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즈 헬프미
딸이 학교를 못 가는 날이 많아지면서 정말 온갖 방법을 다 쓰기 시작했다.
나도 그런 일을 처음 겪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도움을 구하기도 했다. 학교에서 다시 돌아온 아이를 시댁에 맡기기 위해 가는 가양대교 위에서 미친년처럼 울부짖었던 일도 있었다. 운전대를 붙잡고 정말 소리를 지르며 울면서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머리로 이해하려고 애썼다. 얼마나 몸부림을 쳤으면 차가 다 흔들거리는 것이 느껴졌을 정도였다. 원래 바람이 불거나 무거운 차가 지나가면 다리가 조금씩 흔들리는데, 그날은 나로 인해 다리가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뒷자리에 앉은 딸은 그런 나를 보며 또 얼마나 무서웠을까..
울면서 "엄마 미안해.." 하던 그때의 딸이 떠올라 가슴이 아리다.
지금 갈 수 만 있다면 그때의 딸을 안아주며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또 나를 안아주며 내 잘못이 아니라고.. 누구의 탓도 아니라고 전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계속 나에게 되물을 뿐이었다.
시댁에 아이를 놓고 나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분리불안이 생긴 아이는 나를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어른들 눈에도 다 큰 아이가 하는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으시니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셨다.
울고 불고 내 다리를 붙잡는 아이를 어머님이 잡고 있으면 아이가 쫓아가 올까 무서워서 뛰어나왔다.
일단 아이를 떼어 놓고 오면 직장에서는 또 아무렇지 않게 일하려 애썼다.
내가 썼던 수많은 가면 중에 가장 힘든 가면이었다.
저녁이 되면 다시 아이를 만나 내일 학교에 잘 갈 것을 약속받고 달래고 기도하며 재웠다.
하지만 아침이 되면 또 학교 실랑이를 하고.. 또 못 가고.. 그날 하루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해결해야만 했다.
친정은 멀기도 하고 아빠가 편찮으셔서 운전도 못하니 엄마가 오시기가 힘들었는데, 너무 힘든 날은 딸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기도 했다. 근무 중에 사적으로 시간을 쓴다는 것이 너무 불편했지만, 나도 살려면 정말 어쩔 수 없었다. 엄마에게 가면 나는 엄마를 붙잡고 펑펑 울었다. 쟤가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울면서 엄마에게 하소연을 했다. 그럴 때면 엄마는 손녀를 붙잡고 달래 보려 애쓰셨다.
내가 많이 힘들어 보였던 엄마가 딸에게 하셨던 말이 마음에 남는다.
"얘야~ 너한테는 엄마지만 나한테는 딸이야. 할머니도 할머니 딸이 힘든 거 싫으니까 엄마 힘들게 하지
마라.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네가 엄마를 힘들게 하면 어떻게 하니.. "
그때는 그 말이 나에겐 너무 위로가 되었지만 생각해 보니 딸에게는 엄청난 죄책감을 느끼게 했을 것 같다.
자기도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 테고, 누구보다 엄마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테니 말이다.
그런 딸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서 나는 내 엄마에게 힘들다 하소연을 하고 돌아오곤 했다.
그때 까지도 나는 내가 더 힘들다고 생각했다.
7살 졸업반 아이들을 데리고 졸업여행을 가야 하는 날 딸은 또 학교를 가지 못했다.
졸업여행은 오후 늦게나 오게 되니 하루 종일 아이 혼자 사무실에 놔두지도 못해서 결국 엄마가 오시기로
하셨다. 아이가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오래될수록 눈치가 많이 보이는 상황이었기에 딸에게 할머니가 오실 때까지 교회 로비에 앉아있으라고 했다. 엄마가 도착하시기 전에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출발해야만 했는데,
버스 안에서 본 딸의 모습이 또 가슴에 박혀있다. 모두가 학교를 간 시간.. 자기 혼자만 교회 로비에 남아 있는 게 쉽지 않았는지 테이블에 엎드린 채 고개를 박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당장이라도 버스에서 내려 아이 곁으로 가고 싶었지만, 졸업여행을 통솔해서 가야만 했기에
숨죽여 울며 참아야만 했다. 그날 아이들과 찍은 사진을 보면 내 몰골이 정말 말이 아니었다.
웃고 있는 건지 울고 있는 건지..
엄마가 도착하셔서 딸아이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가려는데 딸이 할머니를 보자마자 도망치기 시작했단다.
엄마도 놀라서 애가 다칠까 봐 찾아다니셨는데, 아이는 할머니를 보기만 하면 기겁하고 숨었다고 한다.
딸을 달래기도 했지만 협박도 많이 했었는데, 딸에게 그렇게 학교를 못 가면 할머니 집 근처에 학교 못 가는
아이들만 모아놓은 학교에 가야 한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는지, 딸은 할머니가 자기를 잡으러 왔는지 알고
도망 다녔던 것 같다. 정말 말도 안 되는 협박으로 아이의 마음을 더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엄마 혼자 힘으로 안되자 선생님들이 함께 찾으러 다녔고, 발버둥 치며 안 가겠다고 하는 아이를 겨우 잡아서 한 선생님 차에 태워 운전하고 다른 한 선생님과 엄마가 아이를 같이 붙잡고 집으로 갔다고 한다. 엄마 말로는 집으로 돌아온 딸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편안해졌고 엄마랑 선생님들을 위해 계란 프라이도 해주었다고 했다. 엄마는 함께 고생한 선생님들에게 함께 점심을 대접하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했다.
엄마도 엄마지만, 정말 교사들에게 면목이 없어서 죽을 것 같았다.
딸아이 때문에 내 삶이 망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 이래 저래 감당하기 힘든 시간이 계속되었다.
숨이 조여 오고 사방이 막힌 것 같았다.
오늘이 끝이길.. 오늘이 마지막이길.. 바라고 바랬지만 다음날이면 또 다른 전쟁을 겪어 내야만 했다.
제발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라는 외침에도 버텨내야만 하는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 엄마의 생각하는 의자 ◆
: 우리 엄마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