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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 Oct 06. 2020

무지개처럼 찬란했던 그 시절, 그 사람

그리고 가장 빛났었던 나

뜨거운 멜로 영화 같은 자만추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를 꿈꾼다.


운명 같은 사람과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지길 희망한다. 눈이 오는 날, 운명처럼 버스 정류장 앞에서 첫눈에 반한다거나, 우연히 지하철에서 나와 같은 옷을 입고 있는 훈남과 마주치게 되어 사랑에 빠지는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아직도 감히 바라본다. 내 삶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럼 정말이지, 온 마음 다해 열정적으로 사랑해볼 텐데.


문제는 실제로 저런 무지개 같이 찬란한, 운명 같은 일이 벌어지더라도,

나는 이제 어느덧 빌어먹을 현실적일 나이인지라, 그 사람의 외모와 더불어 능력, 직업, 가족관계,

흡연의 유무까지도 계산할 것이 눈앞에서 선하다. 정말이지 그러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스물여덟이라는 나이가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한 살 한 살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면서 누군가에게 나의 온전한 애정을 주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을 느낀다.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눈에 보인다.


‘이 사람은 술을 너무 잘 마셔서 싫어,’ ‘담배를 피워서 싫어’ 혹은 ‘여사친이 너무 많아서 싫어.’ 이전처럼 누군가의 단점조차 좋아해 주고 이해하기보다는 그냥 이유 없이 그냥 싫어지고 마음을 주지 않게 되더라.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는 일에 점점 조심하게 된다. 타인과 알아가고, 감정을 나누고, 교감을 해야 하는 그 시간과 최소한의 노력조차 이제는 귀찮고 피곤하게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첫사랑만큼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다시 사랑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라는 이야기를 가끔 친구들과 나눈다. 진짜 그렇다. 그때는 정말이지 ‘좋아하는 사람’ 하나만 보고 미친 듯이 애정을 퍼부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렵고, 힘들고, 계산이 필요한 일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내 첫사랑은 좋겠다. 나한테 그런 무한한 애정을 받아보아서.


내 첫사랑과 나는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냥 가끔, 문득, 아무 이유 없이 생각나는 사람이었다. 그런 첫사랑이 어느 날 갑자기 결혼을 한다고 전화가 왔다. 순간,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감정들이 내 마음속에서 소용돌이를 쳤다. 맹세코 첫사랑을 그리워한다거나, 미련이 남았다거나, 다시 만나보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했다. 그날은 정말이지 무언가 시원섭섭하고 마음이 뒤숭숭했다.


우리 모두에게 첫사랑이란 존재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존재다. 전 남자 친구 생일은 기억이 안 나도, 십 년이 훌쩍 넘은 첫사랑 생일은 아직도 기억이 나더라. 그건 아마도 내가 가장 어리숙했던 시절에,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이라 그렇겠지? 가장 어리숙했지만 동시에 가장 아름답고 뜨거웠던 시절을 떠오르게 만드는 사람. 무지개만큼이나 찬란했던 시절과 그 사람. 그것이 바로 첫사랑의 존재의 마성 아닐까.




아니.


사실 돌이켜보면 그때 찬란했던 건 그 시절, 그 사람이 아니라 나였던 거다.


무지개처럼 찬란했던 건 그 시절, 그 사람이 아니라, 그때 그 시절에 반짝이던 나의 모습이다.  

누군가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고, 애정을 돌려받기 조차 사치로 느꼈었던 순수했던 내가.

머리 쓰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오직 마음만 쓰던 어리숙했던 나의 모습이 무지개처럼 반짝였던 것 같다.




언젠간 이런 내가 누군가를 다시 만난다면,


나의 그런 찬란했던 모습을 꺼내 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세상에 찌들어 이것저것 계산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아닌,

첫사랑 때의 순수했던, 열정적이었던 나의 모습을 다시금 꺼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런 무지개 같이 찬란한 사람을 만나 다시 한번 뜨겁게 사랑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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