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이자 공시생으로 살기 그 험난한 시작
2020년 1월,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선택한 공시생의 길.
2월부터 집 근처 독서실을 3개월을 끊고 의욕 있게 도전을 시작했다. 동생은 6월에 있는 지방직 공무원을 목표로 단기로 빡세게 해 보자며 공시 공부를 처음 하는 내게 플랜을 처음부터 끝까지 짜 주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무리 합격생이라지만 내 실력 수준과 공부에 대한 습관, 방식, 체력 등을 생각하지 않고 동생의 말이 곧 진리인 것처럼 그대로 의존하고 따라 했던 건 잘못된 선택이었다.
처음부터 나의 실력을 먼저 알아보고 내 실력에 맞는 수준부터 차근차근해나갔더라면 방황하는 시간도 줄이고 합격하는 데에 좀 더 수월했을까? 란 생각도 했지만 그건 지금에서 하는 결과론적인 얘기일 뿐이다.
그땐 수험을 위한 공부를 고등학생 이후 너무 오랜만이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도 몰랐기에 마음만 급해서 시행착오를 겪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2월부터 독서실을 다니면서 처음에는 하루 8시간 공부를 시작으로 점차 하루 10시간을 목표로 공부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건 다년간의 직장생활로 어렵지는 않았으나 아침 7시부터 나와서(독서실 오픈이 7시였다)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자니 8시부터 나와서 공부하는 내가 게을러 보였다.(집에 갈 때는 독서실 마감하는 때에 갔다)
여러 가지 신경 쓰이는 일을 만들기 싫어서 여성 전용 층에, 칸막이가 있는 라인 쪽에서 공부를 시작했지만, 초반 1~2주가 지난 이후부터 조금씩 문제가 생겼다.
당시 나는 직장인이었을 때 얻은 만성 과민성 대장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간헐적으로 배에서 온갖 소리가 나오곤 했다. 하루에도 몇 번, 많게는 몇십 번씩 나는 소리가 숨소리마저 시끄러울 만큼 조용한 독서실에 소음으로 민폐가 되진 않을까 항상 걱정해야 했다.
거기에 더해 비염까지 있어서 콧물 훌쩍이는 빌런이 될 수는 없었기에 독서실에 오자마자 매일 아침 화장실에 가서 콧물을 최대한 남김없이 풀어 코 안을 상쾌하게 만들고 공부를 시작하는 게 하나의 루틴이었다.(그마저도 점심, 저녁 식사 후 들어오면 또 반복을 해야 했지만)
비염과 과민성 대장증후군이란 개인적인 문제도 스트레스인데 독서실을 그만둬야 할지를 고민하게 하는 더 큰 문제들이 생겨났다.
언제부턴가 내가 있는 자리 라인으로 들어오는 입구 문에 포스트잇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볼펜 딸각 소리 좀 안 나게 조심해 주세요.' '책 조용히 넘기세요.' '패딩 지퍼는 밖에서 내리고 들어와 주세요'와 같은 각기 내용은 다르지만 결국은 조용히 해달라는 얘기가 한두 장씩 생기더니 나중에는 포스트잇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게 됐다.
입구 문에 붙여놨기 때문에 정확히 누구를 겨냥하고 하는 말인지, 포스트잇을 쓴 본인들도 방해되는 소리가 나는 건 알겠는데 정확히 누가 범인인지 모르겠으니 그 룸에 있는 사람은 다 볼 수 있는 문에 붙여놓은 건지,
소음의 주인이 누군지 알지만 그 사람에게 대놓고 주의를 줬다간 혹시 모를 보복이 우려되어 불특성 다수에게 말하는 것처럼 문에 붙여놓는 건지는 모를 일이었다.
정확한 건 모르겠고 그 대상에 나도 포함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나 역시도 볼펜을 쓰다 보면 딸각거릴 때도 있고 책장은 살살 넘긴다고 하지만 누군가의 기준에는 시끄러울 수도 있으니 소음주의 대상에 나는 아니라고 장담할 수도 없었다.
화장실을 갈 때마다 그 문을 지나쳐야 했기 때문에 불특성 다수를 겨냥한 듯이 위장한 포스트잇들을 매일같이 보면서, 새로운 포스트잇이 붙여질 때마다 이번에는 또 뭐가 문제였을까를 생각하다 보니 자연히 기분이 나빠졌다.
아무도 그 대상이 나라고 지목한 것이 아님에도 괜히 스스로 위축이 되고 개인적인 문제인 비염과 과민성 대장증후군까지 겹쳐 더 스트레스가 됐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겪은 사람은 알겠지만, 더부룩하게 먹거나 기름진, 인스턴트 음식을 먹으면 소화도 잘 안되고 배에 가스가 차서 꾸르륵 크르르릉 같은 요란한 소리가 많이 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심해지기도 하고.
배에서 소리 나는 것 때문에 밥을 안 먹고 버텨보려고 해도 아침을 굶고 다니는 내게 점심이나 저녁까지 굶는 건 너무 힘들고 무엇보다 공부하면서 최소한의 건강까지 잃을 순 없었다.
10시간을 공부하면서 밥을 안 먹을 수도 없고, 밥을 사 먹자니 하루에 나가는 돈도 만만치 않았다.
밥값이 아까워 한 끼 5천 원 내외로 먹자니, 건강하고 알찬 식사를 하긴 어려웠다. 주로 편의점이나 김천, 한솥 같은 곳에서 밥을 사 먹었고 그마저도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단어장을 가지고 나와서 밥 먹으면서 보거나
학원을 다니지 않는, 온라인 수업으로 공부하는 공시생이었기에 질문이 있을 때 모아뒀다 밥 먹는 시간에 교수님 카페에 질문을 올리곤 했다.
갑자기 백수가 된 채, 집에서 생활하는 것 빼고는 그동안 모아뒀던 돈으로 개인적으로 나가는 고정비용, 공부에 들어가는 비용 모두 오롯이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했기에 당장 돈이 없는 건 아니면서도 돈 쓸 일이 생길 때마다 심리적 압박이 상당했다.
그나마도 노량진에서 자취하거나 노량진 학원을 정기적으로 다니지 않아서 그 비용은 많이 줄이긴 했지만,
앞으로 얼마나 오래 공시생일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독서실 비용과 밖에서 밥을 사 먹는 돈도 꽤 큰돈이었다.
그런 중에 때는 2020년 3월이 되려는 시점, 모두가 알다시피 2020년 1월 말쯤부터 중국에서부터 시작된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도 퍼지기 시작하며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한 푼이라도 돈을 아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 당시 천정부지로 치솟는 가격의 마스크를 사기도 힘들었다.
감염 위험성을 감수하면서 독서실을 다녀야 할까, 마스크를 구입해야 할까 하는 고민에 시달리던 중
독서실에서 알림이 왔다. 3월부터는 전 좌석 마스크를 계속 착용하고 있어야 하며 착용하지 않을 시 퇴실 조치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지금이야 너무 당연한 제도이고 마스크 오래 쓰는 거야 일도 아니게 됐지만 당시로서는 독서실의 처사는 비염인인 내게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그 문자 덕분에 집공을 하겠다고 결심하게 됐고, 그다음 날 바로 독서실에 남은 이용권을 환불 조치하고 짐을 싸서 나왔다.
환불받은 돈으로 독서실용 책상과 독서대를 구입해 완벽히 집에서 공부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독서실 3개월치 이용권에 비하면 독서실용 책상과 독서대는 거진 1/4 가격이었다.
왜 집에서 공부할 생각을 못했는지 어이가 없을 만큼 독서실 환불 이후 그간의 스트레스가 뻥튀기 튀기듯 뻥 하고 사라졌다.
더 이상 배에서 나는 소리 때문에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콧물이 나오면 나올 때마다 휴지로 풀면 되고 딸각 소리 나는 볼펜을 쓴다고 눈치 보지 않아도 되고 어디선가 내가 내는 소음에 불편해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그렇게 앞으로는 집에서 맘 편히 1년 만이라도 빡세게 공부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누군가 '시작이 반'이라고 했나? 그때만 해도 시작이 반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전혀 아니었다. 공시생에겐 시작의 반이라는 말은 틀렸다. 시도만 해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건 어느 일이나 똑같지만 시작한다고 다가 아니다.
이미 독서실에서 버린 시간이 한 달가량인데 집공을 준비하고, 집공을 시작하면서 생활 패턴이 깨져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거부터가 고난이었다. 시작은 했지만 도무지 공부했다고 할 수 없는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때 내가 얼마나 제대로 된 플랜 없이 시험을 준비했는지, 내가 얼마나 방황하고 있었는지, 내가 이 시험을 얼마나 우습게 봤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