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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리 괴인의 역습

해파리는 군집생활을 한다 (2) : 최미리 

웹진 해파리는 생활권 확장 및 생태계 조성을 위해 외부 필진을 모셔오게 됐습니다. ଳ

최미리 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해파리 괴인의 역습, <스팅 오브 데스>(윌리엄 그레페, 1966)


최미리 (호러를 좋아하는 예비 대학원생. 곤조 있는 오타쿠를 추구합니다.)


망작, 졸작, 똥망, 지뢰, 쓰레기 등 흥행에 실패했거나 만듦새가 엉성한 영화를 가리키는 말은 많다. 그중에서도 ‘쿠소영화’는 쿠소(똥)를 단어 앞에 붙여 쓰레기 같음을 지칭하는 일본식 표현으로부터 비롯된 단어다. 쿠소게가 쓰레기 같은 게임이고 쿠소아니메가 쓰레기 같은 애니메이션이라면, 쿠소영화는 쓰레기 같은 영화다. 지칭하는 단어가 무엇이든, B급, 우스운, 눈 뜨고 보기 힘든, 지나치게 진지해서 웃긴 등의 말들로 표현 가능한 영화들은 수없이 많고 쿠소영화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도 많다.


저예산 호러 및 에로 영화로 유명한 감독인 윌리엄 그레페(William Gref)는 정통 쿠소영화 감독 중 한 명이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1976년작 <마코: 더 죠스 오브 데스>가 있는데, 누가 봐도 전년 개봉한 <죠스>의 영향을 받았다. 비슷하게 유명한 작품으로는 이번에 이야기할 <스팅 오브 데스>가 있다. 1965년에 만들어진 이 크리쳐 영화는 <검은 산호초의 괴물>(1954)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자명해 보인다. SF 호러를 표방하고 있으나 SF적 요소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방탕하고 건방지고 아름다운 20대 청춘들이 수수께끼의 살인마에게 죽어 나간다는 점에서 <텍사스 전기톱 학살>(1974)을 필두로 70년대에 유행한 슬래셔물이 연상된다.


<스팅 오브 데스>의 줄거리는 이렇다. 해양학자의 조수 ‘이건’은 못생기고 음침한 탓에 항상 무시당하는데, 이를 위한 복수로 돌연변이 살인 해파리를 만들어낸다. 이건은 이 돌연변이 해파리를 이용해 해파리 괴인으로 변하는 능력을 얻는다. 살인 해파리의 힘을 얻게 된 이건은 독침 촉수와 해파리 소환술을 이용해 자신을 무시하던 사람들을 죽이고, 짝사랑하던 해양학자의 딸을 납치하여 겁탈하려 한다. 해파리 괴인은 딸을 구하러 온 잘생긴 남성과 일기토를 벌이다가, 결국 조명탄에 의해 치명상을 입고 자신의 과오를 참회하며 죽는다.


끝없이 이어지는 영혼 없는 장면들, 예컨대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의 흔들리는 엉덩이, 60년대 히트곡 중 하나인 ‘Do the Jellyfish’에 맞춰 춤을 추는 젊은이들을 흘려보내다 보면 어느새 영화는 후반부에 도달해있다. 최후의 결투에 이르러서야 그간 모습을 감추고 사람들을 죽이던 크리쳐의 형상이 드러난다. 해파리 괴인은 오리발과 잠수복을 입고 몸에 줄(아마도 촉수를 표현한 듯한)을 주렁주렁 달고 있으며, 동그랗게 부풀어 오른 비닐 풍선 같은 것을 머리에 쓰고 있다. 아래의 사진 속 모습이다.


<스팅 오브 데스>는 크리쳐 영화이며, 크리쳐 영화의 대표작 중 하나는 앞서 언급한 <검은 산호초의 괴물>이다. <검은 산호초의 괴물> 속 크리쳐 ‘길 맨’과 본 작의 해파리 괴인을 비교하자면 아무래도 해파리 괴인 쪽이 하찮게 보일 수밖에 없다. 특수분장이나 액션뿐만이 아니다. 해파리 괴인의 사고방식과 행동 원리는 몹시 단순하다. 자신을 못생기고 음침하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다. 이에 대한 연장선일까, 그는 주로 매력적인 여자를 죽이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비키니를 입은 금발 여성을 물에 끌어들여 죽이고 머리카락을 잡은 채로 유유히 헤엄쳤던 것처럼 말이다.


고로 <스팅 오브 데스>의 불쾌함은, 크리쳐물이 흔히 관객을 공포에 빠뜨리기 위해 사용하는 요소들인 크리쳐의 탄생 비화나 충격적인 비주얼보다도 오로지 인간 상태인 ‘이건’의 음침함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영화는 크리쳐 호러 영화의 본질이라고도 볼 수 있는 볼거리의 의무를 다하고자 아름다운 여성의 신체와 무시무시한 괴물의 형상을 제시하려고 하나, 그것마저 정말 마지못한 제스처로 느껴질 만큼 관객의 모든 기대를 저버리고 완벽하게 실패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미덕은 무엇인가? <스팅 오브 데스>는 모범적일 만큼 전형적인 쿠소영화의 꼴을 갖추고 있고, 해파리 괴인의 형상과 그의 일기토는 할리우드 크리쳐물의 역사 내에서도 손꼽힐 만큼 우습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스팅 오브 데스>가 어째서 쿠소영화인지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다. 세 번째 문단에 요약해둔 줄거리가 의외로 흥미롭게 느껴질 사람들에게는 확실하게 쿠소영화라고 말해두고 싶다. 다만 이 글에서 결론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스팅 오브 데스>가 쿠소영화이기 때문에 보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쿠소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다른 이들과 함께 관람하거나, 자신의 관람기를 공유하곤 한다. 쿠소영화에 대한 애호는 본질적으로 쿠소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욕망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렇게나 길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해파리 괴인은 정말 웃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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