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누군가 공무원 시험에서 가장 어려운 과목이 뭐냐고 묻는다면 대다수의 수험생들은 '영어'라고 말할 것이다. 나도 5개 과목 중 영어를 가장 어려워했고 점수 올리기 가장 힘들어했다. 영어에 대해서라면 이 한 페이지의 글로는 다 채울 수 없을 만큼 할 말이 많다.
20년 6월 지방직 공무원 시험에서 내 영어 점수는 25점이었다. 국어 빼고는 나머지 3과목도 과락(40점 이하면 과락이다) 언저리를 맴돌았지만 영어 점수가 가장 심각했다.
당연히 공부가 제대로 안 돼 있었고 시험 삼아 본 시험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지만 고등학생 때 수학 빼고는 초중고등학교 전체 과목을 통틀어 생전 맞아 본 적이 없는 점수여서 더 충격을 받았다.
처참한 점수를 받고 보니 20년도 2월부터 5월까지 했던 공부는 사실상 공부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3월부터 집공을 하면서는 초반 두 달은 동생이 짜 준 플랜대로 했지만 그게 현재 나의 실력에는 맞지 않는 수준이어서 머리에 들어 있는 게 없었다고 봐야 했다.
동생이 짜 준 플랜은 어느 정도 기본기가 된 상태의 사람이 단기 합격을 위해 하는 방법이었는데, 나는 기본기부터가 아예 없다는 걸 6월 시험의 점수를 보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었다.
거의 한 번호로 찍은 수준의 점수를 받고 제로베이스부터 공부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누군가는 그 정도면 그냥 될 수 없는 시험이니 포기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미 퇴사를 했고 다시 그쪽 업계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취업준비를 다시 할까? 취업준비를 다시 할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퇴사도 안 했고 공시생이 되겠다고 주변에 배수의 진을 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왕 하기로 마음먹었고, 내가 하기로 선택했다면 내가 내린 선택에 최소한의 책임이라도 지기로 했다. '뭐가 됐든 1년이라도 해 보자.' 그 생각으로 처음부터 공부를 다시 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중학생용 독해 문제집을 풀어보기도 하고, 공무원 영어 쌩기초부터 차근차근 시작했다.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았다. 하루에 단어집에 있는 단어 100개씩 매일 암기했고 영어 기본서에 있는 다른 단어들도 모르면 발췌해 놓고 내가 보는 영어 기본서에 모르는 단어가 없도록 외웠다.
공시 공부 초반에는 언어 과목에 집중하라는 많은 사람들의 조언대로 초반 3개월은 영어와 국어만 하기로 했다. 하루에 7~8시간은 영어를 하고 나머지 시간은 국어를 공부했다.
강의는 기본적으로 1번만 듣는 것을 모토로 삼고, 혼자 복습과 회독을 여러 번 하는 것에 초점을 뒀다.
쌩기초부터 다시 한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더 이상 동생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동생이 짜 주는 플랜대로 하지 않았다. 내 수준에 맞게 내가 고민해서 내 선택대로 하기로 했다. 공시판의 각 강사들마다 커리큘럼이 다 있었다. 그것을 보고 현재 내 수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플랜을 짜서 시작했다.
9급 공무원 영어 시험에는 '듣기'나 '말하기'가 없다. 듣기 파트가 없는 이유에 대해 한 강사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한국의 공식적인 시험 중에 공무원 시험만큼 중 가장 공정하고 정직한 시험이 없다고.
듣기나 말하기 파트는 해외에서 유학을 했다거나 몇 년 살다 왔거나 사교육을 많이 받아서 듣기나 말하기만큼은 잘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하지만 공시 영어는 특정 집단에게 유리할 수도 있는 듣기나 말하기 파트를 빼고 독해, 문법, 단어, 생활영어 파트로만 문제를 만든다. 그 파트들이 혹자들에 의하면 수능 영어나 토익보다도 난도가 있기에 출제자들도 '공부하지 않으면 절대로 좋은 점수가 나올 수 없게끔' 시험 문제를 낸다고 한다.
그 말을 하신 강사님이 본인 제자 중에 유학 갔다 온 친구들이나 같이 작업하는 원어민 강사들도 공무원 시험 영어를 공부하지 않고 시험을 보면 30점~60점대까지 다양하게 나온다고 한다.
또한 시험 자체가 떨어뜨리기 위해 만드는 시험이다 보니, 독해나 단어들이 난해하고 어려운 것들이 많아 '성실하게 공부하지 않으면 반드시 좋은 점수가 나오지 않는' 시험이며,
공무원 덕목 중 하나인 '성실성'을 보기 위해 이렇게 시험이 어려운 거라고, 꾸준히 공부한 사람만이 점수가 잘 나오게 만든 시험이라는 점에서 공정하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25점 받은 나 자신이 참 암담하고, 앞으로 이 영어의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막막하기만 했다. 강사님의 그런 말도 '잘 쓰지도 않는 단어, 어차피 점수 잘 받아 봐야 공무원 생활할 때 영어 한마디도 못하는 그런 시험인데 이렇게까지 어려울 필요가 있나?'며 콧방귀만 뀌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 말이 일리가 있단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 영어의 벽을 넘어서 내가 합격이란 걸 할 수 있을까? 매일같이 고민하면서도 어떤 때는 그런 고민의 시간도 아까울 만큼 그냥 맨 땅에 헤딩으로 공부해 나갔다.
누군가는 포기했을 수도 있는 그 상황에서 어쨌거나 나는, 계속 혼자만의 싸움을 하며 도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