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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름 Aug 15. 2020

어깨너머 골프

가상현실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스크린 골프를 보라



   우리 집에서 제일 자주 많이 보는 채널은 JTBC 골프다. 저 채널 하나를 추가한다고 IPTV 기본 패키지에 1000원 더 낸 서비스를 이용할 정도로 다들 골프채널에 진심이다. 나는 골프의 ㄱ도 모르지만 모부께서 너무 좋아하니까 종종 내려가서 같이 골프 채널을 보곤 한다. 우리 집에는 골프 프로분의 사인도 걸려있다.. 프로 선수 몇 명이랑 JTBC 골프 아나운서 목소리도 안다고. 엄마는 마치 내가 아이돌 그룹을 거의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선수들을 다 알고 있다.



   여튼 그래서 골프 채널을 보다 보면 스크린 골프 대회? 대결? 같은 걸 종종 한다. 코** 시대에 들어와서는 더 자주 하는 것 같은데 보다 보면 말도 안 되는 가상현실 기능이 스크린 골프에 사용되는 걸 본다. 그냥 센서가 설치되어 있는 건데 얼마나 멀리 갔는지 거리나 각도를 계산해서 측정한 다음 실제로 필드에 나가서 치는 것과 거의 유사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예전에는 필드랑 꽤 차이가 많이 났는데 요즘은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그래서 벙커에 빠지면 벙커에서 치는 것과 유사한 패드 위에서 치고 또 어떤 상황에서는 어디에..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엄마한테 물어보니까 스크린 골프는 넓은 공간에 퍼져 있는 게 아니라 독립된 공간에서 한 팀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들어가서는 서로 못 치게 방해하면서 구찌(?)를 먹이고.. 누가 잘 치는지 내기를 해서 만원 빵을 하고 어떨 때는 실제 등수와 상관없이 뽑기로 등수를 결정한다고 한다. 대체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재미로 하는 거래. 그래서 막상 치는 거에는 관심 없고 다들 뽑기에만 혈안이 될 때도 있대. 어른 돼서 하는 장난도 다들 똑같은가 봐 ㅋㅋㅋ



   스크린 골프 기술은 볼 때마다 경이롭다. 이건 VR을 넘어선 가상현실이라고 생각하는데, 스크린 골프 산업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서 대전에 최대 규모 스크린 골프 경연을 위한 빌딩이 따로 있을 정도라고 한다. 가상현실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스크린 골프를 보라. 곧 필드에 나갈 필요 없이 스크린 골프로도 만족할 수 있는 세상이 올 거라고 하는데 나도 동의한다. 스크린 골프 대회 한 번만 봐보면 정말 기술이 이렇게 발전한단 말이야? 싶다. 내가 치는 공의 방향과 타격감 스피드를 감지해서 거리와 정확한 착지를 예상하는 것.. 이게 4차 산업혁명시대의 신기술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모부의 골프 사랑은 내 아이돌 사랑 저리 가라고 언젠가는 골프 대회를 보느라 티비를 10시간 넘게 켜 두고 있어서 티비라 절전모드로 전환하겠냐고 물어본 적도 있다. 모부께서 즐겁게 취미를 삼을 무언가가 있는 건 좋은 일 같아서 아주 응원하고 있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야마코토? 마키모토? 인가 무슨 현으로 골프 여행을 간 적 있는데 그때 찍어서 보내준 사진이 내가 인생에서 본 모부의 미소 중에서 제일 크고 활짝 핀 미소였다. ㅋㅋㅋㅋ



   디지털 디톡스 한다고 티비 케이블 뽑고 넷플릭스에 golf 검색해서 골프 선수들 다큐 보는 거 보고 나랑 동생이 기함하면서 이럴 거면 제발 JTBC 골프 채널 보라고 했을 정도로 엄빠 세대에서는 골프가 핫한 것 같다. 분명히 2011년까지만 해도 골프 왜 배우냐고 하더니 갑자기 두 분 다 골프에 꽂히셔서 열심히 하시는 걸 어깨너머로 열심히 보고 있다. 물론 나는 단 한 번도 스크린이나 필드를 가 본 적 없다. 맨날 스크린 중계 보면서 신기해서.. 골프 산업이 어마어마하게 크기 때문에 분명히 이 분야 기술은 발전할 것이다. 근데 골프도 여성과 남성 상금 액수부터 크게 차이 난다는 거 어이없어. 한국 여자 골프 선수들이 해외 씹어먹는데 LPGA 상금이랑 PGA 상금이랑 몇 배씩 차이 나는 거 언제쯤 고쳐지려나 싶다.



   굉장히 흥미롭게 지켜보게 되는 골프 산업.. LPGA 파이널 라운드 본다고 아침부터 골프 보고.. 뭐든 한번 시작하면 열심히 좋아하는 유전자가 아주 난데없이 등장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원래도 수영-테니스-배드민턴을 거치면서 스포츠에 취미가 있을 정도로 모부께서 스포츠를 좋아하긴 했지만 골프는 약간 이전과 다른 것 같다. 배드민턴을 친다고 매일 배드민턴을 보진 않았어.. 티브이에 볼 거 없어서 그렇다고는 하는데 거실에 가면 맨날 골프 채널 보고 있다. 내가 오죽하면 아나운서들 목소리도 알겠어 골프 채널 아나운서들은 대체로 조용조용하게 이야기하신다. 왜냐면 워낙 현장이 조용하고 집중하는 경기에 오래 말해야 되니까 그런 것 같다. 듣고 있으면 asmr이 따로 없다 잠이 솔솔 와. 골프 웨어 산업도 얼마나 큰지.. 골프 이름 붙여놓고 옷을 엄청 비싸게 판다. 프리미엄 아웃렛 같은데 가면 타격감 체험할 수 있는 존도 있더라고. 어른들의 취미라 그런가 아주 산업이 크고.. 더 크면 더 컸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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