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정토스트&떡볶이(3화) 잠탱이 태권소년

울컥할 때까지 하는 게 진짜야.

by 해온

울컥할 때까지 하는 게 진짜야




깊은 밤공기가 점점 더 짙어갈 무렵, 도장 안에서는 '퍽퍽' 하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정현이었다.
혼자서 앞차기, 돌려차기, 내려찍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온몸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머리칼 끝에 땀방울이 떨어졌다.

"하나, 둘! 하나, 둘!"

코치가 없어도 정현은 혼자 구령을 붙였다.
핸드폰 카메라를 세워두고 매 동작을 녹화했다.
자세가 조금만 어긋나도 곧바로 재생해서 확인하고, 다시 연습.

"오른발 축이 흔들렸네.. 다시!"

한 동작을 2만 번고, 3만 번이고. 그의 성에 찰 때까지 연습했다.
그렇게 새벽 두 시가 지나도, 정현의 연습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도복이 흠뻑 젖은 채로 바닥에 주저앉은 건 새벽 세 시.

"휴... 내일 아침 토스트 먹을 힘은 남겨둬야지."

정현은 헛웃음을 흘리며 지친 몸을 이끌며 집으로 향했다.




"잠탱이! 등교 안 하냐! 아침 여덟 시 다 됐어!"

엄마의 고함이 들려오자, 정현은 눈을 반쯤 뜬 채 벌떡 일어났다.

"헉, 오늘 또 늦었네..."


세수, 양치, 교복, 가방까지 전부 5분 컷.
머리는 헝클어지고 넥타이는 삐뚤었지만 상관없었다.
버스가 떠나기 전에 도착하는 게 중요했다.


정류장 앞, "은정 토스트&떡볶이" 트럭에서는 식빵 굽는 냄새가 퍼지고 있었다.
정현은 거의 눈을 감은 채로 걸어와 말했다.

"은정 누나... 토스트 하나... 잠 깨는 버전으로요..."
"오늘은 또 몇 시까지 연습했길래 눈도 못 뜨고 있어?"
"세 시? 두 시 반? 아, 기억 안 나요."
"야, 넌 사람의 체력이 아니야. 그래도 내 단골 1호니까 특별 서비스~"

은정은 팬에 달걀을 하나 더 깨 넣었다.
그리고 포장지 위에 하트를 쓱 그렸다.

"특제 '정현이용 힘내 토스트'. 기운 펄펄 나게 설탕 듬뿍, 케찹 세 바퀴 반 추가요."


정현은 피식 웃으며 주머니에서 캔커피 하나를 꺼냈다.

"이건 내 서비스요. 커피 마시면 누나도 힘나잖아요."
"그래서 내 심장이 이렇게 쿵쾅거리나 보다?"
"그건 저 때문 아니고, 카페인 때문일걸요?"
"어머, 얘 좀 봐라. 못 당하겠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여학생 몇 명이 눈을 흘겼다.

"아, 또 저 언니야?"
"맨날 토스트 트럭 가서 저러고 있대."


은정은 그 시선이 느껴졌는지 꼬마김밥 세 줄을 싸서 건넸다.

"얘들아, 다음엔 이거 사 먹어줘~ 우리 정현이 괴롭히지 말고."
"우와, 진짜 주는 거예요?"
"그럼~ 학생복 할인 이벤트 중이야."

여학생들은 어색하게 웃으며 받아갔고, 정현은 한쪽 눈을 찡긋했다.

"은정 누나, 완전 장사 잘한다니까요?"
"내가 장사꾼이지, 연애상담소야? 쟤네 맨날 너 쫓아다니는 애들이잖아."
"잘생겨서 그런 걸 어찌합니까요~"


그날 저녁, 은정은 트럭을 정리하다 정현 생각이 났다.

'그 녀석 또 연습 중이겠지.'


얼마 뒤, 휴대폰이 진동했다. 메시지 한 줄이 도착해 있었다.


누나, 나 내일 시합 있어요. 우승하면 토스트 두 개요.


은정은 피식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금메달 따오면 계란 세 장, 치즈 두 장, 서비스 두유까지 얹어줄게.


이틀뒤 아침, 정현은 왼쪽 눈가에 시커먼 멍을 달고 나타났다.


"야, 너 졌구나?"
"뭐래. 여기 금메달."

정현은 목에 걸린 메달을 덜렁거렸다.

"이거... 진짜 금은 아니겠지?"
"금 아니어도 상관없어요. 내 땀으로 얻은 거니까."

은정은 그 말에 잠시 말을 잃었다.

"그래도... 다쳤잖아."
"괜찮아요. 누나가 만든 토스트 먹으면 금방 나아요."
"에이, 입만 살아가지고."


은정은 손수건을 꺼내 정현의 입가 케찹을 닦았다. 정현은 살짝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누나, 나 애기 아니에요. 그렇게 다루지 말아요."
"애기 맞거던?"
"아니에요."
"그럼 애기처럼 케찹을 어떻게 턱에 묻혀?"

정현은 머쓱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참 맑았다.


며칠 뒤, 트럭 앞은 왁자지껄했다.
교복 입은 남학생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 있었다.

"와, 오늘은 뭐야? 무슨 축제야?"


은정이 놀라 묻자, 한 아이가 말했다.

"정현이 형이 여기 토스트 맛있다고 소개했어요! 학원 단체로 왔어요!"

은정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잠탱이가 장사도 도와주네?"


그날 하루, 토스트 재료가 바닥났다.
정현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트럭 앞으로 달려왔다.

"어때요? 장사 잘됐죠?"
"덕분에 손목 나가겠어."
"그럼 오늘은 제가 도와드릴게요."
"너 땡땡이쳤냐?"
"오늘은 조퇴요. 금메달리스트 특권."


정현은 앞치마를 두르고 트럭 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요?"
"오, 이제 내 보조 알바로 써도 되겠네."
"그럼 월급은요?"
"내 토스트 향기 마음껏 맡을 권리."
"그럼 봉사죠!"
"그래도 올 거잖아?"
"그건 맞지."


둘은 그렇게 웃었다.


청소를 마친 트럭 불빛 앞에서 정현은 머리 뒤를 긁적였다.


"누나, 있잖아요."
"응?"
"이거 제 영상이에요. 도장에서 찍은 거."

정현이 보여준 영상엔, 눈에 불을 켜고 연습하는 자신이 있었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또 차고.

"이거 보면... 왜인지 울컥해요.:
"울컥할 때까지 하는 게 진짜야."
"누나도 그런 적 있어요?"
"매일. 장사하다 보면 울컥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도 계속하잖아요."
"그게 우리잖아."


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 저도 누나처럼 되고 싶어요."
"장사꾼으로?"
"아니요. 매일 웃을 수 있는 사람으로요."

은정은 웃었다.

"그럼 넌 이미 반은 성공했어. 웃는 게 예쁘니까."


정현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곧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며칠 뒤, 태권도 학원에서 단체 주문이 들어왔다.

"은정 누나, 내일 떡볶이 단체 20인분이요! 오후 4시쯤에 시장으로 가지러 갈게요"
"또 네 소행이지?"
"홍보대사니까요."
"이러다 나도 금메달 따겠네. 매출 금메달."
"그럼 전 은정 누나 전담 코치 할게요."
"코치가 아니라 꼬치나 더 꽂아라."


둘은 그렇게 티격태격하며 웃었다.
트럭 위의 햇살이 따뜻했다.

은정은 문득 생각했다.
'세상에 이런 동생 하나 있으면 하루가 덜 외롭겠다.'


정현은 그날도 하품을 하며 말했다.

"누나, 내일 아침에도 토스트 하나. 달걀 두 장, 케찹 세 바퀴 반."
"그래, 우리 잠탱이 고객님. 내일도 선착순 1번 예약 완료."

정현은 눈을 반쯤 감은 채 손을 흔들었다.
햇살에 비친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그 뒤로 은정의 웃음이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