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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Sep 20. 2022

'낯선 곳에서 혼자'가 주는 선물

템플스테이 첫 경험, 첫째 날을 돌아보며

드디어 22년 4월 22일 금요일

내 인생 역사적인 첫 템플스테이의 날이 왔다.


오래전부터 해 보고 싶었던 일이었는데

그동안 안 하고 뭐 했나 싶기도 하면서

34살 먹고 이제라도 한 게 감회가 남다르기도 하고

새로운 뭔가를 경험한다는 생각에 설렜다.


게다가 누군가와 같이 가는 게 아닌

'혼자' 가는 거여서 더 마음이 긴장되기도, 들뜨기도 했다. 



첫날 입소 시간은 14시 30분이었지만

첫 시작부터 임박하게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집에서 여유롭게 출발해 시외버스를 타고

당진터미널에 12시쯤 도착했다.


12시 대에 영랑사 근처까지 가는 도착 예정 버스가 한 대도 없었고

택시 타면 만 원 정도에 15분이면 가기에(버스는 1시간 소요)

더 고민하지 않고 택시를 타기로 했다.


택시 기사님은 운전하시면서 

지나는 곳과 관련된 옛 추억을 말씀하셨다.

나는 '오~ 그래요?'라고 연신 관심 있는 척하며 듣다가

택시 기사님이 내 반응에 내가 당진 사람인 줄 아셨는지

한 번은 공감을 구하는 질문을 하셨고, 

나는 그제야 당진에 처음 온 관광객임을 밝혔다.

이런저런 얘길 들으며 15분쯤 지났을 때 영랑사에 당도했다.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드넓은 주차장과 고요하게 펼쳐진 사찰의 모습.

진짜로 혼자 왔다는 실감을 느끼며 풍경에 젖어 있자

한 보살님이 나와 반갑게 맞아주셨다.


보살님을 따라 안내받은 곳에서

템플스테이 담당 보살님을 뵈었고 인사를 나눈 뒤

내가 2박 3일을 묵을 방사를 배정받았다.



여기가 내 방사.


오롯이 혼자만 쓰고 내부에 화장실도 혼자 쓸 수 있어서

2박 3일이 너무 기대되고 좋았다.

이곳에서 템플스테이 참가복으로 갈아입자

본격적으로 템플스테이를 즐길 준비가 완료되었다.


 영랑사 전경.


방사에서 나와서 처음 한 일은 당연히 영랑사 전체 구경.

누가 절 아니랄까 봐 세상 조용하고 고요했다.

새소리만이 들릴 뿐.


혼자를 만끽하며 영랑사를 구경하는데

요 아이들을 만났다!


고양이가 있다는 건 미리 찾아본 덕에 알고 있었지만

강아지 두 마리는 예상치 못한 만남이어서

너무 좋았고 반가웠다.


아무래도 집에 반려견 2마리를 키우고 있다 보니

고영씨보다도 예상치 못한 강쥐 2마리가 조금 더 반가웠다.

시고르잡종인 거 같은데 2마리 다 어린 강쥐라서 너무 귀여웠다.

한 배에서 나온 형제인지 외모도 흡사하고

서로 장난치면서 깨물면서 너무 잘 놀았다.

또 꼭 둘이 껌딱지처럼 다니는 게 너무 귀여웠다.


첫날은 요 강아지들과 고양이들 구경하는 데에

꽤 많은 시간을 보낸 거 같다.

사진 찍는 데 여념이 없었고,

그냥 멍 때리고 그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좋았다.

    

보살님 한 분이 장 보고 오신 봉지를 

평상에 놓고 잠시 다른 곳으로 이동하시자

이 고양이가 마치 그 물건을 지키는 것처럼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내가 다가가니 오지 말라는 듯

경계의 눈빛을 보내거나 울음소리도 냈다.


잠시 후,

보살님이 다시 돌아오자

자기 할 일을 끝냈다는 듯 평상에서 내려와

다른 곳으로 유유자적 떠나갔다.

고양이는 역시 영민하고도 묘한 생명체인 것 같다.


고양이와 강아지를 쫓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산책도 하고

얼마간의 시간을 보낸 후 드디어 첫 공양(첫날 저녁)을 했다!


밥과 반찬은 먹을 만큼 자유롭게 떠 가는 방식인데

평소에도 먹는 양이 많지는 않은 데다

오로지 채식으로만 이루어진 식단은

요즘 들어 없었기 때문에 조금만 퍼 왔다. 


당연한 얘기지만 절에서는 공양을 남기면 안 된다.


공양간 벽면에 공양과 관련한 몇 마디가 쓰여 있는데

대충 요약해서 말하자면

'한 끼의 공양이 내 앞으로 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정성이 있었다'는 것,

그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남기지 않고 거르지 않고 식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상에서도 음식 남기는 것을 워낙에 싫어하기도 하고

 생각한 것보다 너무 맛있어서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감사의 마음으로 다 먹었다.


절에서는 식사를 마친 후

사용한 식기는 본인이 직접 설거지하는 규율이 있었다.

나도 공양을 마친 후

다른 분들 따라서 식기를 설거지한 후 나왔다.


건강한 식단이니만큼 더부룩한 포만감이 아니라

개운하고 깔끔한 포만감을 주는 식사였다.

공양간을 나오면서 생각하기를

절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절밥만 한 달 먹으면 그 자체만으로도 살이 쫙 빠질 것 같았다.




<내 방사 안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공양 이후 첫날은 휴식형이기 때문에 할 일은 따로 없었다.

방사에 들어와 오로지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인터넷이 터지긴 하지만(당연한 얘기지만 와이파이는 안 되고 개인 데이터 사용)

데이터가 부족한 상황인 데다

절에까지 와서 휴대폰만 붙들고 있다면 절에 온 의미가 없기에

보통은 가만히 앉아서 멍 때리거나 누워서 쉬거나 했다.


그러다가 너무 심심하면 가져온 책을 읽기도 했다.

에세이였는데 절에 와서 읽기에 괜찮았다.

(절간에서까지 복잡한 생각을 해야 하는 공부용 책보다는,

가볍게 생각을 덜어내고 쉼에 집중할 수 있는 에세이 같은 책이 좋은 것 같다)

작가의 소소한 에피소드와 그에 대한 생각을 읽으며 

'나'란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방사 안에서 산속에서 울리는 새소리를 들으며 바깥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조용하고 평화로운 절의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듯하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고

아무런 할 일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없는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며 시간이었다.




최근 2년간 아니, 최근 10여 년간

이런 시간이 있었나. 이런 느낌을 가진 적이 있었나.

생각해보면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진 적은 없던 것 같다.

늘 눈앞에 닥친 일, 해야 할 일,

누군가로부터 부여받은 임무나 의무를 해야 하는 것에 급급해서

정작 나를 위해서, 나의 마음을 돌아보는 일에는 무신경했던 것 같다.

명상 같은 것도 진득이 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혼자 절에 와서 심심하지 않을까 외롭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혼자 있는 것이 외롭지 않았고 심심하지도 않았다.

책도 읽고 혼자 생각도 하고 명상도 하니

나도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나도 자연을 꽤 좋아하는구나.

라는 사실도 새로이 깨달으며 조용한 평화를 나름 잘 즐겼다.


비록 오로지 혼자 있었던 날은 첫날 딱 하루였고

밤에 잘 때는 방사 주변의 산이 어두컴컴해지고

뻐꾸기 소리도 들려와서 왠지 모르게 살짝 무섭기도 했지만

(방사는 불 끄면 정말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로 깜깜했는데

집에 있는 LED 수면등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오밤중의 새소리를 들으며 

낯선 곳에서 잠이 잘 오는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갔고 

나의 첫날 템플 스테이는 평화로이 잘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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