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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Nov 16. 2024

8. 학교 공포

안 가는 것이 아니라 못 가는 것

운동회 준비를 위해 매스게임을 연습을 하던 날 이후로 딸이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매스게임은 대형을 바꾸기도 했는데 선생님은 대형을 바꾸는 중심에 딸을 세워놓으셨다.

여행으로 빠져 처음부터 연습을 하지 못하긴 했지만, 야무진 아이라 생각하셨던 선생님은 딸이 금방 잘 따라오리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때도 나는 중요한 역할을 주신 선생님께 고마워하며, 딸에게 잘해야 한다고 했던 거 같다.

그런데, 이미 불안과 걱정이 극도로 높아져 있던 아이는 갑자기 큰 책임이 따르는 역할이 주어진 것만으로도

학교에 가기 힘든 충분한 이유가 되고 있었다.


선생님은 꽤 엄하셨고, 교실 분위기는 마치 군대 집단 같은 분위기였다.

(10년 전만 해도 교실 분위기는 그럴 수 있었다...)

학기 초에 공개수업에서도 느꼈지만, 나이가 많으신 선생님이라 예전 방식으로 학급을 운영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특히 수업을 방해하거나 말을 듣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더 엄하게 대하셨던 것 같다.

딸이 가끔 와서 친구들이 혼난 이야기를 하면 너무하다 싶으면서도 너는 그렇게 혼날 일을 하지 않으면 된다는 말만 했다. 심할 때는 교실에서 목덜미를 잡혀 복도로 끌어내 짐을 당하는 아이도 있었다.

(10년 전만 해도 그런 일이 있었다...)

딸은 긴장되는 교실 상황을 보며 간접적이지만 무섭고 공포스러웠음을 느꼈던 것 같다.

선생님이 자기에게는 그렇게 대하지 않으셨지만, 언젠가는 본인도 그 입장이 될 수 있음을 생각했을 것이다.

친구들 이야기를 전하는 아이가 무섭고 불안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는 보지 못했다.


나중에 딸아이가 놀이치료를 시작하고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 장면을 상담 선생님께 이야기했었다.

내가 잘못을 안 하면 무서울 일이 없을 텐데.. 딸은 유독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아 나는 이해가 안 된다고 하니

공개처형을 예로 들어 설명해 주셨다.

옛날에 공개처형을 통해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공포감과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과 유사한 감정이 들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비로소 딸이 느낀 감정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너희도 이렇게 되고 싶지 않으려면, 잘해라...... 이런 건가....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잊고 있었던 오래전 일이 생각이 났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여자 체육선생님이셨는데, 아주 엄하시고 무서우셨다.

그때는 머리 염색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용감하게 머리를 염색하고 온 친구가 있었다.

단정하게 하나로 묶긴 했지만, 선생님은 봐주시지 않으셨다.

아침 조회시간에 커다란 가위를 들고 오셔서 씩씩하게 그 친구에게로 향하셨다.

그리고 아무 말도 안 하시고 한 손으로는 친구의 묶인 머리카락 밑 부분을 잡으시고, 남은 한 손으로는 그냥 그대로 잘라 버리셨다. 

머리카락은 여전히 묶여 있었지만 밑부분은 잘려 나갔고, 잘려나간 친구의 머리카락뭉치는 선생님 손에 쥐어져 있었다. (30년 전에는 가능했던 일이었다...)

장면을 뒤에서 다 보았다.

머리카락이 싹둑싹둑 잘리는 소리도 정확하게 기억이 난다.

내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는 기분이었다.

너무 무서워서 숨도 못 쉬었던 거 같다.

딸아이의 마음이 깊이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까지도 나만 잘하면 돼!라는 자기 신념과 확신이 너무 강했다.

그 신념이 나를 버티게도 했지만 나와 다른 아이를 키울 때에는 위험하기도 했다.

 


딸이 그렇게 걱정하던 일은 일어나고야 말았다.

매스게임 연습하던 과정에서 딸이 대형을 잘 이끌지 못하자 선생님은 아이의 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뒷덜미를 잡고 끌어당기시거나 큰 소리로 혼나기도 했던 것 같다.

많은 아이들을 지도하는 중에 선생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딸은 이미 공포감에

싸여 그날 이후부터 더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

하기 싫다고 말도 못 하니, 그냥 피하고 싶었던 거 같다.


딸은 일주일에 학교를 두 번 정도 가기 시작했다. 

빠지는 날이 더 많았다.

어떤 날은 아예 교문 앞에도 들어가지 못했고, 어떤 날은 교문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돌아왔는데

어느새 나를 따라 돌아와 있기도 했었다.

처음부터 등교를 못 하는 것보다 다시 되돌아오는 게 더 괴로웠다.

가끔 수업 시작 시간인 9시가 넘어가도 아이가 안 돌아오면 그날은 등교에 성공한 날이었다.

등교하지 못 한 날은 전쟁 같은 하루가 이어졌다.

학교를 안 가는 게 아니라 못 가는 것이라는 것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전쟁 같은 날들을 덜 겪지 않았을까.. 숱한 전쟁을 치른 후에 알았다.

딸은 학교에 안 가는 것 이 아니라 못 가는 것이라는 걸.



◆ 엄마의 생각하는 의자 ◆

    : 나를 지켜온 신념이나 가치관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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