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가 오지 않았으면 했지

by 이해림


매섭게 추웠던 겨울의 끝자락이었다.


우리는 밤 열한 시가 다 되어서야, 홍제동 그의 빌라 앞에서 만났다.


하고 싶은 말을 종이에 꾹꾹 눌러쓰고, 몇 번이나 연습을 했는데,

차에서 내리는 그의 지친 얼굴을 보자마자 속으로 울음이 날 것 같았다.


그도 나도, 빛을 잃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그마치 3년이었다.


3년의 연애 동안, 우리는 우리의 세상 속에서

무수히 싸우고 무수히 화해했다.


너는 왜 내 마음을 몰라주냐며 울던 날도 있었고

어느 날은 회사 일에 지쳐 쓰러져 자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 눈물이 나던 날도 있었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는 보지 말자며, 세상 끝날 듯 싸우고 돌아서던 날도 있었고

너 없이 내가 어떻게 사냐며, 집 앞에서 몇 시간을 덜덜 떨며 기다리던 날도 있었다.


앞뒤 안 가리고 뛰어들던 20대의 연애와는

흔히 다르게 그려지는 30대의 연애.

적당히 만족하고, 적당히 계산하고, 적당한 수준을 찾는. 으레 그런 것이라 생각했었다.


이렇게 계산 없이, 무엇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은,

온몸을 던져 울고 웃는 가장 진짜의 사랑을 할 거라고는

그도, 나도 알지 못했다.



지친 표정으로 차에서 내린 그는

힘없는 목소리를 겨우 짜내어 말했다.


우리는 끝났다,

너는 헤어질 때도 찾아올 때도 늘 이렇게 네 마음대로다.

두 달 만에 무작정 찾아와서 이렇게 추운데 몇 시간을 기다린다고 하면, 헤어지고도 죄책감을 가질 내 마음은 생각을 못 하냐고.



비수처럼 꽂아대는 그의 말들에

연습하고 또 연습했던 말들이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할 말 있으면 빨리하고 들어가라고 했지만,

'생각이 안 나 미안해'

겨우 한 마디 입을 뗀 나는

홍제동 골목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한숨을 푹 쉬는 그의 앞에서

한참을 울고 난 뒤 더듬더듬.


왜 내가 그렇게 너를 떠났는지

왜 그렇게 떠났으면서, 두 달 만에 다시 찾아온 건지

그 사이에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나를 만나는 동안, 우리의 세상을 지키기 위해 네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이제야 깨달은 것들이 너무 많은데

기회를 줄 수는 없는지

3년 동안 그래왔듯이

금세 또 잊을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는 맹세 따위를 하며

못 이기는 척 내 손을 잡고 가줄 수는 없는지.



차갑게 집에 들어가라고 말하던 그는,

내가 울며 불며 더듬더듬 자아성찰을 하는 동안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난 이제 정말 끝이라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려는 듯

해마다 입고 다녔던 익숙한 패딩 주머니에 손을 꼽아 넣고, 나에게 몇 발자국 물러선 자리에서 이윽고 입을 뗀다.



미안해, 너도 나도 그 시간에 최선을 다했어.

이제 종이 한 장 들 힘도 없을 만큼, 지친 것 같아.

미안해.



진짜 끝났구나

이제는 정말 끝이구나.


3년의 시간이, 정말 끝났구나.





끝내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만 안아달라는

드라마에서나 보던 지리하고 신파적인 대사를 나도 모르게 내뱉으며

앞으로는 드라마 보면서 욕하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알았어 얼른 택시 불러

라며 나를 마지못해 안아주던 그의 품에서

나는 세상이 끝날 듯 울었다.

곧이어 그의 고개가 내 어깨로 힘 없이 떨어지고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몇 번의 계절이 지나고도,

끝내 고개를 떨구고 아이처럼 울던 그의 모습이

끝내 주머니에 억지로 넣어둔 손을 꺼내어

떨리는 손으로 나를 안아주던 그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그런 순간이 있겠지.




택시가 오지 않았으면 했지.

오다가 타이어가 터졌다거나, 사고가 났다거나

그런 드라마 클리셰 같은 거 있잖아.

정말 택시가 오지 않았으면 했어.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던 그의 냄새를 잊지 않으려

한번 더 그를 안고나서야 택시에 올라탔다.

뒷자리에 앉아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는

젊은 여자의 속 사정이 무엇인지 다 안다는 표정으로 기사님은 말없이 노랫소리를 키워주셨다.



그리고 이어 익숙한 번호로 마지막 문자가 한통 도착했다.




내가 바랐던 건, 오직 네가 웃는 것 하나뿐이었어.

정말로 행복했으면 해.

그리고 정말 잘 잤으면 해.





미안해. 나는 여전히 잘 못 자.



밤이 이토록 길다는 것을

떠나고서야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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