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차는 한 잔에 천 원.
지하철 역 앞 버스정류장은 새벽 공기마저도 사람 냄새가 배어있었다.
출퇴근 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 좌판이 하나둘 열리고, 수레바퀴 소리가 바닥의 물기를 가르며 지나간다. 은정의 트럭도 그 틈에 끼어 있었다. '은정 토스트&떡볶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낡은 철제 프레임에 달랑달랑 매달려, 바람에 흔들렸다.
평소 같으면 "오늘은 달걀 두 장 서비스요~" 하며 익숙한 웃음을 던졌을 은정이지만, 오늘은 기운이 없다. 버터를 녹이는 손끝이 덜덜 떨리고, 불판의 열기가 얼굴을 더 달아오르게 한다. 이미 몸이 뜨겁고, 속은 울렁거린다.
전날부터 열이 오르기 시작했는데, 잠깐 누워 쉬면 되겠지 하며 버텼다. 하지만 오늘 아침, 이마에 손을 대보니 불덩이였다. 하지만 몸이 말을 안 들어도 장사는 멈출 수 없었다.
은정은 어릴 적부터 늘 그래왔다. 아파도 꾸역꾸역 학교를 등교했었고, 지금은 아파도 트럭을 몰고 나섰다. 아파도 일해야 살고, 울어도 손을 놀려야 밥이 생긴다. 할머니가 가르쳐준 생존법이었다. "몸은 고쳐 써도 돼도, 신용은 한 번 잃으면 못 되돌린다." 그 말이 귀에 맴돌았다. 그래서였다. 은정은 아침 토스트 장사를 억지로 끝내고 점심 전 트럭을 몰고 시장으로 들어왔다.
시장은 여러 냄새가 섞여있었다. 고등어 굽는 냄새, 반찬가게의 간장 향, 방금 내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국물 냄새가 한데 섞여, 코끝이 얼얼했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은정이가 오늘따라 인사도 없이 지나가자 상인들이 수군댔다.
"은정 양 오늘은 왜 이렇게 말이 없어?"
"열이라도 난 거 아녀?"
"요새 젊은 애들이 다 그렇지 뭐."
"그런 말 말어. 요새 은정이처럼 열심히 사는 젊은 사람이 또 어딨어?"
그런 소리가 뒤에서 들렸지만, 은정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차문을 닫고, 시트를 뒤로 젖힌 채로 잠깐 눈을 붙였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세상이 멀게 들렸다.
트럭 밖에서는 누군가 "커피~ 커피요~ 쌍화차 한 잔에 천 원~" 하고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시장의 명물, 커피카트 차마담이었다. 손수레 크기의 카트에 작은 전기포트, 종이컵, 커피믹스, 유자차, 쌍화차, 심지어 생강차까지 들어 있었다. 목소리도, 걸음도 힘찼다. 사람들은 "마담, 오늘은 커피 좀 진하게 타줘!", "유자차는 덜 달게요!" 하며 이름 대신 ‘차마담’을 부르곤 했다.
그날도 차마담은 늘 다니는 골목길을 돌며 단골들에게 커피를 팔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은정의 트럭 앞을 지날 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 같으면 김이 모락모락 올라와야 하는데, 불판이 식어 있었다.
"이상하네. 이 시간에 은정이가 안 보일 리가 없는데..."
차마담은 카트를 멈췄다. 그리고 트럭 창문을 툭툭 두드렸다.
"은정아? 나야, 차마담이야. 뭐 해?"
대답이 없었다.
불길한 기분이 들어 운전석 문을 조심스레 열자, 은정이 의자에 축 늘어져 있었다. 뺨은 불타는 듯 붉었고, 입술은 하얗게 들떠있었다. 손끝은 식어 있었다.
"어휴 세상에, 이게 사람이야 불덩어리야?"
차마담은 당황해 허리를 굽혔다. 트럭 안은 떡볶이 소스 냄새와 땀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카트로 달려가 서랍을 열었다. 구석에 구겨진 약봉지, 그 안에 들어 있던 해열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급히 뜨거운 물을 포트에서 따라 호호 불며 식히고, 그 컵을 들고 트럭으로 돌아왔다.
"입 벌려."
"괜찮아요, 차마담언니..."
"입 벌리라니까! 안 벌리면 나 진짜 오늘 떡볶이 안 사 먹는다?"
"그건 너무하잖아..."
"너무한 건 너지!. 열 펄펄 끓는데도 장사한다고 앉아있는 게 말이 돼?"
"손님들이 기다릴까 봐요."
"손님보다 네 몸이 먼저야, 기지배야."
은정은 억지로 입을 벌렸고, 차마담은 알약을 조심스레 물과 함께 넣어줬다.
"자, 마셔. 이건 커피보다 훨씬 비싼 거야. 내 사랑이 섞인 물이거든."
은정은 웃음을 터뜨렸다가 바로 기침을 했다. 그 웃음소리가 너무 약해 차마담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시간이 좀 지나자, 은정의 얼굴빛이 조금 돌아왔다. 차마담은 트럭 안 운전석에 걸터앉았다. 햇빛이 천막 사이로 들어와 두 사람 얼굴을 비췄다.
"마담언니, 나 왜 이렇게 눈물 나죠?"
"몸이 아프면 마음도 같이 열리지. 괜찮아."
은정은 콧물을 훌쩍이며 낮게 말했다.
"나... 엄마 아빠 얼굴 모르거든요. 할머니가 날 키웠어요. 근데 그게, 어쩐지 마음 한편이 늘 구멍이 난 것 같아요."
차마담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할미가 크게 아팠어요. 병원비 낼 돈이 없어서... 내가 자퇴했어요. 남들 졸업식 갈 때, 난 편의점 알바를 갔어요. 그러다 야시장 떡볶이집에서 일하게 됐는데, 그게 내 인생 첫 장사였어요. 사장님이 그러더라고요. '사람은 배불리 먹여야 마음도 열린다'고. 그래서 나도 내 손으로 뭔가 만들고 싶었어요. 그렇게 여기저기 돈만 벌러 다녔어요. 카페, 편의점, 마트, 요구르트배달, 함바식당.. 그 돈으로 중고 트럭 하나 샀죠. 햇님이요. 내 트럭 이름."
은정은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할미는 날 보고 늘 대견하다고 했지만, 난 잘 모르겠어요. 아직도 무서워요. 할미 없으면, 나 혼자 남는 게 너무 싫어요."
차마담은 은정의 손등을 쓱 잡았다.
"야, 너는 이미 혼자가 아니야. 이 시장에 널 모르는 사람이 어딨냐!. 사람들 다 네 편이야."
"정말 그럴까?"
"진짜야. 그만큼 잘하고 있어. 아프다고 망가질 정도로 일하는 거, 그게 쉬운 줄 알아?"
은정은 그 말을 듣자 또 눈물이 뚝 떨어졌다.
"차마담언니... 나 진짜 행복한 사람이죠?"
"그럼. 불행한 사람은 이렇게 맛있는 떡볶이 못 만들지."
"하하... 그건 맞아요."
차마담은 카트로 돌아가 유자차 한 잔을 탔다. 유자 껍질이 동동 뜬 노란 차를 은정의 손에 쥐여줬다.
"오늘은 공짜야."
"유자차 천 원짜리잖아요."
"그래, 근데 오늘은 내가 기분이 좋아. 한 잔에 천 원인데, 넌 지금 생명 연장권 하나 얻었으니까 서비스."
"언니답다."
"그럼. 나 커피계의 별 세 개 마담이야."
"그럼 나도 떡볶이계의 별 세 개?"
"아니, 두 개 반."
"반은 왜요?"
"가끔 좀 짜. 서비스 좀 줘."
두 사람은 피식 웃었다. 웃음 끝에, 은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마담언니는 결혼했었어요?"
"했었지. 오래전에. 근데 헤어졌어."
"왜요?"
"그 양반이 말이야, 내 커피보다 더 쓴소리만 했거든."
"하하하."
"그래도 덕분에 자유를 얻었어. 이 카트 하나면 어디든 내 세상이거든. 해 뜨면 시장, 해 지면 집. 이게 내 인생 레시피야."
"그 말 멋있어요."
"너도 곧 그렇게 살 거야. 자기가 만든 거로 버티는 인생이 제일 단단해."
그 말을 듣고 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트럭 안에는 이제 땀냄새 대신 유자 향이 감돌았다.
차마담은 천천히 트럭 밖으로 나와 카트를 밀었다. 해가 기울 무렵, 은정도 힘겹게 몸을 일으켜 트럭 문을 닫았다.
"언니, 이제 어디 가요?"
"시장 골목 돌아야지. 저쪽 노인정 앞이 오늘 마지막 코스야."
"그럼 나도 밀어드릴게요."
"야, 아직 덜 나았잖아."
"그래도 몸 움직이면 땀나고 열 내려요."
"고집은 누굴 닮았대?"
"마담이요."
"어휴, 그건 반박 불가네."
두 여자는 함께 카트를 밀었다. 시장 끝 골목의 석양이 길게 늘어져 두 사람의 그림자를 이어 붙였다. 멀리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웃고, 어디선가 두부장수의 종소리가 딸랑딸랑 울렸다. 그 소리가 오늘따라 더 따뜻하게 들렸다.
"언니, 벌써 해가 졌어요."
"벌써?"
"하루가 갔네요."
"그래, 그러네. 오늘은 일찍 들어가 푹 쉬어라."
"마담도요."
"난 밤이 직업이라 안 돼. 근데 괜찮아."
커피카트가 천천히 골목을 굴러갔다.
"커피요~ 유자차 천 원~ 오늘은 진하게 타드려요~"
차마담의 목소리가 시장 저녁 공기 속에 길게 흩어졌다. 은정은 트럭으로 돌아가며 뒤를 돌아보았다. 카트를 미는 차마담의 모습이 작아지다 햇살 속에 스며들었다.
트럭 대시보드 위에 올려둔 종이컵 바닥에 남은 유자 껍질이 반짝였다. 그 노란빛이 이상하게도 마음 한가운데를 환하게 덮었다.
그날 밤, 은정은 오래간만에 이불을 덮고 푹 잤다. 꿈속에서 누군가 따뜻한 차를 내밀며 말했다.
"한 잔에 천 원인데, 오늘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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