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랑 Sep 21. 2022

오롯이 혼자가 되어야만 만날 수 있는 것.

2박 3일간의 템플스테이의 마지막.


 첫날밤, 바로 옆에 있는 산에서 소쩍새, 부엉이 같은 소리가 규칙적으로 나니 마치 그 옛날 어린 시절에 부모님 몰래 보면서 무서워했던 전설의 고향 BGM이 들리는 것 같았고 설상가상으로 방사에서 불을 끄니 방 안이 너무 캄캄해 조금 무서웠다.


불을 끄니 앞이 하나도 안 보여 무서워서 결국 불을 켜고 자기로 했고 게다가 절의 아침은 굉장히 이르기 때문에 아침 공양을 먹으려면 7시까지 공양간에 가야 했다. 절에서 공양을 한 끼 놓치면 그다음 공양까지 먹을 것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공양 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 덕에 나는 첫날,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설쳤다. 


7시 공양을 하기 위해서 새벽 6시 30분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안을 하고 옷을 입고 기본적인 단장을 했다.

7시에 맞춰 아침 공양을 하고 절에서 제공해주는 믹스커피를 한 잔 마시고(4월이지만 산속에 있는 절이고, 이른 아침이라 쌀쌀해서 따뜻한 커피도 딱 좋았다) 아침의 영랑사 풍경을 보며 산책했다.




템플스테이 첫날은 그날 템플스테이를 하러 온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정말 혼자만의 시간을 제대로 보냈지만

둘째 날 점심시간이 되자 1박 2일로 템플스테이를 하러 온 한 팀이 있었다. 두 딸과 어머니로 구성된 팀이었는데 사이좋으신 그분들을 보니 우리 엄마가 생각나 나도 엄마랑 같이 올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이날 오후부터는 '체험형 템플스테이'의 시작이었고 세 모녀팀과 같이 일정을 보내게 되었다. 체험형의 첫 일정은 내가 이번 템플스테이에서 가장 기대했던 스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었다.




불자가 아닌 나로서는 살면서 스님의 말씀을 이렇게 직접 들어 본 적은 없었고 앞으로도 흔치 않을 기회라서 어떤 말씀을 하실지 무척 기대가 되었고 이 자체만으로도 새로운 경험이라 설렜다.


스님은 불교에서 말하는 '삼재팔난(三災八難)'을 주제로 말씀하셨다. 삼재팔난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삼재'는 천재(天災: 하늘로 인한 재앙), 지재(地災: 땅으로 인한 재앙), 인재(人災: 사람으로 인한 재앙)이며

'팔난'은 부처를 보지 못하고 불법(佛法)을 들을 수 없게 하는 배고픔, 목마름, 추위, 더위, 물, 불, 칼, 병란의 8가지의 어려움을 말한다.


인간사에서 위 삼재팔난을 모두 피하면서, 또는 겪더라도 잘 이겨내면서 건강하게 장수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스님의 말씀을 요약해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이 살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삼재팔난을 불자가 되어 공덕을 드리고 오랜 수양을 해 '부처'(불도를 깨달은 성인)가 되면 삼재팔난을 피하거나 겪더라도 쉽게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무교지만, 오래전 한때 교회를 꽤 오래 다녔던 나로서는 목사님이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신 말씀이나 스님이 불공을 드리라고 하는 말씀이나 크게 차이는 없다고 느껴졌다. 결국에는 절대자나 종교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과 실천이나 수양을 행하고, 덕을 쌓으면 인간사에서 겪는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피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어떤 종교든 동일하다. 인간들이나 종교를 가지고 이게 맞니, 저게 맞니 하면서 싸우지 사실상 모든 종교는 하나의 가르침을 전한다는 것에서, 진리는 하나로 통한다는 점에서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스님의 말씀과 사례를 말씀하시면서 얘기하시는 부분이 흥미로웠고 좋았다. 지금까지 불자가 아니었어도, 템플스테이를 하는 동안에는, 적어도 스님의 말씀을 듣는 동안은 불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가르침을 잘 새겨들었다.


이어진 즉문즉설 시간 역시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 나의 고민과 질문은 스님의 말씀 앞에서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한 번 사는 인생, 자신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해보고 실패도 해보고 배워도 보고 여러 경험을 쌓아보라고, 아직 젊지 않으냐고 뭐가 그리 두렵냐고 말씀하시는 스님의 위트 있는 말투와 목소리가 내게 힘을 주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뻔한 답인데도 불구하고 스님의 아우라와 말투에서 느껴지는 확신이 내게 어떤 울림과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가끔 이미 답을 알고 자신만의 결론을 내린 문제임에도 타인에게 어떻게 하면 될지를 질문하고 고민상담을 하기도 한다. 

그것은 신뢰할 만한 타인에게서 내가 내린 결론이 맞다는 걸 확인받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스님의 답변이 내게 확신과 위안이 된 것은, 내가 생각한 대로 해도 괜찮다는 걸 확인받은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저녁 공양 이후 시간엔 템플스테이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108배를 직접 하면서 108개의 염주알을 꿰보는 시간이었다.


보살님의 설명을 듣고 시작했는데 한 번 절할 때마다 염주알 한 알을 염주실에 꿰 넣으면 된다. 보살님이 노트북으로 BGM 음성을 틀어 주셨는데 거기에서 한 번 절할 때마다 몇 번째인지 순서를 알려주며 참된 불자의 마음을 배울 수 있는 한마디 말씀이 각기 다르게 흘러나왔다. 

 

'108배'라는 말만 들으면 그걸 어떻게 하지 싶지만 막상 해보니 그리 어렵지 않았고 옛날부터 척추가 튼실하다고 말을 들어왔던(?) 나는 같이 한 다른 템플스테이 일원들보다 자세 흐트러짐 없이, 힘들어하는 기색 없이 108배를 완료해서 일원 중 한 분이 어떻게 그렇게 잘하시냐고까지 했다.


'108배 절을 하고 108개의 염주를 꿰고' 이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 108배 절을 하면서 나의 마음을 정진하고 갖고 있던 고민과 생각을 정리하는 게 본질이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108번 절을 하며 

노트북에서 흘러나온 108가지의 한마디 말씀과 함께 참된 불자의 마음에 대해 생각하고 나는 그렇게 살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정리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다음 마지막 날 아침, 아침 일정으로 각자 영랑사 옆에 산속에 있는 작은 수목원을 산책하고 점심 공양 이후 공식적으로 템플 스테이 일정은 끝이 났다.



마침 이날은 부처님 오신 날(초파일)이 있는 주를 기념하여 영랑사 스님들이 모두 모여 예불을 하는 행사가 있었다.(법회라고 했나? 정확한 행사 이름을 스쳐 지나가듯 들어서 잘은 모르겠다)


초파일 행사라 그런지 역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템플스테이를 하는 짧은 기간 중 영랑사에 가장 사람이 많았던 때였다.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모습을 보니 템플스테이가 아닌 유명 관광지의 사찰을 온 느낌이었다.


나눠주신 소책자로 된 경전을 보고 다 같이 난생처음으로 불경도 따라 외워봤는데 새로운 경험이었다.

(비록 무슨 말인지는 정확히 모른다는 게 문제였지만...) 행사는 2시간 가까이 진행된 거 같은데 끝나고 점심공양을 하러 갔다. 이런 행사가 있는 날의 공양은 일반 불자들도 참여하기에 특별식으로 한다고 했다.

 



마지막 날의 공양이자, 나의 영랑사 템플스테이의 마지막 식사.

잡채에 나물무침, 전, 후식용 호두와 곶감까지. 다른 공양보다는 조금 더 풍성한 특별식은 특별식이었다. 맛이야 뭐 모든 공양이 다 맛있었으니 말할 필요 없고.


절에서 먹는 공양 하나만 놓고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속세에서는 절대로 채식을 할 일이 없는 나에게

절에서의 삼시세끼 채식은 본의 아니게 하는 거긴 해도 쌀 한 톨, 나물 한 줄기, 국물 한 방울에 담긴 많은 이들의 수고와 노력이 느껴지면서 채식으로도 이렇게 맛있고 건강하고 풍성한 한 끼가 될 수 있음을 느꼈다. 절밥만이 주는 정갈함과 소박함, 과하게 채우는 식사가 아닌, 절제미가 있으며 맛의 깊이가 있는 식사였다.

  



마지막 공양까지 마치고 방사로 돌아가 짐을 쌌다. 전날 밤에 작성한 템플스테이 소감문을 내 방사 책상에 가지런히 놓고 밖으로 나왔다. 


소감문에는 여러 가지 챙겨 주시느라 신경 써 주신 보살님들과 좋은 말씀을 해주신 스님께 대한 감사 인사와

불교문화와 예절에 대해 짧게나마 배울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는 처음 템플스테이를 해 본 사람의 뻔하지만 소박한 감상을 담았다.


내가 떠나는 날은 일요일이었고, 그날은 하필 1년 중 가장 절에 방문하는 사람이 많을 때인 초파일 기념행사가 있는 날이라 영랑사의 풍경은 처음 내가 영랑사에 왔을 때와는 완전히 딴판으로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렇지만 막상 절을 떠날 때가 되어서인지 내 기분은 처음 절에 왔을 때의 따스하고 고요하고 평온한 느낌이 아니라 어딘지 쓸쓸하고 서늘하고 외로운 느낌이었다.


올 때는 반겨주는 보살님이 계셨지만, 떠날 때는 상황이 상황이라 그런지 배웅해주는 사람은 딱히 없었다. 하다못해 마지막 눈인사라도 하고 가고 싶었지만 다들 행사 덕분에 바쁘신지 잠깐이나마 얼굴이 익숙해진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둘째 날부터 일정을 함께한 세 모녀는 자차를 가지고 온 분들이라 먼저 인사를 하고 나보다 빨리 가셨다. 나는 택시를 타고 버스터미널까지 가야 했으므로 영랑사의 드넓은 마당에서 콜을 부른 택시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날따라 귀여운 시고르잡종 강아지 두 마리도, 고양이도 보이지 않아서 아무에게도 제대로 떠난다는 말도 못 하고, 소감문만 남긴 채 나는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택시에 걸음을 맡겼다.




당진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른이 넘어가면서부터 이상하게 외로울 때면 엄마 생각이 나곤 했다.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 모녀는 늘 그렇듯 전화 목소리는 싸우는 듯 티격태격하지만 말이다.

 

'나'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자고 간 템플스테이였는데 어쩌다 보니, 절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것 같다.


물론 '나'란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나는 뭘 좋아하는지, 앞으로 뭘 하면서 살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했지만 좋은 음식, 좋은 풍경, 좋은 경험을 먹고 보고 즐길 때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도 이 순간을 같이 즐겼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게 됐다.

한편으론 절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나는 외로움을 얼마나 즐길 수 있는지도 경험해 볼 수 있었고 나는 낯선 곳에서 혼자 어떻게 지내는지도 알게 됐고, 나란 사람이 생각보다 도전을 즐긴다는 것도 알게 됐다.


결국 나는 생각하는 것이 좋은 사람, 경험을 나누는 것이 좋은 사람, 결국은 그것을 쓰는 것과 얘기하는 것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사람인 것 같다.

처음 간 템플스테이에서 오롯이 혼자가 되어보니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누군가 세상에 치여, 세상살이에 바빠 '나'를 못 보고 있을 때 한 번쯤 '홀로' 템플스테이로 훌쩍 떠나보라고 하고 싶다. 단, '홀로' 간다는 것이 중요하다. 

또 다른 나를 찾는 곳에서는 외로움이 필수가 아닐까 한다.


속세와 떨어진 곳에서, 낯선 곳에서, 아무도 나를 모르는 새로운 사람들만 있는 곳에 있어야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낯선 곳에서 혼자'가 주는 선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