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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마음 (그리고 본명선언) 揺れる心(そして本名宣言)

양영희 감독의 <흔들리는 마음>(1996)과 홍형숙 감독의 ‘본명선언’(1998)을 보고 

ヤン·ヨンヒ監督の<揺れる心>(1996)とホン·ヒョンスク監督の ‘本名宣言’(1988)年をみて



 A


당사자성에 관한 논의는 줄곧 어렵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을 말할 수 없다거나, 직접 경험한 사람만이 더 잘 이야기할 수 있다거나, 당사자에 관해 묻는 것이 곧 카메라를 들 ‘자격’ 또는 카메라 앞에 설 ‘자격’과 같은 논의와 이어지는 것이라면, 나는 언제나 말할 수 없음에 관한 자신의 자격을 인정하는 것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라고 생각해 왔다. 1996년 양영희 감독이 만든 <흔들리는 마음: 재일한국 조선인 두 개의 이름 사이에서>(이하 <흔들리는 마음>)가 일본 NHK 방송국에서 공개되고, 당시 촬영된 40개의 VHS 필름으로 1998년 홍형숙 감독이 ‘본명선언’을 만들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한국다큐멘터리로 ‘운파상’을 수상하고, 그로부터 2주가 지난 시점에 불거진 표절에 관한 논의와 집단적 은폐 그리고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 22년이 지나서야 마련된 비교상영회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 동안 아직 최종 해결되지 않은 이 일들에 관해 말하고 싶다는 자격은 양영희 감독님의 기고문 마지막 문장으로부터 힘을 받았다.


“침묵도 기록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 모든 것이 역사가 됩니다.”
- 양영희 감독 1)


영화의 신비로운 점은 같은 소재, 같은 인물을 다루더라도 모든 영화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두 편의 영화가 똑같다면? 여러 입장문에서 언급하듯 ‘부분적 동일함’의 문제를 넘어 완전히 두 영화가 똑같다면? 이는 단순히 도용이나 표절의 문제를 넘어 그 너머의 문제를 가리키고 있는 듯 하다. 똑같음을 면피하기 위해 - 본인이 가장 잘 알기에 - 사용되는 비겁한 방식들, 그들의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로 돌리기, 시간의 빛을 지우기, 호의를 모욕하기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리고 2023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에서, 여전히 찾아볼 수 있는 그때의 이름들에서, 답습된 권력의 문제들은 한국 영화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겨냥하고 있는 듯 보였다. 집단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많고 많은 ⋯⋯


세계를 돌아다니는 셀 수 없는 수의 많은 영상 조각들은 재조립되고, 재편집되고, 재형상화되며 기존의 목적과 어긋나며 원본과는 다른 새로운 의미를 갖기 마련이다. 다큐멘터리에서 파운드 푸티지를 사용하는 방식은 그 장르의 역사와 함께 지속되어 온 방법론이었으며, 푸티지를 파운드하는 다큐멘터리스트들은 수집가의 몫에 따라 그 나름의 빛을 형성해 왔다. 그러나 <흔들리는 마음>의 상영본 7분 50초와 원본 1분 40초를 추가하여, 총 9분 30초를 67분의 영화 중앙에 배치한 ‘본명선언’은 어떠한 의미도 생성하지 못한 채로 피상적인 시뮬라크르의 형상으로 한국영화사에 위치한다. 다음 국면을 위해서 우리는 이 문제의 최종 해결을 보고 싶다.


<흔들리는 마음>은 일본 오사카에 위치한 아마가사키 고등학교 ‘교포회’의 통명(일본식 이름)으로 살아오던 재일교포 학생들이 본명을 선언하는 과정을 다룬다. 재일교포로서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양영희 감독은 학생들의 회의 시간에 본인도 모르게 말을 얹거나, 자신을 인터뷰의 대상으로 삼고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카메라 앞에 선 학생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영화를 보며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가깝다’는 것이었다. 카메라와 학생들의 얼굴은 너무나도 가까웠고, 양영희 감독이 시로모토 군이 말할 때, 그의 표정을 찍으면서 공중을 헤매는 눈을 보며 힘들었다고 말하듯 아마 오랜 시간 쌓아온 촬영대상과의 관계에서 기인했을 테다. 감독의 최신작 <수프와 이데올로기>에서 그동안 이해하기 쉽지 않았던 가족의 선택에 관해서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제껏 알지 못했던 것에 눈물을 흘리는 양영희 감독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가족과 자신에 관해 이야기하면서도 언제나 알지 못했던 것에 반성하며 변화를 거듭하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에 비해, 양영희 감독의 소재와 촬영 소스에 매혹 - 욕망이라고 해야 할까? - 을 숨기지 못하는 ‘본명선언’은 3일 동안 일본으로 건너가 급히 진행된 현장의 소득 없음을 방증하듯 거리감이 느껴지는 인터뷰, 도시를 배회하는 움직임, 텅 빈 강단의 모습, 성미의 집 앞을 해가 떨어질 때까지 잠복하는 장면들처럼 텅 비어있었다. <흔들리는 마음>의 전후에 삽입된 ‘본명선언’의 장면은 역사적 사실과 설명적 간자막, 본명선언이 이루어지는 전후 3일간의 시간, 과거 학생들을 찾아가 현재는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다룬다. 원작을 도용한 부분은 컬러에서 흑백으로 제시되고, 오프닝에 양영희 감독의 모습과 그와의 만남을 회고하는 감독의 나레이션 그리고 엔딩 크레딧에 ‘8mm 취재 양영희’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책임을 피하는 듯 보인다. 또한 번역은 미묘하게 오역되며, 가령 후지와라 시로 선생님의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역사적으로 고쳐나가야지”라는 말은 “(본명을 쓸 수 없는 현실) 그건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거야. 역사를 바로잡아야만 해”와 같은 당시 학생운동과 액티비즘을 주축으로 발전해 온 영상집단의 민족주의적 어조로 변화되어 있었으며, 본명선언을 하며 울음을 참는 성미에게 “힘내”라고 말하는 양영희 감독의 목소리는 번역되지 않는다. 컬러에서 흑백으로의 전환은 홍형숙 감독의 말에 따르면 과거와 현재를 나타내는 영화적 장치라고 하지만, 성미가 졸업식에서 입고 있는 한복이 양영희 감독이 본인의 성인식에서 입었던 주황색 한복이라는 맥락을 의도적으로 삭제시킨다.


양영희 감독은 2020년 비교상영회에서 ‘본명선언’이 저작권뿐만 아니라 초상권 역시 침해하였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본명선언’에 나온 학생들과 인물들이 단지 소재로 전락하게 되는 것은 앞서 말한 카메라를 들 자격에는 위배된다고 생각한다. 침묵하거나 방관하지 않고, 무지를 반성하며 <흔들리는 마음>과 ‘본명선언’에 관한 사안을 기억하는 것이 군집 생활하는 우리의 책무라고 생각하고 싶다.


1) ‘홍형숙 감독은 ‘운파상’을 반납해야 합니다: <본명선언> 사건을 둘러싼 현상을 보면서’



当事者性についての議論は常々難しい。

直接経験していなければ語れないわけでもないし、直接経験したからといってもっと上手に語れるとも限らない。

当事者について問うことが、すなわちカメラを持つ"資格"、あるいはカメラの前に立つ"資格"のような議論とつながっているのなら、逆説的に語れないことを認めることが資格の証しであると私は考えてきた。

1996年ヤン・ヨンヒ監督が制作した<揺れる心~在日韓国朝鮮人·二つの名前の間で~>(以下<揺れる心>)がNHKで放送された。当時撮影された40本のVHSフィルムで、1998年ホン・ヒョンスク監督の<本名宣言>が制作され、釜山国際映画祭にて最優秀韓国ドキュメンタリー賞の’ウンパ賞’を受賞した。

それから2週間後に剽窃疑惑が持ち上がったものの、映画祭側は組織的な隠蔽を図り、ヤン·ヨンヒ監督に非難が集中した。

22年もの歳月を経てようやく比較上映会が実現したが、いまだに最終的解決をみないこの件についてヤン·ヨンヒ監督の言葉を受け、勇気をしぼって語りたいと思う。


“私たちの言葉と行動の全てが記録され、歴史になっていくのだと思います” ーヤン・ヨンヒ監督


映画は、同じ題材、同じ人物を扱ったとしても完成した作品が千種万様だから面白い。

しかし2本の映画が同じなら?

“部分的に一致”するのではなく、2本の映画にまったく同じ映像が流れていたなら?

この問題には、単なる盗用や剽窃のイシューよりも深刻なものが潜んでいる気がしてならない。

同一性を避けるためにー当の本人が一番よく分かるからこそー使われる卑怯な手法、

他人の話を自分の話にすり替えること、時間軸を変えること、そして好意を踏みにじること。

あいにく20年以上経った2023年の釜山国際映画祭でも、踏襲された権力という悪しき習慣が

韓国映画の問題をさらに浮き彫りにしている。組織の名のもとに行われる数多ある…。


世界中に出回っている数え切れないほどの映像は、組み換えられ、再編集され、新しい形として誕生しているが、残念ながら原作に反し異なる意味合いになりがちだ。

ドキュメンタリーにおいて、埋もれていた映像を発掘しスポットを当てる方法は、このジャンルの歴史とともに発展した方法論であり、映像を発掘するドキュメンタリストが一部のコレクターの需要を満たしてきたのも事実である。

しかし<揺れる心>の本篇映像7分50秒と素材映像1分40秒、あわせて9分30秒の映像を、67分の映画の中心に据えた<本名宣言>は、いかなる意味合いも持たぬまま、上っ面だけの模倣の形としてのみ韓国映画史に位置している。

この局面を打開するには、私たちはこの問題の最終的解決しかないと考えている。


<揺れる心>は兵庫県尼崎高等学校の“同胞会?”において通名(日本名)で生きてきた在日コリアン学生たちが本名を宣言する過程を記録している。同じく在日コリアンであるヤン·ヨンヒ監督は学生たちの討論に不意に参加したり、自らをインタビューの対象にし、自分の経験を通してカメラの前に立った学生たちについて語っている。

映画を観ながら一番に感じた印象は“近い”だった。

カメラと学生たちの顔も近かったし、ヤン監督が城本君?に話す時、彼の空中をさまよう目を見てつらかったと言ったように、きっと長い時間接してきた撮影対象との距離感も非常に近い印象だった。

ヤン·ヨンヒ監督の最新作<スープとイデオロギー>でそれまで理解できなかった家族の選択について、知っていたつもりだったのにもかかわらず、初めて気付いたこともあり、その思いの狭間で涙を流すヤン監督の姿が思い出された。彼女は家族や自分について気付けなかったことを反省し、変わろうと努める人だと感じた。


一方の、ヤン·ヨンヒ監督の題材や映像への魅惑ー欲望というべきだろうかーに負けてしまった<本名宣言>の印象についても触れよう。急きょ日本で行われた3日間の撮影。映像の乏しさを裏付けるように、取材対象との距離を感じざるを得ないインタビュー。都市を徘徊するカメラ。がらんとした教壇の姿。ソンミの家の前で日が沈むまで張り込みする?シーン同様、どれも虚ろな印象だ。

<本名宣言>は、 歴史的事実と説明的なテロップ、本名宣言が行われる前後3日の時間、そして卒業生たちの現在についての映像で構成されているが、<揺れる心>の映像が作品の中核を担っているのは紛れもない事実だ。

盗用された映像はモノクロに加工され、オープニングでヤン·ヨンヒ監督の姿と彼女との出会いについて触れるホン·ヒョンスク監督のナレーション、そしてエンドロールに“8mm取材ヤン·ヨンヒ”という表記は、巧妙な責任逃れを図っているようにしか見えない。

さらに微妙な翻訳の違いも気になった。

例えば藤原先生の“歴史的に作られたものは歴史的に直していか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言葉は、

“(本名を使えない現実)それは歴史的に作られたものだ。歴史を正さ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った風に、当時の学生運動やアクティヴィズムを中心に発展してきた映像集団の民族主義的な口調に変えられていたし、本名宣言をしながら涙をこらえるソンミに“頑張れ?”というヤン·ヨンヒ監督の声は字幕として登場しない。

カラーからモノクロへの変換は、ホン監督の言葉を借りれば、過去と現在を区別するための映画的装置だというけれど、ソンミが卒業式で着ていた韓服が、ヤン·ヨンヒ監督が成人式で着ていた韓服と同じといった関係性は削除されており、その意図を考えずにはいられなかった。


ヤン·ヨンヒ監督は2020年の比較上映会で、<本名宣言>が著作権のみならず肖像権の侵害にも当たると主張した。彼女の言葉どおり<本名宣言>に登場する学生や人物をただの題材として扱うことは、先述したカメラを持つ資格がない証しに他ならない。

今からでも沈黙や傍観するのではなく、非を認めて反省すること。そして<揺れる心>と<本名宣言>にまつわる事案を風化させないことが、私たちの使命であり責務ではないだろうか。


1)ホン·ヒョンスク監督は‘ウンパ賞’を返納すべきだ:<本名宣言>事件にまつわる現象をみて


 난둘


<본명선언>을 먼저 보았다. 재일교포 학생들의 본명선언 이후 사회에서의 삶을 말하고자 하는 걸까, 아니면 학교의 교포회 활동이 이렇다는 것을 보여주는 걸까, 본명선언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걸까?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교포회와 본명선언이라는 활동을 기록하면서 생기는 가치만을 갖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가치가 남의 것을 빌어온 것이라면? 가치는 무가치를 넘어 마이너스 가치로 향할 것이다.


두 다큐멘터리는 같은 이야기를 한다. 아마가사키 고등학교 교포회 학생들의 본명선언. 하지만 그 선언을 바라보는 방식은 다르다. <흔들리는 마음>의 양영희 감독은 재일교포 2세대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민족학교를 나와 평생을 본명으로 살아왔다. 감독은 같은 재일교포의 관점에서 재일교포 학생들의 본명선언 및 그를 통해 체득하는 배움을 취재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러한 취재 방식은 교포회 학생들의 본명선언을 동시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일본식 통명을 쓰지 않으며 평생 피부로 느껴왔을 직간접적인 차별들은 평생 양영희 감독의 마음 한편을 차지해 왔을 것이다. 그렇기에 감독은 3학년 1반의 종례 시간에 벌어진 시로모토 다이키(서대수)의 본명선언 여부에 관한 학급토론 이후 카메라 앞에서 그(를 비롯한 본명과 통명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인생을 살아가며 답을 찾아가게 될 것이라 전한다.


7분 50초가량의 학급토론 장면은 <본명선언>에 그대로 쓰였다. <본명선언>은 <흔들리는 마음>이 제작된 1995년으로부터 2년이 지난 1997년 아마가사키 고등학교 교포회 학생들의 본명선언 과정과 본명선언 후 졸업한 재일교포 학생들의 본명 사용 여부를 다룬다. <본명선언>은 민족주의적으로 본명선언에 접근하는데, 일제강점기 당시 창씨개명을 당해야 했던 역사적 사실을 강조함과 동시에 후지와라 시로 선생님의 "이름은 분열된 자신을 하나로 만드는,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출발점입니다. 본명 자체는 정체성 형성의 출발점입니다."라는 인터뷰를 삽입한다.


이러한 민족주의적 태도는 정체성의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재일교포 학생들을 이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그리고 작품의 태도와 학생들의 정체성 혼란에서 오는 격차를 이어줄 만한 다리 같은 존재는 작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본명선언>을 보며 작품의 기조인 한 민족성을 가장 많이 말하면서도 일본인인 그가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등장하지 않아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인물인 후지와라 시로는 <흔들리는 마음>을 보고서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일본과 조선의 역사를 제대로 배운 일본인 교사로서 재일교포 학생들의 아픔과 일본 학생들의 무지를 서로 이해시키며, 작품의 말미에 이러한 정체성 혼란을 애초에 겪지 않는 사회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허심탄회하게 고백하는 마음에서 교포회 활동을 이끄는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후지와라 시로를 다루는 영화의 방식을 비롯해 <본명선언>에 드러나는 미심쩍음은 감독이 작품에 등장하는 재일교포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카메라 앞에 그들을 ‘다시’ 세워놨기에 오는 감정이다. 그들에게 본명과 통명 사이 흔들리는 마음이 무언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무지다. 그렇다면 <본명선언>은 <흔들리는 마음>의 모방에 불과할까 생각하게 되는데, 모방이라는 행위의 시작점인 원작에 대한 믿음과 존경은 <본명선언>에서 단 한 번도 보이지 않기에 더욱 미심쩍다.


<本名宣言>を先に観た。


在日コリアンの学生たちが本名宣言してから社会でどう生きているのか、それとも学校の同胞会の活動を紹介したいのか、本名宣言が重要だと強調したいのか…。

正直、印象として意図がよく見えないと思ったが、同胞会や本名宣言という活動を記録するだけで価値がある作品だと思った。

だが、その価値が他人から借用したものなら? 言うまでもなくいかなる価値も失われてしまう。

二つのドキュメンタリーのあらすじは奇しくも同じである。


“尼崎高等学校の同胞会の学生たちによる本名宣言”


だがその宣言を見つめる目はだいぶ違う。


<揺れる心>のヤン·ヨンヒ監督は在日コリアン2世で、小学校から高校まで 民族教育を受けて育ち、生涯本名を使ってきた。彼女は同じ在日コリアンの視点から在日コリアンの学生の本名宣言とそれを通して学んだことを取材したかったと話す。このような取材方法は同胞会の学生の本名宣言を同時代的に受け入れているように見える。日本で通名を使わず、肌で感じてきたあらゆる差別は生涯ヤン·ヨンヒ監督の心に積み重なっていたはずだ。


だから監督は3年1組で行われた、しろもとだいき(ソ·デス)の本名宣言についての学級討論のあと、カメラの前で彼(だけでなく本名と通名のどちらを選ぶべきか悩む学生)に“今後の人生で答えが見つかるはず?だ”と伝える。


約7分50秒の学級討論の映像は<本名宣言>にもそのまま使われた。 <本名宣言>は<揺れる心>が制作された1995年から2年後の1997年、尼崎高等高校の同胞会の学生による本名宣言の過程と本名宣言した卒業生のその後が撮影されている。


<本名宣言>は多分に民族主義的なアプローチをしている。日本の植民地支配により創氏改名を強いられた歴史的事実を強調すると同時に、藤原先生の“名前は分裂した自分を一つにする、アイデンティティーの出発点です。本名そのものはアイデンティティーの形成の出発点です”という言葉をインサートした。


このような民族主義的なスタンスではアイデンティティーの混乱に直面している学生を理解することは難しいだろう。そして作品のスタンスや学生の混乱をつなぐ橋のような装置がこの作品には存在しない。


<本名宣言>を観た時は、作品の核である民族性について誰よりも語る藤原先生が理解できなかったが、<揺れる心>を観終わって謎が解けた。(日本の歴史も朝鮮の歴史も学んだ日本人の教師として在日コリアンの学生の苦悩と日本人の学生の無知を互いに確認し合わせ、作品の終盤ではこのようなアイデンティティーの混乱がない社会を作りたいという思いで同胞会の活動を率いる彼の気持ちがよく理解できた)


藤原先生の描き方同様、<本名宣言>に感じた疑問は、ホン監督が作品に登場する在日コリアンへの理解がないまま、カメラの前に彼らをただ立たせたことに起因している。


なぜ彼らが本名と通名の間で葛藤するのか、深く考えなかったからこそなせる所業だ。ならば<本名宣言>は<揺れる心>の模倣に過ぎないかいうと、模倣という行為の出発点である原作に対する信頼と尊敬は<本名宣言>でみじんも感じられなかったので、それも甚だ疑問である。


관련 논의는 아래의 항목에서 더욱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분들을 환영합니다! 

양영희 감독님 기고문(2000-01-17, 씨네 21)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4675 

다큐포럼 2020 입장문
https://docs.google.com/document/d/1T3HfUxCnDLD5MsDs9ct_rEeFwcLQyDSESiJUfXONwQo/edit

부산국제영화제 입장문
https://www.facebook.com/busanfilmfest/posts/3051107461605444

양영희 감독의 <본명선언> 문제제기에 대한 현 서울영상집단의 입장(사과문)
http://lookdocu.com/603

낭희섭(독립영화협의회 대표)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4789

《이미다스》(imidas) 양영희 감독님, 김동령 감독의 인터뷰 
https://imidas.jp/humarerumono/?article_id=l-80-029-23-09-g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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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haepari.net/33035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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