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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해정 May 03. 2018

카메라를 든 할머니

기술과 지혜가 만나면 유머가 된다

스마트폰 무선충전이 한창 화제가 된 무렵, 나와 스무 살 쯤 차이가 나는 선배가 말했다.

충전기도 무선이고, 이어폰도 무선이고, 무선 키보드하고 무선 마우스는 안 쓰는 사람이 없더라.
난 무선이 영 적응이 안 돼.


나도 영 공감할 수 없어 따지듯 말했다.

저는 이 세상 모든 기기가 무선이었으면 좋겠는데요. 
얼마 전에 청소기도 무선으로 바꿨어요. 드라이어도 무선으로 나왔으면 좋겠고. 온 바닥에 머리카락을 흘리겠지만. 무선 전기장판은 어때요? 잠결에 코드 밟으면 진짜 아프니까. 


청소년 관련 일을 하며 늘 젊은 감각을 유지하던 선배는 "역시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세대차이가 나는군."이라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기술뿐만이 아니거든요. 오늘도 같이 해장하기로 해놓고선 먹고 싶은 쌀국수 먹잖아요. 전 햄버거와 콜라가 좋다고요'라고 차마 말을 하진 못했다. 



요즘 아이들은 물고기다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세대차이가 난다는 말, 맞다. 선배라 부르지만, 작은 출판사의 대표인 그는 얼마 전 육아서를 냈다. <스마트폰과 함께 태어난 아이들>이라는 책. 기술이 전부인 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아이를 어떻게 양육해야 현명할지 함께 고민해보자는 책이다. 기술로 인한 세대차이, 그는 이걸 생태계차이라 정의했다. 그러면서 지금 부모는 아이들과 이 생태계차이가 나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디어 이론가이자 문화비평가인 마셜 맥루언이 1955년에 한 말을 인용하면서. 


누가 물을 발견했는지 모르나 분명히 그는 물고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 아이들은 스마트폰이나 SNS 같은 기술과 서비스를 물이나 공기처럼 원래 있었던 것으로 받아들이는 디지털 생태계의 원주민다. 그리고 어른은 이 디지털 생태계에 겨우 발을 들인 이주민이거나 유목민일 뿐이고. 이 차이를 인정해야지만 스마트폰과 함께 태어난 아이와 부모가 모두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책의 골자다. 




지혜와 기술이 만나면 유머가 된다?! 

육아하는 사람과 대화를 하다 보면 이런 이야길 자주 듣는다.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폰으로 사진을 보다가 손가락으로 넘기더라니까. 
넓적한 것만 보면 귀에다 대고 '여보세요'라고 해. 
유아용 비디오를 보고 코딩을 따라하고 있었어. 


그러면서 '우리 아이는 기술 습득이 뛰어나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기특하긴 하지만, 기술 습득이 뛰어나다는 건 틀린 말이다. 선배의 말마따나 아이들에게 기술은 그저 자연스러운 것이지, 습득하고 말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로 '기술 습득'이 필요한 세대는 우리 부모이상 세대다. 디지털보다 아날로그가 익숙하고, (나이가 들면 그렇듯) 새로운 것은 '불편한' 부모 세대나 그 윗세대는 그야말로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 


그래서 종종 최신 기술과 서비스를 활용하는 어르신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곤 한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미국 철도왕 윌리엄 밴더빌트의 딸이자 400만 달러 유산의 상속자, CNN 유명 앵커 앤더슨 쿠퍼의 어머니로 유명한 글로리아 밴더빌트는 93세에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찰리 채플린, 살바도르 달리와 함께 찍은 사진이나 당시 대저택, 개인 소장 미술품을 인스타그램으로 소개하는데 살아있는 역사가 따로 없었다. 화가이기도 한 그는 최신작을 알리는 통로로 인스타그램을 활용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2019년 세상을 떠났다. 


인스타그램에서 그는 자신의 삶이 행복했으리라 믿는 사람들에게 '나는 열등감이 많은 소녀였다'고 소소하게 고백하기도 했다. 젊은세대가 놓치고 마는 삶의 비결과 진심이, 겉치레가 8할인 SNS 세상에서 감동을 준다. 



또 멋진 할머니가 있다. 일본에 사는 89세의 니시모토 키미코 씨. 72세에 처음 디지털 카메라를 잡아 자화상 찍기에 빠져들었고 지금은 맥으로 포토샵을 할 정도가 됐다. 그렇게 10년이 넘게 사진을 찍었다. 그의 작품을 소개한다. 꽃이나 산을 찍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편견이다. 

 


정말 재밌지 않은가. 자전거와 버스가 있는 사진은 멈춘 상태에서 사진을 찍고 포토샵으로 처리한 것이다. 키미코 씨가 포토샵 작업하는 장면을 일본 뉴스에서 봤는데 투박한 손으로 누끼를 정말 잘 따시더라. 왜 이런 사진을 찍냐는 리포터에 물음에, 키미코 씨는 그저 즐겁다고 말했다. 그의 곁에는 또 하나의 기술이 자리하는데, 남편을 병으로 먼저 보내고 아들이 사준 인공지능 로봇과 함께 살고 있다. 로봇과 어떤 생활을 하는지 공개되진 않았지만 이것 역시 궁금하다.  


윗세대가 가진 직관과 영감을 우리는 지혜라 부른다.


우리보다 우리 아래 세대보다 기술에서 한창 빗겨난 세대지만 이들의 지혜가 기술과 만나니, 유머가 된다는 걸 키미코 씨의 사진에서 알았다. 젊은 세대가 그처럼 사진을 찍는대도 이토록 재미있을까. 어딘가 찡하고 진한 재미는 결코 담을 수 없을 것이다. 

 
흥미로운 건 키미코 씨의 전시를 기획하고 지원한 곳이 앱손이라는 것. 기술을 이끄는 기업의 또 다른 자세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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