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는 나만 이 콤플렉스를 안고 사는 줄 알았는데, 스물여덟이 되어 주변을 보니 대부분의 대한민국 장녀들은 모두 겪고 있는 콤플렉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 장녀들은 대부분 모두 ‘좋은 사람’ 콤플렉스를 넘어 ‘장녀 콤플렉스’를 앓고 있다.
‘장녀 콤플레스’는 말처럼 참 ‘뭐 같은,’ 참 복잡한 병이다.
내가 ‘첫째라서’ 엄마가 유별나게 극성맞게 공부를 시키기도 했지만, 나 또한 우수한 성적을 받고, 선생님들에게 칭찬받는 걸 좋아했다. 어느 날, 어떤 시험에서 99점을 받아온 적이 있었는데, 엄마는 “1점만 더 맞았으면 100점이었는데……”라며 사랑의 매를 들었다. 5년 후, 같은 시험에서 남동생이 65점을 받아왔는데, 엄마는 “우리 아들 천재 아니야?”라며 우쭈쭈 했다. 그때도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지만 참았다. 나는 ‘좋은 딸’이었으니까.
내 남동생은 참 사고뭉치였다 (라고 쓰고 지금도 사고뭉치다라고 한다). 아주 파란만장하게 각종 사고란 사고는 다이나믹하게 치고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항상 감싸주는 엄마가 너무 미웠다. 나는 사고 한번 치지 않고, 사춘기도 없이 열심히 공부하는 ‘좋은 딸’이었는데……
유독 엄마의 잣대는 나에게는 항상 무거웠고, 남동생에게는 항상 가벼웠다.
나는 엄마의 표현을 빌려, “항상 알아서 잘하는 아이,”였는데, 나는 그 말이 참 싫었다. 나는 “알아서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엄마를 위해서 알아서 잘해보려고 항상 노력하는 아이”였는데. 이런 내 마음을 몰라주는 엄마에게 많이 서운했고, 아직까지도 조금은 서운하다.
엄마는 지금도 내가 “엄마는 항상 나보다 아들이 먼저잖아,”라는 이야기를 하면 화부터 낸다. 엄마는 그때마다 아니라고, 자신은 나한테 항상 최선을 다했다고 억울해한다. 내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게 엄마는 너무나 서운하다고 호소하곤 한다. 그런데 나도 서운하다. 나 또한, 엄마에게 항상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엄마에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딸이자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사실 첫째들은 유독 외로움을 많이 탄다. 아마 동생이 생기면서 무의식적으로 내 자리를 뺏긴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남모를 그 외로움을 엄마가 다시금 채워주길 바래서 첫째들은 더더욱 발버둥을 치는 것 같다. 나는 엄마가 바라는 이상적인 딸의 형상이 되어주고 싶었다. 이상적인 딸이 되면 내가 더 많은 사랑을 받고, 고로 내 외로움이 채워질 줄 알았다. 규율을 지키면, 공부를 잘하면, 사고를 안치면, 내가 엄마에게 동생보다 더 중요하고, 더 사랑받기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나 홀로 했던 것 같다.
누군가가 이상적인 딸이고, 누군가는 개차반 같은 아들이라 더 많이 사랑하고, 덜 사랑하는 것이 아닌데. 나는 ‘장녀 콤플렉스’에 마음이 가려져 이 사실을 꽤나 늦게 깨닫게 된 것 같다. 누군가를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조금 더 아픈 손가락이 있을 뿐이란 것을.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조금은 알겠다. 같은 자식이어도 더 아픈 손가락은 분명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더 아픈 손가락이라고 해서 어떤 자식을 더 사랑하고, 덜 아픈 손가락이라고 해서 어떤 자식을 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엄마는 몇 년 전 나에게 사과를 했다.
어릴 적 내 노력들을 좀 더 헤아려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울었다. 그 미안하단 말 한마디에 그간 설움들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
아마도, 나의 ‘장녀 콤플렉스’는 계속해서 '현재 진행형'일 것이다.
그렇다고 후회는 없다. 나는 여전히 엄마에게 이상적인 딸이고 싶다. 여전히 나는 ‘알아서 잘하는 딸’이고 덜 아픈 손가락이지만, 나는 안다. 엄마의 사랑의 크기는 나나, 남동생이나 동일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