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기억
인생의 길을 걸어가던 어느 날 뒤를 돌아봤을 때 인생의 전환점을 꼽으라고 하면 전주 국제 영화제에 가고자 다짐했던 그 순간 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사실 전주에 가기 위해서 준비하는 동안 설레는 마음과 함께 혹시나 영화제가 재미없으면 어쩌지? 그냥 좋은 경험 했다 치자, 어차피 여행이니까! 라는 상반되는 생각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맴돌았다. 전주 국제 영화제가 열렸던 주에 서울에 남긴 일을 버려두고 도망치듯 전주행 KTX를 탔다. 전주행 기차에 타서 바깥의 노을을 보면서 이 노을을 보는 나와 돌아오는 기차를 타는 나는 다를 것 같은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서울행 기차를 탈 때에는 앞으로는 영화를 보는 스펙트럼을 넓혀야 겠다는 생각과, 세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바라 봐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영화의 예술적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총 8편의 영화를 봤는데, <그녀의 가족은 잘못이 없어>, <파리는 날마다 축제>, <노나>, <모든 것들의 가치>,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그 해 여름>, <검열자들>, 그리고 폐막작 이었던 <개들의 섬>을 봤다. 모든 영화가 각자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충격을 줬다. 우선, 평소에 영화를 골랐다면 국내 영화, 다큐멘터리, 지나치게 현실을 반영한 영화는 절대 고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미리 전주국제영화제를 방문한 친구들의 추천도 받고 왠지 다큐멘터리 중에서 재미있을 것 같은 주제들이 많아서 다큐멘터리를 골랐는데 후회없는 선택이었다.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편견을 가지고 들여다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일임을 깨달았다. 앞으로는 최대한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보려는 적어도 노력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생각나는 영화는 메리 셸리다. 얼마전에 뮤지컬로 개봉한 것을 보았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프랑켄슈타인을 쓴 사람이 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메리가 젊은 여성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익명으로 책을 출간해야만 했다는 사실도. 이걸 알고 나니 세상을 언제나 같은 시선으로 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남성이 고위직에 더 많이 있는 것도, 여성이 아이를 가지면 직장을 그만두는 것도, 여자가 남자를 사랑한다는 명제도, 단 한 사람과만 교제를 해야 된다는 생각도, 모두 당연한 생각이 아니지 않나. 언제나 예외는 존재한다. 세상은 몇개의 일반적인 명제로 정의될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더욱이, <파리는 날마다 축제>와 <그해 여름>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뒤에 예술이란 무엇인지, 영화가 예술로서 어떤 함의를 가질 수 있는 지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뉴욕 미술 경매 시장에 대해서 다룬 <모든 것들의 가치>를 보고 나서 도대체 예술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을 했다. 기본적으로 예술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은 ‘모든 예술은 평등하다’는 것이다. 천한 예술도 고귀한 예술도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따라서 예술 영화로 분류될 것 같은 앞의 두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이것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도대체 예술이란 무엇인가’가 전주국제영화제에 참여하던 내내 따라다니던 고뇌였다. 사실 두 다큐멘터리는 내용은 흥미로웠지만 영화를 구성해 나가는 방식이 지루했다. 쉽게 말해 재미가 없었다. 이 영화들을 보면서 문득 지루하고, 영화 중간에 공백이 많은 영화들을 예술 영화라고 부르던 것을 기억해내고는 예술 영화는 왜 꼭 재미가 없어야 할까. 사람들은 이 영화의 재미없음과 공백을 왜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치환하려고 할까, 예술을 재미있으면 안되는 건가? 하는 끝없는 물음이 들었다. 정답은 모르겠다. 예술이 뭔지는 나도 모르겠다. 비싸게 팔리는 그림이 예술인지, 지루해서 졸 것 같은 영화가 예술인지,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영상미와 재미있는 영화와 공연이 예술인지 나는 모르겠다. 예술의 가치를 정하는 기준은 뭘까. 그냥 보고 행복하면 되는 것 아닌가. 내가 숨쉴 수 있을 공간을 주는 그런 것, 그런 것이면 되는 것 같다. 예술이란 뭔지 끝끝내 알지 못하겠지만 죽기 직전까지 예술을 사랑할 것 같다. 아마 죽을 때도 예술의 한가운데에 누워서 마지막을 맞이하지 않을까.
전주로 출발하기 전에 했던 모든 걱정이 무색하게도 전주에 도착하고, 하루에 영화 4편씩 보는 삶이란 막연히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즐거웠다. 아쉽게도 폐막하는 주에 가서 주요 행사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사람이 없어서 좋았다. 4일 내내 늘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쫓기면서 다녔는데, 기차나 영화 시간, 핸드폰, 그리고 지갑 어느 하나 놓치지 않은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영원히 JIFF에 살고 싶었다.
영화 크레딧이 올라간 뒤 박수가 터져 나왔던 것, 다음 영화를 놓치지 않으려고 정신없이 뛰어다녔던 것, 어디에 가서 뭘 물어봐도 친절하게 답해주던 사람들, 비록 화질과 음질은 좋지 않았지만 엄청나게 큰 간이 돔에서 장대비 소리를 들으면서 본 폐막작 <개들의 섬>, 영화 보기 전에 구경갔던 태조 이성계의 어진 그리고 그 외에 사소한 기억들 뭐 하나 잊고 싶지 않고 소중하게 기억 구름 속에 넣어뒀다가 나중에 꺼내보고 싶다. 즐겁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예술에 흠뻑 젖어 있던 꿈같은 시간을 벗어나 현실로 돌아가게 되어서 아쉬울 뿐이다.
-
글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2018년 전주 국제영화제 방문기. 지금은 갈 수 없어서 그리운 시절에 대한 기록을 읽는 것만으로도 향수에 젖을 수 있구나. 3년전에도 지금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