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스테이 첫 경험, 첫째 날을 돌아보며
드디어 22년 4월 22일 금요일
내 인생 역사적인 첫 템플스테이의 날이 왔다.
오래전부터 해 보고 싶었던 일이었는데
그동안 안 하고 뭐 했나 싶기도 하면서
34살 먹고 이제라도 한 게 감회가 남다르기도 하고
새로운 뭔가를 경험한다는 생각에 설렜다.
게다가 누군가와 같이 가는 게 아닌
'혼자' 가는 거여서 더 마음이 긴장되기도, 들뜨기도 했다.
첫날 입소 시간은 14시 30분이었지만
첫 시작부터 임박하게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집에서 여유롭게 출발해 시외버스를 타고
당진터미널에 12시쯤 도착했다.
12시 대에 영랑사 근처까지 가는 도착 예정 버스가 한 대도 없었고
택시 타면 만 원 정도에 15분이면 가기에(버스는 1시간 소요)
더 고민하지 않고 택시를 타기로 했다.
택시 기사님은 운전하시면서
지나는 곳과 관련된 옛 추억을 말씀하셨다.
나는 '오~ 그래요?'라고 연신 관심 있는 척하며 듣다가
택시 기사님이 내 반응에 내가 당진 사람인 줄 아셨는지
한 번은 공감을 구하는 질문을 하셨고,
나는 그제야 당진에 처음 온 관광객임을 밝혔다.
이런저런 얘길 들으며 15분쯤 지났을 때 영랑사에 당도했다.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드넓은 주차장과 고요하게 펼쳐진 사찰의 모습.
진짜로 혼자 왔다는 실감을 느끼며 풍경에 젖어 있자
한 보살님이 나와 반갑게 맞아주셨다.
보살님을 따라 안내받은 곳에서
템플스테이 담당 보살님을 뵈었고 인사를 나눈 뒤
내가 2박 3일을 묵을 방사를 배정받았다.
여기가 내 방사.
오롯이 혼자만 쓰고 내부에 화장실도 혼자 쓸 수 있어서
2박 3일이 너무 기대되고 좋았다.
이곳에서 템플스테이 참가복으로 갈아입자
본격적으로 템플스테이를 즐길 준비가 완료되었다.
영랑사 전경.
방사에서 나와서 처음 한 일은 당연히 영랑사 전체 구경.
누가 절 아니랄까 봐 세상 조용하고 고요했다.
새소리만이 들릴 뿐.
혼자를 만끽하며 영랑사를 구경하는데
요 아이들을 만났다!
고양이가 있다는 건 미리 찾아본 덕에 알고 있었지만
강아지 두 마리는 예상치 못한 만남이어서
너무 좋았고 반가웠다.
아무래도 집에 반려견 2마리를 키우고 있다 보니
고영씨보다도 예상치 못한 강쥐 2마리가 조금 더 반가웠다.
시고르잡종인 거 같은데 2마리 다 어린 강쥐라서 너무 귀여웠다.
한 배에서 나온 형제인지 외모도 흡사하고
서로 장난치면서 깨물면서 너무 잘 놀았다.
또 꼭 둘이 껌딱지처럼 다니는 게 너무 귀여웠다.
첫날은 요 강아지들과 고양이들 구경하는 데에
꽤 많은 시간을 보낸 거 같다.
사진 찍는 데 여념이 없었고,
그냥 멍 때리고 그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좋았다.
보살님 한 분이 장 보고 오신 봉지를
평상에 놓고 잠시 다른 곳으로 이동하시자
이 고양이가 마치 그 물건을 지키는 것처럼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내가 다가가니 오지 말라는 듯
경계의 눈빛을 보내거나 울음소리도 냈다.
잠시 후,
보살님이 다시 돌아오자
자기 할 일을 끝냈다는 듯 평상에서 내려와
다른 곳으로 유유자적 떠나갔다.
고양이는 역시 영민하고도 묘한 생명체인 것 같다.
고양이와 강아지를 쫓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산책도 하고
얼마간의 시간을 보낸 후 드디어 첫 공양(첫날 저녁)을 했다!
밥과 반찬은 먹을 만큼 자유롭게 떠 가는 방식인데
평소에도 먹는 양이 많지는 않은 데다
오로지 채식으로만 이루어진 식단은
요즘 들어 없었기 때문에 조금만 퍼 왔다.
당연한 얘기지만 절에서는 공양을 남기면 안 된다.
공양간 벽면에 공양과 관련한 몇 마디가 쓰여 있는데
대충 요약해서 말하자면
'한 끼의 공양이 내 앞으로 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정성이 있었다'는 것,
그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남기지 않고 거르지 않고 식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상에서도 음식 남기는 것을 워낙에 싫어하기도 하고
또 생각한 것보다 너무 맛있어서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감사의 마음으로 다 먹었다.
절에서는 식사를 마친 후
사용한 식기는 본인이 직접 설거지하는 규율이 있었다.
나도 공양을 마친 후
다른 분들 따라서 식기를 설거지한 후 나왔다.
건강한 식단이니만큼 더부룩한 포만감이 아니라
개운하고 깔끔한 포만감을 주는 식사였다.
공양간을 나오면서 생각하기를
절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절밥만 한 달 먹으면 그 자체만으로도 살이 쫙 빠질 것 같았다.
<내 방사 안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공양 이후 첫날은 휴식형이기 때문에 할 일은 따로 없었다.
방사에 들어와 오로지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인터넷이 터지긴 하지만(당연한 얘기지만 와이파이는 안 되고 개인 데이터 사용)
데이터가 부족한 상황인 데다
절에까지 와서 휴대폰만 붙들고 있다면 절에 온 의미가 없기에
보통은 가만히 앉아서 멍 때리거나 누워서 쉬거나 했다.
그러다가 너무 심심하면 가져온 책을 읽기도 했다.
에세이였는데 절에 와서 읽기에 괜찮았다.
(절간에서까지 복잡한 생각을 해야 하는 공부용 책보다는,
가볍게 생각을 덜어내고 쉼에 집중할 수 있는 에세이 같은 책이 좋은 것 같다)
작가의 소소한 에피소드와 그에 대한 생각을 읽으며
'나'란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방사 안에서 산속에서 울리는 새소리를 들으며 바깥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조용하고 평화로운 절의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듯하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고
아무런 할 일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없는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며 시간이었다.
최근 2년간 아니, 최근 10여 년간
이런 시간이 있었나. 이런 느낌을 가진 적이 있었나.
생각해보면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진 적은 없던 것 같다.
늘 눈앞에 닥친 일, 해야 할 일,
누군가로부터 부여받은 임무나 의무를 해야 하는 것에 급급해서
정작 나를 위해서, 나의 마음을 돌아보는 일에는 무신경했던 것 같다.
명상 같은 것도 진득이 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혼자 절에 와서 심심하지 않을까 외롭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혼자 있는 것이 외롭지 않았고 심심하지도 않았다.
책도 읽고 혼자 생각도 하고 명상도 하니
나도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나도 자연을 꽤 좋아하는구나.
라는 사실도 새로이 깨달으며 조용한 평화를 나름 잘 즐겼다.
비록 오로지 혼자 있었던 날은 첫날 딱 하루였고
밤에 잘 때는 방사 주변의 산이 어두컴컴해지고
뻐꾸기 소리도 들려와서 왠지 모르게 살짝 무섭기도 했지만
(방사는 불 끄면 정말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로 깜깜했는데
집에 있는 LED 수면등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오밤중의 새소리를 들으며
낯선 곳에서 잠이 잘 오는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갔고
나의 첫날 템플 스테이는 평화로이 잘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