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하면서도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2년 전의 이야기.
2020년 1월, 7년 가까이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공무원 수험생이 되었다.
내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된 이유에는 수험생의 대부분이 꿈꾸는 공무원의 '안정성'을 가지고 싶어서인 것도 있었지만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중 한 가지 이유에는 남동생이 2019년도에 공무원 합격을 한 덕에 나에게도 그 영향이 와 가족들의 적극적인 권유도 한 몫했다.
당시 나한테 우선은 회사를 다니면서 시험 준비를 해보면 되지 않았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고 실제로 공무원 수험생 카페를 보면 주경야독을 하시거나 아이 키우는 주부이면서 수험생인 경우도 꽤 많았다.
그러나 내가 다닌 회사의 업무 특성상, 퇴근을 해도 완전한 퇴근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퇴근 이후에도 지금 하는 업무를 더 잘하기 위해선, 또 회사가 내게 바라는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업무 공부를 별도로 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회사를 다니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엔 상황이 쉽지 않았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욕심내다간 둘 다 제대로 못할 가능성이 컸기에 어느 하나에만 집중하는 것을 택했다.
회사를 만 6년을 다녔고 그 회사의 초창기 멤버이자 연봉도 해가 바뀔 때마다 조금씩 올랐었다. 업계 자체가 전체적으로 박봉이었지만 나는 나름 그 업계치고는 연봉이 낮은 수준은 아니었기에 매월 들어오는 월급을 포기하고 백수로 수험생을 지내겠다는 건 엄청난 도전이자 결심이었다.
사회생활을 처음 한 회사였고, 그 한 회사에 오래 다니다 보니 중간중간 매너리즘과 번아웃이 반복적으로 왔다. 회사원들 누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 비슷하겠지만, 항상 실적 압박으로 스트레스가 오든지, 팀원, 상사와의 불통에서 오는 인간관계로 스트레스가 오든지 둘 다이든지 했다.
보통 업무가 많고 바빠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으면 그 일을 계속할 동력이 생기는데 그 회사에서는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상사는 일을 시키기만 하지, 문제가 생기면 팀원이 알아서 처리하길 바랐고 본인 팀 업무 아닌 다른 일은 절대 조언도, 도움도 주려 하지 않고 본인 상사에게 싫은 소리는 하기 싫어했다.
후임은 새로운 일을 맡는 것을 싫어하고 일이 늘어나면 불평하기 바빴고 책임을 맡기 싫어 승진하는 것을 싫어했다. 늘 하던 일만 하길 원했다.
작은 중소기업이라도 건실하고 튼실한, 팀원들과의 조직력이 좋고 단합이 좋은 곳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다닌 그곳은 회사의 재무 상태나 매출은 건실하고 성장하고 있을지언정, ㅈ소기업이라고 비하당하는 대부분이 그렇듯 내부 팀원들과의 소통, 단합력은 그것만으로도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만큼 오랜 시간 동안 곪아가며 문제가 되고 있었다.
더군다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업계의 상황으로 봤을 때 회사는 미래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곳에서 더 이상 내 미래를 그릴 수 없다는 거였다. 7년째 다니면서 회사에서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한 것도 있었다.
그건 내 오만이 아니라, 당시 나는 별도로 분리된 1인 팀으로 혼자 일을 했어서 존경하는 상사, 배우고 싶은 상사가 없는 것도 한 몫 했다.
다른 팀 상사들은 내가 하는 업무의 대부분을 잘 알지 못해서 혼자 맨 땅에 헤딩으로 다른 회사나 업계 사람 주변에 물어가며 일을 해야 했고 도와줄 소속 팀원이 없었기에 내/외부 모든 일을 혼자 책임져야 했다.
그리고 그동안 업계의 A부터 Z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략 J나 K까지는 배워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쪽 업계에서 더 버티고 시간을 들인다면 나는 앞으로도 더 그만둘 수 없을 것 같았다.
향후 Z까지 다 배운 후 이쪽 업계의 마지막은 10년쯤 뒤에는 내 회사를 창업하거나 이 업계에서 누구나 알아주는 거물급 직원이 되거나 둘 중의 하나였는데 나는 그 무엇도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된다는 보장도 없고, 이 회사에서 내가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도 컸다.
모든 사람이 자기 적성에 맞춰서 회사를 다니는 건 아니겠지만 정말로 이쪽 업계 일이 내 적성에 맞느냐로 봤을 때 나 역시 그게 아니었기에 여기서 내 심신을 더 갈고 버텨서 시간이 더 흘러 더욱 그만둘 수 없게 된다면 그 인생이 내게 행복을 줄 것 같진 않았다.
퇴사하기 전 마지막 1년간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월급이 많았던 시기였고 모아둔 돈도 가장 많은 시기였지만 나의 정신 건강은 역대 최악으로 불안정했다.
돈이 행복을 보장해 주진 않는다는 말을 실감했지만, 돈이 없는 건 싫었기에 버텨왔던 삶이었다. 돈 말고는 시간을 포함해 모든 것이 저당 잡히거나 어딘가로 닳아 없어지는 삶 같았다.
일요일 저녁부터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 있었고 출퇴근으로 하루 3시간을 길바닥에 버리는 시간도,
지하철에서 부족한 잠을 보충하고, 스마트폰으로 독서를 하고 뭔 짓을 해도 출퇴근 하루 3시간은 지옥 같았고 눈물 나게 아까웠고 회사 일보다도 나의 우울감을 높이는 일이었다.
그렇게 7년 가까이 살았으면 나는 그만하면 됐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 이 업계에서 나의 시간과 노오력을 투자를 했는데도 업계에서 뭔갈 더 해보고 싶다는 목표가 없고, '회사는 앞으로 나가려는데, 나는 더 앞으로 나가려는 무언가가 없다면 나는 이 일을 왜 하려고 하는가?' 그런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 답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집안 생계를 위해, 먹고살기 위해 이 정도 해왔다면, 이제는 나를 위해, 내가 하고 싶은 일 좀 하면서 살아도 되는 거 아닐까?'로 결론지어졌다.
그래서, 한때 돈만 있으면 나도 진득하게 오래 공부 좀 다시 해보고 싶다는, 어쩌면 소박할 수도, 어쩌면 현실적이지 않는 그 생각을 한번 실현해 보기로 했다. 누군가는 바보 같다고 비웃을 수도, 누군가는 공감할 수도 있겠지만 그땐 그것만이 내게는 최선이었다.
그렇게 나는 2020년 1월,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내 인생에 새로운 터닝포인트를 만든 공무원 수험생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