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케아에 가보라고 할 것이다
천장에 달린 에어컨을 바라보며 리모컨을 만지작거렸다. 26도로 설정했다가 좀 낫다 싶으면 28도로 올렸다. 더우면 다시 26도로 버튼을 빠르게 눌렀다. 밤새 에어컨을 틀어놓은 탓에 누진세가 걱정되었다. 그래, 에어컨이 빵빵 나오는 곳으로 피서 가자. 옷을 차려입고 밖으로 나왔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도 차의 행렬이 이어졌다. 태양은 여전히 뜨거웠다. 지하로, 또 지하로 내려가 겨우 차를 세웠다. 매장으로 들어가는 자동문 앞에서 싸우는 남녀를 보았다. 멈춰 서서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 곁을 다른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갔다. 매장 안에는 결심한 것처럼 사람이 많았다. 아이는 울고 부모는 다퉜다. '다 쓸 데 없다'라고 잔소리하는 사람과 '산다고 몇 번이나 말해야 하냐'고 소리 지르는 사람이 있었다.
"좀 비켜주실래요?" 들릴락말락한 말을 반복했다. 뒷사람의 카트가 등을 툭툭 쳤다. 사과받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나도 카트로 앞 사람을여러 번 찍었다.
사람들 말소리와 카트를 끄는 소리 외에도 사진을 찍고 가격을 확인하고 소파에 앉아보고 서랍을 여닫는 소란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밥이나 먹자고 했다. 식당은 사람 천국이었다. 30분을 기다려 겨우 2900원짜리 볶음밥을 골랐다. 단지 싸서. 자리를 맡지 못한 사람들은 테이블 곁에서 줄을 서며 안 그런 척하지만 눈치를 줬다. 음식을 실은 카트가 달달달달 소리를 냈다. "이렇게 시끄러운 데서 밥을 먹어야 한다니!" "바닥은 왜 울퉁불퉁한 거야!" "여길 대체 왜 왔지?" "살 것도 없는데" 나도 결국 짜증을 내고 말았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영국 히드로 공항의 소유주인 브리티시 에어로부터 부탁을 받는다. 세계최대 공항인 히드로 공항을 취재하고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 공간, 물건에 글을 써달라는 것. 보통은 그 경험을 <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라는 책으로 남겼다. 이 책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만약 화성인을 데리고 우리 현대 문명을 관통하는 다양한 주제들을 깔끔하게 포착할 수 있는 어떤 장소에 데려가야 한다면, 우리가 가야 할 곳은 공항밖에 없을 것이다. 온갖 소란과 교차 속에서 아름답고 흥미롭게 펼쳐지는 공항 풍경은 현대 문명의 상상력의 중심에 자리한다.
만약 내가 화성인을 데려가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케아를 택할 것이다. 7월이면 더 좋다. 새로 문 연 이케아라면 더더욱 좋다. 그는 인류에 대해 무엇을 배워갈까. 수북하게 쌓인 물건과 그 물건만큼 많은 사람들로부터.
어쩌면 나는 방금 지구를 구한 것일 수도 있다. 우주엔 자원이 많아서 외계인이 지구에서 노릴 건 수집품으로써의 인간 밖에 없다는데, 이케아를 다녀오고나서 보고서에 이런 문장을 추가할 수도 있다.
인간은 몰려있기 좋아하고 몰려있으면 화를 냄. 키우기 힘듦.
아무튼 여름의 주말에 이케아는 안 된다.
도심의 피서지를 찾는다면 차라리 공항이 낫겠다.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이 맛집으로 소문났던데. 활주로가 보이는 식당을 찾아 맥주 한 잔, 다음에는 이런 문명을 즐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