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홀리데이는 실패였다. 지인이라곤 하나도 없는 낯선 땅에 편도 티켓 하나 들고 떠난 도전은 현실이란 거인이 보기에 우스웠다. 직장에 다니다 갔기 때문에 내 경력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영어도 서툴고 언젠가 떠날 나를 원하는 책상은 없었다. 두 번이나 사기를 당하고, 최저임금마저 깎으려는 한식당을 전전하며 생활비를 벌고 어학원에 다녔다. (외국인이 좋아하는 한식은 불고기도, 비빔밥도 아닌 감자탕이더라)
이왕 왔으니 버텨보자고 이 악문 나에게 위로가 되어준 것은 차이나타운이었다. 저렴한 물가에 맛있는 음식(난 정말 중국요리를 좋아한다!), 이국 안의 이국이 그렇게 정겨울 수 없었다.
비자가 만료되어 더 이상 이 나라에 머무를 수 없을 때, 중국에 가기로 했다. 이상한 결정이었다. 중국에 자리 잡은 언니의 집에서 머물며 일을 해보기로 했다. 아니, 일은 잘 모르겠고 하루빨리 떠나고 싶었다. 이곳에서는 매사 긍정적이었던 내가 무너지는 순간이 많았다. 어제 한 선택이 오늘이 되면 미련하고 멍청해보였다. 워킹홀리데이로 얼룩진 내 1년을 새로운 기억으로 지우고 싶었다.
도착하자마자 이력서를 작성해 여러 곳에 보냈다. 다행히 일할 수 있는 자격을 까다롭게 따지지 않아, 한국어학원에서 파트타임 강사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어 초급과 회화를 가르치는 일. 새로운 중국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그 일과 외에는 걸었다.
이 골목, 저 골목을 다니며 도시를 탐닉했다. 지하철 역을 따라 걷고, 집이 있는 서쪽을 향해 걷고, 도시의 경계를 찾아 걷고, 예쁜 카페가 있다는 곳을 찾아 걷고, 큰 도매시장에서 상인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걸었다. (내가 있던 광저우는 동대문만한 도매시장이 여럿 있는 상업도시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는 많이 걷지 못했지만, 걷는 것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며 걸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이 도시에는 거리에 의자가 참 많았다. 일하는 사람들이 쉬려고 가게 앞에 내놓은 의자들이었는데, 이방인인 내 눈에 특별해보였다. 짝이 맞지 않고, 버려진 듯하지만 주인의 애착이 묻어나고, 늘 도로를 향해 앉아 있는 그 의자들이 참 특별해보였다. 어느 날인가에는 마음에 드는 의자를 찾을 때까지 걷기도 했다. 워킹홀리데이를 잊겠다며 택한 또 다른 낯선 경험은 수많은 의자로 남았다.
중국에서 8개월이 지나고, 대통령 선거캠프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선배의 제안에 귀국을 결심했다. 중국에 더 머물고 싶었지만,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어 급히 한국에 돌아갔다. 부모님과 만날 시간도 없이 캠프에 합류했고, 선거로 치열한 12월을 보냈다. 캠프에서 한 계절을 보내고 바로 취업을 했다.
정신을 차리니 워킹홀리데이에 떠나기 이전의 나처럼 직장인의 하루를 반복하고 있었다. 과거의 기억은 환상이 되었다. 내가 외국에서 집을 구하고 살았다고? 나, 외국어는 할 줄 알았던가?
7년이 지났다. 어느 주말, 부모님 댁에 들렸다가 그 근처에서 하루 놀기로 했다. 집 밖으로 나와 작은 캐리어를 끌고 기차역으로 가는 길은 여행이 주는 흥으로 가득 찼다.
그래서 거리의 의자를 다시 봤는지 모르겠다. 분명 매일 있었던 것이지만, 출근 길에는 전혀 보지 못했던 의자들. 동네 골목에는 중국에서 보았던 것과 닮은 거리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어릴 때 듣던 음악을 성인이 되어 다시 들을 면, 처음 그 음악을 듣던 때로 돌아가듯 그 의자도 나를 중국에서 걸으며 의자 사진을 찍던 때로 보내주었다. 그리고 내가 왜 중국으로 갔는지에 대한 기억. 지치기만 했던 워킹홀리데이에서의 시간도 상기시켰다. 그러고보니 그 시간을 따로 돌이켜본 적이 없었다. 잊고 싶기도 했고, 눈 앞에 있는 일들로도 분주했기에 돌아볼 겨를도 없었다.
덕분에 기차를 타고 지방으로 가는 길이 과거로 채워졌다. 편도 티켓을 사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항공기에서 어떤 기내식을 먹고, 어떤 책을 읽었는지. 낯선 곳에서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누구였고 그와 나눈 대화는 무엇이었는지,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였고, 반면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새로 떠나는 여행이 과거로 떠나는 여행길이 되었다.
워킹홀리데이를 하며 보낸 그 시간에 의자 하나 두고 찬찬히 곱씹어본다. 그때가 꼭 나쁘지만은 않더라. 나쁜 사람들만큼 좋은 사람들도 있었고, 서툴렀던 것만큼 배우며 성장했으니까. 또 단풍국의 자연은 언제나 아름다웠지.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있었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렇게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