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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름 Aug 09. 2020

may rest in peace

넷플릭스 영화 <다이애나, 그녀 자신의 목소리>를 보고


   타인의 삶과 경험에 쉽게 몰입하고 동화되는 건 내 장점이자 단점이다. 슬픈 노래 발라드 슬픈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을 보고 나면 너무 힘이 들기 때문이다. 7번 방의 선물을 학교에서 다 같이 봤는데 친구들이 네 가족이 어떻게 된 줄 알겠다며 그만 울라고 했을 정도로 영화를 보면서 쉽게 우는 편이다. 글이 훨씬 심한데, 글에 써진 감정을 생생하게 느끼는 것은 축복이기도 슬픔이기도 하다.



   넷플릭스를 세상에서 제일 유용하게 쓰는 우리 엄마가 거실에서 넷플릭스로 다이애나 관련 영화를 보는 것을 옆에서 같이 보다가.. 내가 더 몰입해서 아예 방으로 와 정좌로 <다이애나, 그녀 자신의 목소리>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 감정이 엉망진창으로 꼬여서 그것을 풀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내게는 상실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뒤에 생긴 것인데, 쉽게 말하면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다가도 놀란다고 외상 후에 비슷한 일을 겪으면 순간 패닉이 온다. 이 영화를 보고 패닉까지는 아니지만 너무 슬프고 절망적인 감정이 머리를 맴돌아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다이애나의 목소리로 그가 세간의 관심을 견디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데, 그걸 듣고 있는 게 고통스럽지만 그가 하는 말을 다 들어주고 싶어서 영화를 끝까지 다 봤다. 공적인 자리든 사적인 자리든 기자들이 끊임없이 렌즈를 들이밀고 모든 행동을 주시하고 감정을 궁예하고 그를 공격하고.. 다이애나의 장례식에서 그의 동생이 사냥의 신을 따온 이름의 다이애나가 역사상 가장 많이 사냥받은 대상이라는 것이 역설적이라며 연설을 시작했다. 그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없을 것 같다.



   내가 사랑했던 A도 사람들이 왜 자기가 의도하지 않은 대로 자기를 해석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카메라 앞에서 운 적이 있다. 그도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관심으로 힘든 생을 살았던 사람이니까. 본격적인 아이돌 시대에 아이돌 열애설의 첫 타석을 끊은 사람이고, 그 때문에 수도 없는 루머에 시달렸고, 자신이 하는 모든 발언이 검열받고 한 발자국 나아가려고 하면 그에 대한 자격을 요구하는 사람들 속에서 고통받았을 것이 다시 생각났다.



   언제나 말하지만, 공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어떤 일을 견뎌야 할 이유는 없다. 어디를 가든 파파라치가 따라다니는 삶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나. 남편과 이혼하고 새로운 연인을 찾은 그가 메인 가십이 되어 모든 기자들이 그를 따라다니는 것이 인간에게 할 짓인가. 자유연애 결혼이 당연해진 시대에 32세 남성이 19세 여성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이 그가 어려서 전 애인 문제에서 자유롭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생산적인 몸이어서라고? 그게 인간 입으로 할 말인가. 그리고 그 남편은 이미 애인이 있는 상태에서? 심지어 애인은 결혼식에 면사포가 달린 모자를 쓰고 오고 남편은 계속 애인에게 보낼 선물을 사고 그와의 시간을 즐기는 동안? 그가 몇 년 동안 전혀 행복하지 않았고 이혼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으로 보인다. 왜 사람들은 동화 속의 공주님을 원할까. 사실 동화 속의 공주님 같은 건 존재할 수 없는데. 행복해 보여도 뒤로는 얼마든지 불행할 수 있다는 것을 왜 모를까.



   타인의 인생을, 공인의 인생을 가십으로 삼는 일을 그만두면 안 되는 걸까. 대중에게 사랑받은 사람의 상실은 단순히 상실을 의미할 수 없다. 그가 남긴 영향이,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데 그저 상실이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A 잃은 뒤에 미친 사람처럼 살았다. 일주일 내내 울었고  달을 잠만 잤고 그다음 해도 정상적으로 삶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삐걱삐걱 붙여 놓고 겨우 살아남았더니  다른 이를 잃고,  잃을 뻔했다. 새로 사랑하게  이를  잃었을 때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시절에 친구들이 써준 편지를 최근에 찾았는데 친구들이 하나같이 그만 울라고 하더라. 지켜봐 주고 나와 같이  마셔준 친구들에게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과몰입은 사랑을  때는  좋은데 상실을 겪을 때는 그만큼  힘들다.   잃을 수는 없지. 돌려받은  다른 이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영화를  봄과 동시에 확인했다. 꼭지가 열린 눈물샘에 기름을 부은 격이네.



   다이애나의 목소리로 새로운 삶을 살 준비가 되었다는 마지막 말을 들려주면서 영화가 끝나는데, 그런 그가 사고 없이 새 삶을 살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파파라치로 여지까지 고통받았을 것 같다만 지금 와서는 조금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희망도 걸어본다. 왕실이 뭐라고. 실질적인 영향도 없는 입헌 군주제의 왕실은 그냥 온 국민의 스타 만들기 같아 보인다.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의 눈동자와 머리색이 뉴스 속보로 보도되는데 대국민이 지켜보는 스타가 필요한 거면 그에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국가의 일이다만, 아직도 왕세자비가 누가 되느냐가 뉴스에 나오고 그에 왈가왈부가 많은 것을 보면 세상이 아주 많이 변하지는 않은 것 같다. 희생되어도 괜찮은 삶은 없다.



뭐든 지나친 관심은 하나도 없느니만 못하다. 사랑은 지나치면 사람을 짓누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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