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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해정 Mar 30. 2018

고양이 탐정을 만나다

고양이처럼 촉 좋은 고양이 탐정  

날이 저물면 나카타 상은 의뢰인의 집에 들러서 그날의 수색 결과를 구두로 보고했다.
행방불명이 된 고양이를 찾기 위해 어떤 정보를 얻었고, 어디에 가서 어떤 일을 했는지를. (…)
나카타 상이 고양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은 고양이 말고는, 나카타 상 자신뿐이었다.

- 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


소설 <해변의 카프카>에는 나카타라는 인물이 나온다. 신은 그에게 두 가지를 주었다. 기억상실증과 고양이와 소통하는 능력. 그리하여 나카타는 고양이 탐정으로 활약한다. 의뢰인이 사는 동네의 길고양이에게 정보를 얻어 가출한 고양이의 행방을 쫓는다.


나카타처럼 우리나라에도 고양이 탐정이 있다. 아마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라면 고양이 탐정에 대해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중 유명하기로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손가락에 드는 탐정을 만나 인터뷰한 일이 있다. 사적으로 만났다면 물어보기 민망했을 이야기도 청소년 독자들이 궁금해한다는 핑계로 척척 물어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얼마나 버는가'와 같은 질문들.



탐정의 하루

탐정은 오후 1시에 일어난다. 직장인이라면 점심을 먹고 제2라운드에 들어설 시각이다. 늦게 일어나는 이유가 있따. 밤새 고양이를 찾느라 늦게 자기도 했고, 이왕이면 야행성인 고양이의 라이프 서클에 맞추고 싶기 때문이다. 


이 일을 시작한 건 8년 전이다. 친구가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고 한 마리를 입양했다. 하지만 고양이가 집 밖으로 나가버렸고 찾지 못했다. 우연인지 친구의 고양이도 얼마 후 집을 나갔다. 내 고양이를 잃어버리고 찾지 못한 죄책감에, 친구의 고양이를 찾는 일에 매진했고 결국 고양이를 찾았다. 이 일을 시작으로 친구 지인의 고양이도 찾아주었다. 탐정은 자신에게 '고양이를 찾는 촉'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능력을 직업으로 이을 수 있지 않을까. 일본에는 이미 고양이를 찾아주는 '고양이 탐정'이 직업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렇게 무작정 일본으로 갔다. 유명한 고양이 탐정을 찾아가 (처음엔 거절당했지만) 함께 현장을 다니며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보니 일본에서 배운 것은 무용지물이었다. 일본과 한국의 주거환경이 달라 고양이가 숨은 곳을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국 고양이나 일본 고양이나 습성은 비슷했다. 일본에서 고양이 탐정에게 배운 고양이의 습성을 한국의 주거환경에 대입했다. 지역 커뮤니티에서 고양이를 찾는다는 온라인 전단을 보면, 그곳으로 가 고양이를 찾아주었다. 그렇게 서서히 입소문이 났다.



촉은 데이터에서 나온다

하루키의 소설에서 나카타가 고양이와 소통하는 능력이 있다면, 이 탐정은 고양이의 흔적을 보는 능력이 있다. 소리 없이 움직이고 좁은 공간에도 유연한 몸을 숨기는 고양이지만, 흔적은 남긴다. 그 역시도 다른 탐정에겐 없는 자신만의 능력이라고 했다.


현장에 가면 고양이의 경로가 머릿속에 그려진단다. 어떤 창문으로 나갔고, 어떻게 계단을 내려갔는지. 나간 흔적이 없으면 집안에서 흔적을 찾는다. 이틀 동안 찾지 못한 고양이가 집 안에 있다고 있다고 하면 묘주는 어이없어 하지만 책장이나 소파 밑에 숨은 고양이가 꽤 있었다. 


그는 한 마디로 촉이 좋은 탐정이다. 8년 동안 '촉 좋은 탐정'이란 수식을 달고 업계 최고의 자리를 지켰다. 밤에만 일하기에 하루에 많아야 두 세건 정도 의뢰를 처리한다. 창문을 열어두는 계절인 봄이나 가을에는 의뢰가 밀려 동료 탐정에게 일거리를 맡길 정도다. 추운 겨울을 빼놓고는 일주일 중 6일을 일한다. 출장비는 지역에 따라 15만원에서 20만원 선이다. 성공사례비는 출장비만큼 받는다. 80퍼센트의 성공률을 자랑하니, 보수는 예상보다 큰 편이다.


타고난 촉이 일에 많은 도움이 되겠다고 하니, 그는 촉에 전부 의지하기엔 부족하다고 말한다. 언제나 그 촉을 날카롭게 갈아야 하는데, 그 일은 기록의 몫이라고 한다. 



탐정에게 수첩은 빠질 수 없는 상징이듯, 그도 모든 사건의 데이터를 기록한다. 


잃어버린지 얼마나 됐는지, 어떤 방식으로 집을 나갔는지(추측), 고양이의 종류, 날씨, (잡았다면) 어디서 잡았는지... 


고양이를 찾지 못한 날엔 기록에 더 공을 들인다. 왜 못 잡았다고 생각하는가, 주인의 협조는 있었는가, 실수는 없었는가. 고양이를 찾지 못한 날엔 이런 작업이 말할 수 없이 속상하지만 더 꼼꼼히 챙겨야 한다.


고양이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는 만큼, 천차만별인 실종 케이스를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처음엔 이런 기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케이스가 쌓이면서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성공률도 올라갔다. 천재 탐정 셜록을 돕는 왓슨처럼, 기록은 그의 촉을 보완하는 도구가 되었다.


모아놓으면 몰랐던 걸 알게 된다. 


그의 말이다. 고양이 탐정은 기록으로 고양이를 더 빨리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고양이 입장에선 더 많은 친구들의 생명을 구한 셈이다. 



집사를 위한 팁

탐정이 말하는 '절대 고양이를 잃어버리지 않는 법'은 두 가지다. 방묘망을 설치하고, 외출할 때 뒷모습을 보이지 말 것. 


발을 잘 쓰는 고양이는 창문도 열고 방충망도 뜯기 때문에 방묘망을 설치하는 게 좋다. 또 고양이는 주인이 문을 열고 나갈 때 같이 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현관에서는 뒷걸음으로 나가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이 두 가지만 지키면 고양이를 잃어버릴 일이 없다. 


고양이를 잃어버렸다면 골든타임은 48시간이다. 고양이는 영역동물이므로 이틀 동안엔 집 근처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그 이후엔 탐험을 시작해 집 근처를 떠나므로 동네에 전단을 붙여 제보를 받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가 한 말은 고양이를 포기하지 말 것.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주인이 고양이를 포기할 때'라고 한다. 고양이 습성상 가출한 고양이는 집 밖에서 주인을 만나도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 집도 못 찾고 낯선 공간에 남겨졌다는 사실에 자신도 충격을 받아 주인을 보더라도 반가워하지 않는다고. 개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때 억지로 잡으려고 하면 고양이는 더 멀리 도망간다. 


주인이 포기하는 순간은 이때다. '몇 년 동안 애지중지하며 키운 고양이가 나를 알아보지 않는다'며 '저런 배은망덕한 것은 키우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다.


탐정은 고양이의 습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들이 주는 귀여움에만 위로를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안타깝다고 한다. 세상에 나쁜 개 없듯, 세상에 나쁜 고양이 없다. 집 나간 고양이가 나를 모른 척해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고양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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