꼭 은정에게 하는 말 같았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래, 은정이 오늘 첫 장사 데뷔한다. 파이팅!"


첫 손님은 출근길 정장을 입은 남자였다.


"토스트 하나 얼마예요?"

"3천... 아니, 2천... 아, 아니 2천오백이요!"

"그럼 얼마야, 도대체?"


순간 은정은 얼음처럼 굳었다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할인해드릴게요! 2천원!

아무나 첫 손님 되는 거 아니에요~ 복권 당첨이랑 똑같아요!"


남자가 피식 웃으며 "그럼 하나 주세요" 하자

은정은 잽싸게 빵을 굽기 시작했다.


그런데, 케첩을 너무 신나게 눌러버렸다.


"촤악!"


붉은 줄기가 허공을 가르며 손님 이마에 정확히 명중했다.

은정의 표정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아이고, 어떡해요... 괜찮으세요?"

"됐어요, 됐어요. 첫날이라 그럴 수도 있죠."

"진짜 죄송해요, 진짜로요. 제가 오늘 케첩이랑 싸웠나봐요..."

"하하하, 그럼 싸움은 네가 졌네."


남자가 웃자, 은정도 따라 웃었다.


"근데 진짜 맛있네요. 또 올게요."

"진짜요? 약속! 다음엔 케첩도 조심해서 예쁘게 짜드릴게요."

"하하, 이마에는 말고요."


그날 은정의 첫 단골이 생겼다.




점심 장사를 하러 시장으로 향하자,

트럭 위 철판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은정의 팔도 덩달아 빨갛게 익었다.

주머니에 넣어둔 손수건은 이미 땀에 젖어 있었다.


"은정 떡볶이가 왔어요~ 며느리는 없지만 며느리도 모르는 맛있는 떡볶이가 왔어요~

매운맛, 순한맛 있어요~"


은정의 목소리가 시장 한복판에 쩌렁쩌렁 울렸다.


"아가씨, 이거 떡볶이가 쫄아버리겠는데!"

"예~ 잠깐만요! 지금 바로요!"


허둥지둥 떡을 건지려다 국물이 손등에 튀었다.


"아아악! 매워!! 아, 아니 괜찮아요, 괜찮아요! 매운 게 아니라 뜨거운 거였어요~"

"하하, 아가씨 참 재밌게 산다."

"재밌어야 오래 살죠!"


손님들이 피식피식 웃었고,

그중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떡볶이를 천천히 둘러보더니 말했다.


"아가씨, 간 좀 봐줄까?"

"좋아요! 대신 짜면 책임지셔야 해요~"

"하하, 이 사장님 입도 야무지네."

"저의 20년 분식집 단골 손님 인생을 걸고 탄생한 저만의 레시피로 만든

은정떡볶이라고요! 신당동 떡볶이는 명함도 못내밀걸요?"


그 한마디에 시장 사람들 사이에 웃음이 번졌다.

그날 은정은 처음으로 장사꾼 냄새를 맡았다.

고소한 기름 냄새, 달큰한 고추장 향, 그리고 자신에게 퍼지는 희미한 자부심.



그날 밤, 장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은정은

트럭에서 떼어낸 철판과 국자를 들고 물을 틀었다.

떡볶이 양념과 기름때가 손에 덕지덕지 묻었지만, 표정은 해맑았다.


"할미~ 나 오늘 완판했지롱! 아니, 거의 완판!

조금 남았는데 그건 서비스로 줬지!"

"임은정이 서비스를?!"

"그러엄, 사랑을 듬뿍 담아 줬지."

"아이고, 요란타 요란해. 그래도 내 손녀 장하다."


은정은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중얼거렸다.


"괜찮아, 처음치곤 완벽했어. 내일은 더 잘할 거야."





1년 뒤



"누나~ 토스트 두 개요! 베이컨이랑 더블치즈!"

"잠탱이 정현이 왔네? 오늘은 우유 몇 병째야?"

"두 병째요. 어제 운동하느라 새벽 두 시에 잤어요."

"그래서 눈 밑이 다 퀭하구나. 그래도 우리 정현이는 멋져~"


은정은 능숙하게 식빵을 굽고, 달걀을 깨고, 한쪽 손으론 김밥을 말았다.

작년엔 케첩 하나 제대로 못 짰지만,

이제는 눈 감고도 토스트를 한 판 가득 구워낼 정도였다.


트럭 앞에는 늘 손님이 줄을 섰다.

중학생, 고등학생, 직장인, 택배기사 아저씨, 버스기사 아저씨,

그리고 매일 지나가며 "오늘도 맛있어" 한마디를 남기는 단골들.


"은정아, 오늘은 치즈 한장 덤으로 줘야지~"

"아니에요, 오늘은 덤 대신 웃음 드릴게요~ 서비스 미소 0원이에요~"


그 말에 다들 웃었다.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여는 소리,

누군가에게는 잠시 멈춰 서게 하는 냄새.

은정이의 트럭은 그렇게 사람들의 하루 속에 녹아 있었다.


밤이 되어 트럭 불을 끄며 은정은 간판을 한번 쓸었다.

‘은정 토스트&떡볶이’

노란 글씨 위로 가로등 불빛이 번졌다.


"햇님아, 우리 이제 진짜 잘하고 있지?"


트럭이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어 마치 "응" 하고 대답을 하는 것 같았다.


뒤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요란타 요란해. 그래도 내 손녀, 장하다."

"요란한 게 어때서, 할미. 조용한 사람보다 요란한 사람이 기억나는 법이라고."


은정은 웃으며 트럭에 기대앉았다.

밤공기 속에서 떡볶이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햇님이랑 은정이, 이제 진짜 시작이야.

내일도 요란하게, 맛있게, 멋!지!게! 살아보자! 할미도 얼른 화이팅 해줘야지!"

"그려! 우리 은정이 화이팅이다!"

"할미, 햇님이 들으면 섭섭해해."

"요란해 죽어 아이구. 햇님이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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