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로 떠난 친구를 만나다
산티아고 순례를 떠나는 친구를 만나다
부모님은 시위만 나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손목을 끌고 함께 나가자는 동기나 선배가 있을까 걱정했지만, 새내기에게 대학 캠퍼스는 평화롭기만 했다.
그러나 세상은 움직이고 광장은 시끄러웠다. 하루는 선배에게 물었다. 우리는 시위나 집회에 나가지 않느냐고. 그러자 선배는 '그런 동아리'에 가입하면 나갈 수 있다고 했다. 우리 학교에도 '그런 동아리'가 있었다. 탈춤, 마당놀이를 배우는 동아리였다.
그러던 6월, 어떤 집회가 열린다는 포스터를 보았고 혼자서라도 집회에 가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장소에 도착하자 사람들 머리 위로 여기저기 소속을 알리는 깃발이 하늘에 펄럭거렸다. 집회는 거리 행진으로 마무리되었다. 걷다가 학교 이름이 적힌 깃발을 우연히 보았다. '그런 동아리'의 이름이 적힌 깃발도 있었다. 심심하기도 했고 그들에게 다가가 '저도 이 학교 학생이에요.'라고 먼저 말을 붙였다. 무리 중에는 같은 학과 동기도 있었다. 강의실에서는 말 한 마디도 안 해본 친구였지만, 오늘 이후로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걷는 걸 좋아했다. 몇 번의 여행을 함께 했는데, 늘 걸으며 다녔다. 실컷 걷고나서 '이렇게 걷다간 끝도 없겠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면 그제서야 숙소로 돌아갔다. 한국에서는 마지막으로 파주 출판도시에 있는 숙소에서 프로방스 마을까지 걸었다. 이왕 걸은 김에 자유로도 건너보자는 농담을 건넸다.
다음주 친구는 독일로 갔다.
난민 정책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2년 뒤 친구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간다고 했다. 총 40일 여정이란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 알려졌다. 여행작가 김남희 씨가 이곳에 다녀온 후 기행문을 책으로 냈고, 이후 서명숙 씨가 산티아고 길을 걷고 고향 제주에 올레길을 만들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소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도 이 순례길이 등장한다.
유독 한국인은 이 순례길을 좋아한다. 여행상품도 많고, 여행책이나 블로그 후기도 다양하다. 800km의 코스 중 100km를 완주하면 증명서를 발급해주는데, 비서구권 중에 한국인이 가장 많다고.
많은 사람이 이 순례길을 찾는 이유로 혼자만의 사색을 꼽는다. 낯선 곳에서 자신만의 길을 걸으며 내면을 여행한다는 것. 친구는 독일의 한 코미디언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다. 갑작스러운 충동으로 순례길을 떠난 하페 케르켈링의 이야기였다. (그의 기행은 국내에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라는 책으로 소개되었다)
이런저런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지만 문득문득 튀어나오는 마음의 소리를 숨길 수 없었다.
그래도 왜 가는지 이해 못하겠어.
정말 가야 하는 거 맞지?
진심 반 걱정 반이었다. 동행도 없이 걷기만 하는 이 여행이 어떤 의미일까? 과연 이 길에 40일을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 친구의 대답은 단호했다.
다녀 와보면 알 거야. 내가 왜 산티아고에 갔는지.
지금은 산티아고에 갈 수 있다는 시간과 환경이 주어진 것에만 감사하려고.
나는 어쩐지 응원해주고 싶어서 값싼 프로모션 티켓을 끊어 독일로 갔다. 일주일을 함께 보내고 공항에서 헤어지며, 우리는 연신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볼 걸' 이라며 서로에게 미안해했다. 독일에서도 우리는 두세 시간은 거뜬히 걸었다. 친구는 내내 '이럴 줄 알았으면 산티아고에 가져갈 등산화를 미리 신어 길들였어야 했다'며 아쉬워했다.
많은 사람이 산티아고로 떠난다. 목표지는 하나지만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의 목표는 각각 다를 것이다. '걸어서 생각한 것만이 가치 있다'는 니체의 격언을 떠올리며, 40일 동안 오로지 걸어야만 하는 길에 오르겠다는 친구의 선택이 참 대단해 보였다.
걷는 게 좋아서 선택한 것도, 시간과 환경이 되어서 선택한 것도 결코 아닐 테다. 내가 순례를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한국에서 엄마가 보내 준 마른오징어가 순례길에 사치인지 아닌지를 고민하는 친구는 전혀 그런 긴장이 없어 보였다. 다녀와서 가족 다음으로 먼저 연락해달라고 했다.
친구는 이제 내게 남은 건 걷기와 생각과 기도뿐이라고 한다.
홀로 오랜 시간을 걸어야 할 친구를 응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