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월간감독 : 박세영 감독

CINEASTEROID X HAEPARI





해파리 웹사이트(haeapri.net)에서 CINEHAESTROID 아이콘을 클릭해 보세요!


시네클럽 소행성과 함께하는 월간감독 상영작의 비평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 https://haepari.net/CINEASTEROIDXHAEPARI






세상 끝의 버섯 1) _ A


비정상적인, 기형적이며, 불결하고도, 더러운, 생명력으로 태동하면서도 생명으로는 쉬이 여겨지지 않는 균 또는 미생물. 잘 되면 버섯, 그것도 아니면 곰팡이? 매트리스를 숙주 삼아 사랑, 증오, 질투, 분노, 무책임, 피곤함, 그리움을 양분으로 번식하는 곰팡이에 관한 영화, <다섯 번째 흉추>는 2000년부터 3329년까지의 아주 긴 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생명의 변화에 관한 짧은 우화다. 크로넨버그의 영화를 비롯한 바디호러 장르에 등장할법한 테라토마Teratoma의 형상에서 인간의 형상이 될 때까지의, 다시 또 균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시간은 분절된 쇼트로 지속되는 타임랩스와 소리와 빛의 변주로 눈부시게 보여진다.

한강에 돌고래가 살고 있다는 것을 영화를 보기 전까지 알고 있었는가? 혹은 염두에 두고 있었는가? 한강에 서식하지만 대부분 죽은 채로 떠오르는 상괭이돌고래의 뼈를 찾아 한강에 잠수한 ‘결’이 발견한 것은 한강에 버려진 수많은 사람들의 비밀이다. 멸종위기에 처한 생명체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란 곰팡이가 강 끝으로 향하는 여정을 다룬 이 영화는 생명의 시작과 끝을, 끝이 언제나 소멸은 아님을,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며 곰팡이의 존재를 통해 지구 생명체의 위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판타스틱한 에이스의 매트리스에서 재차 사용되고 버려지며 교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되는 매트리스는 세계의 논리로부터 이탈적인 것이 된다. 애니 칭이 세상의 끝에서 태어난 송이버섯이 현재의 황폐한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곰팡이-생명체가 인간의 흉추를 앗아가도 인간은 차마 매트리스가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자신을 공격한 매트리스를 뒤돌아보지도 않는 인간과 악의 없이 인간의 것을 가져가 버리는 곰팡이의 무해함의 본질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우주의 빛을 따라 움직이는 철새의 원형적 움직임, 인간의 33개의 척추뼈와 그중에서도 12개의 흉추, 그리고 5번째 흉추, 생명의 규칙 속 비질서에 관한 이 영화가 건네는 안녕과 작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1) Anna Lowenhaupt Tsing의 『The Mushroom at the End of the World: On the Possibility of Life in Capitalist Ruins』(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5) 로부터 왔습니다.


11개의 흉추 _ 난둘

흉추는 12개다. 그렇다면 그(녀)는 자기 몸을 완성하기 위해 12번의 만남을 가졌을 것이다. 혹은 더 많이. 왜 그(녀)는 흉추를 빼앗으면서까지 그(녀)를 탄생시킨 인간과 같은 형상을 갖고자 했을까? 그냥 지워지지 않는 곰팡이로 남아있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영원히 누군가의 한쪽에 머무르면서. 평생을 외롭지 않게. 그(녀)를 거쳐 갈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가 처음으로 배운 말은 “죽어”다. 그(녀)를 처음 쓴 결이 윤에게 했던 말. 윤은 줄곧 잠들었기 때문에 결보다 윤이 그(녀)의 곁에 오래 머물렀지만, 그(녀)는 결의 말을 배웠다. 약속을 잊고 잠에 빠져버리는, 제대로 된 대화도 하지 않으며 잠이 들고 마는 남성을 사랑한 여성이 뱉은 말. 그리고 그(녀)는 윤의 흉추를 빼앗았다. 그(녀)가 다음으로 배운 말은 “편지”, “전해줘”다.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려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할 만큼 온종일 누워 있던, 죽음을 앞둔 여성이 자기 딸에게 전하는 편지.

헤아릴 수 없는 감정을 담은 말들을 그(녀)에게 들려주면 그(녀)는 그것을 배운다. 그렇게 그(녀)에게 말을 가르친 사람들은 흉추를 빼앗기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감정을 느끼고자 그(녀)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녀)는 자기 몸을 완성해 낼 재료가 될 예정이었던 남성의 흉추’들’을 모두 빼내지 못했다. 밥 먹을 짬을 내지 못해 쉬지 않고 운전하면서도 라디오로 영어를 공부하던 남성. 자기 몸을 완성해내기 위한 흉추를 빼앗기 위해 애를 쓰던 그(녀). 순간의 동질감. 그(녀)-ing는 그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녀)는 그(녀)-completed가 되길 포기하고, 깊은 호수의 버섯으로 자라난다.

끝끝내 전해주지 못한 편지를 읊으며. 호수를 찾아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겠지.


.

.

<다섯 번째 흉추> (2022) 

.

.

작가의 이전글 월간감독 : 정여름 감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