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청국장을 언제까지 먹을 수 있을까

by 이해림


이제 몇 번이나 남았을까

엄마의 청국장을 먹을 수 있는 날이.


못 본 새 잔뜩 쪼그라든 손으로 청국장을 끓여 내는,

자그마한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이 몇 번째 청국장인지,

그리고 내게 몇 번의 청국장이 남았는지.


바삐 움직이는 엄마 옆에는,

"우리 큰 딸, 청국장 진짜 좋아하잖아. 밥 두 그릇씩 먹어라"

어색한 너스레를 떠는

그새 더 말라버린 아빠가 서있다.


월세 100 관리비 20의 오피스텔에서 썩어가던 때.

누구의 연락을 받지도, 받을 수도 없던 때.

기어이 38kg라는 숫자를 찍고 말았던 때.


말라가던 나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애타고 애달았던 나의 부모 또한

함께 시들어 가고 있었다.


나의 붕괴는 곧 가족 전체의 붕괴였다.


오피스텔 현관문을 따고 들어와

쓰레기 집에서 바싹 말라 있는 나를 꺼냈다.

구했다는 말보다, 꺼냈다는 말이 더 맞겠다.


그때의 나는 울음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던 때라,

그저 아무런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꺼내진 그대로 차에 실려

논과 밭, 허름한 세븐 일레븐 달랑 하나 있는 동네의 부모님 집에 내려졌다.


그날 엄마의 눈빛과, 아빠의 떨리는 손

울음을 꾹 참으며

'아무 일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만 중얼거리듯

반복하던 목소리가 지금도 선명하다.


그렇게 도시를 좋아하고,

보여지는 삶을 꾸역꾸역 지키며 살아온

나의 첫 시골 생활이 시작됐다.


누워 있는 장소만 바뀌었지

달라지는 게 뭐가 있나.

마음이 지옥이면,

어디에 있어도 지옥인 것을.


그렇게 생각했다.



머리가 아파도

팔이 부러져도

입맛이 떨어져도

'그거 다 스마트폰 많이 해서 그래' 로 늘 귀결되던 엄마의 잔소리.


이번에도 스마트폰을 많이 해서 그렇다고 할 건가?

지옥 속에서 삐딱하게 생각하던 내게

엄마가 건넨 첫마디는


'유튜브로 우울증에 대해 공부했어. 엄마가 잘 몰랐어서 미안해'였다.


미안해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그 짧고도 아린 한마디를 남기고,

엄마는 내가 그곳에 머무는 동안

오로지 나를 살 찌우는 것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대단한 일인 것처럼


삼시 세끼를 차리고,

누워있는 나를 일으키고,

과일을 깎아내고,

장을 봐왔다.



오늘은 정말 먹고 싶지 않다고

이불 속에서 나오지 않던 날에도,

엄마는 내 손을 잡아

오래되어 칠이 다 벗겨진 개다리소반 앞에

나를 기어코 앉히고

밥 위에 반찬을 하나씩 놓아주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그리고 한 달

시골에서의 느린 시간이 흘렀다.



조용하지만 느리게 죽어가던 나는

조용하지만 느리게 살아나고 있었다.




매일 도시에서 출근길에 마시던 바닐라 라떼 대신

원두 둘, 프림 둘, 설탕 둘 외쳐가며

휘휘 저은 아빠의 다방 커피를 마셨다.


나는 바닐라 라떼 좋아한다며 괜시리 툴툴거렸지만

아빠가 타 준 그 다방 커피는,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로 내게 남아있다.


큰 딸 살 찌우기가 최대의 목표였던

예순을 훌쩍 넘긴 그들은

매일 나를 체중계에 올려, 몸무게를 체크했다.

1그람의 변화도 없으면

다음 날 개다리소반 위에는

밥 솥째 푹 찐 갈비찜이 올라오곤 했다.


그렇게 기어코 살을 찌워 내고

그렇게 기어코 조금씩 웃게 만들어 내고

그렇게 기어코 조금씩 다시 살고 싶게 만들어 내어


그들은 나를 다시 도시로 돌려보냈다.


다이소 3,000원 락앤락 통에

냄새나는 청국장을 한가득 담아서.



어린 시절 자전거를 배우던 때,

잡고 있는 손을 언제 떼야 하나

걱정되어 주춤거리던 그날처럼,


마흔이 다 되어가는 자식을 다시 품 안에 품어내고

자전거에서 겨우 손을 놓듯이

아슬아슬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손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