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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름 Jan 05. 2021

사랑에는 죄가 없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닳고 닳은 개념일지라도 어떤 것들은 언제나 마음을 울린다. 사랑, 예술, 운명이 그러한데,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는 형체 없는 개념에 대사와 행동으로 형체를 부여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참 동안 장면을 곱씹으며 여운 속에 살게 한다.




저항할 수 없는 사랑이 있다. 사랑에 빠지는 것에 저항할 수도 없고 사랑하는 이가 하는 말에 저항할 수 없는 사랑말이다. 오르페우스는 신에게 간절히 빌어 뒤를 돌아보지 않는 조건으로 연인 에우리디케를 저승에서 데리고 나온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뒤를 돌아보고 결국 연인을 놓치고 만다. 많은 이들은 오르페우스가 어리석었다고 말하지만, 엘로이즈는 에우리디케가 뒤를 돌아보라고 말했기에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봤을 것이라는 새로운 입장을 제시한다. 연인이 돌아보라고 하는 말에 저항할 수 없었을 테니 사랑한 죄로 다시 연인을 잃은 것이다. 이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에서 똑같이 반복된다. 초상화를 보내는 것이 결혼 절차의 일부였던 시대에, 저택의 아가씨 엘로이즈를 그리기 위해서 여성 화가 마리안느가 바다를 건너 저택으로 들어가, 초상화를 그리는 동안 둘은 사랑에 빠진다. 마리안느가 초상화를 완성하고 집에서의 기억을 털어내듯 도망쳐 나갈 때 엘로이즈가 뒤돌아봐-라고 말하는 장면은 오르페우스 신화와 겹쳐진다. 혼례복을 입은 연인을 보기가 괴로워 그곳을 벗어나려 하는데도 연인의 뒤돌아보라는 한마디에 돌아볼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랑이다. 시선의 끝에 걸린 욕망을 알아채고 그것을 나누는 것 또한 사랑이며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고 받아들이는 것 또한 사랑이며 본인의 운명을 비틀어보려는 시도 또한 사랑이다. 시대와 공간을 불문하고 어디서나, 누구나 사랑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이 시대에 남긴 발자국이다.




예술은 찰나의 순간을 담으며 박제된 감정을 영원히 간직한다. 성당에 음악을 들으러 간다는 엘로이즈에게 그것은 죽은 음악이라고 말하는 마리안느는 살아있는 음악을 피아노로 치며 들려준다. 집 주변의 외출조차 허락을 받고 나가야 하는 엘로이즈에게는 비발디 여름 3악장이 새로운 자극일 수밖에 없다. 이별한 뒤 엘로이즈는 밀라노에 가서 살아있는 음악을 마주하고 마리안느가 그를 발견한다. 살아있는 음악을 처음 마주한 것 같은 엘로이즈는 웃는 듯 울면서 타오르는 감정을 보인다. 연인이 말했던 오르페우스 신화가 마리안느의 그림에 영원히 남아있고, 집안일을 돕는 소피의 십자수 속에는 절대 시들지 않는 꽃이 남는다. 그림도 음악도 다 삶의 기록이다. 누군가의 삶의 기록을 들여다보며 여태 걸어온 길을 반추할 수 있다는 건 예술이 우리에게 남기는 흔적이다. 앞으로 비발디 여름 3악장을 들을 때마다 몰아치는 듯한 멜로디와 함께 타오르는 감정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처럼.




운명은 만들어가는 걸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결혼을 해야 하는 운명을 지닌 엘로이즈와 아버지의 삶을 물려받을 것이라는 마리안느의 삶은 대비된다. 둘은 영화 내내 푸른 계통의 옷과 붉은 계통의 옷을 입고 나오며 대비되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운명을 거스르길 원한다는 말을 듣는 엘로이즈는 오히려 크게 화를 내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지는 않는다. 자기 이름으로 작품을 출품하기도 어려웠던 시대에 여성 화가의 활동이 제한된다는 것을 듣고, 낙태에 대한 그림을 그리자고 제안한다. 그림에 이념과 관습이 있다고 말하는 마리안느가 아마 생각해내지 못했을 법한 주제다. 수녀원에서는 모두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말하는 엘로이즈는 정해진 운명을 따르면서도 자유를 탐방한다.




사랑, 예술, 운명의 존재감이 어지럽게 얽히면서 하나의 노래를 만들어낸다. 어떤 사랑을 할 것이며, 운명은 받아들여야 하는지 만들어 나가는 것인지, 예술 속에 박제된 죽음과 이별에 대해서 차근차근 말하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스스럼없이 극장을 갈 수 있었던 근래 중 마지막 시기에 개봉하여 극장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여성 감독이 만든 오롯이 여성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도 인상 깊다. 연인이 아니라 시인의 선택을 한 오르페우스는 결국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지 못했다. 그림, 음악, 글과 같이 그를 기록하는 예술을 곱씹으며, 사랑했던 추억을 택한 이들도 28페이지를 보면서 만날 수 없는 연인을 떠올리겠지. 운명을 거스르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은 어디서든 피어난다. 사랑이 무슨 죄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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