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을 하면 좀 나아질까요?

불운의 아이콘의 점집 투어

by 이해림


요즘 연애 프로그램 식의 자기소개로는 사업가, CEO


현실은 옷팔이, 자영업자, 소상공인으로 10년을 넘게 살았다.


산전수전, 공중전, 가끔은 공중제비도 돌아본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긴 시간과 세월이었다.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존폐 위기가 있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나는 일평생 아주 자그마한 요행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삶이었다.

어린 시절엔 보물 찾기부터, 자질구레한 경품 추첨,

어른이 되어서는 각종 복권들,

하다못해 가위바위보까지도.


전생에 혹시 나라를 팔아먹었을까?

생각이 들 만큼

어떠한 요행이라 일컬을 수 있는 모든 것이 허락되지 않은 삶이었고,



그것은 어느새 불운의 아이콘이라는

자기 비하와 자조 섞인 별명을 나 스스로 지을 만큼

뿌리 깊은 자아로 내 안에 자라났다.


불운의 아이콘은 스스로를 믿지 못했기 때문에,

사업이 흔들릴 때마다 유명하다는 점집을 찾아다녔다.






이십 대부터 시작된 점집 투어의 역사는

삼십 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타로도, 사주도 결과는 거의 매번 같았다.

내 질문 또한.



저 결혼 언제 해요?

저 이 사업 계속하는 게 맞아요?

단 두 가지 외엔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았다.


"넌 결혼을 늦게 해야 해. 삼십 대 후반은 돼야지,

안 그러면 이혼한다.

사업은 계속해 힘들어도 버텨. 지금까지 왔는데.

결국 그 일이 37살에 널 돈방석에 앉혀줄 거야"




나는 올해 서른여덟이며

돈방석 말고 5,000원짜리 다이소 방석에 앉아서

수익도 나지 않는 브런치 글을 쓰고 있고, 여전히 미혼이다.



이게 나의 점집 투어가 막을 내리게 된 이유다.




투어가 막을 내리기 전,

불운의 아이콘에게도 보통 숨 쉴 틈은 주면서 불운이 오는데

정말 숨구멍 하나 뚫어주지 않고,

불운이 폭풍처럼 휘몰아칠 때가 있었다.


이런 일이 한 사람의 인생에 연속으로, 끊임없이 일어난다고? 또?



그 많은 불운들을 내 몸으로 다 받아내 왔지만,

이번엔 달랐다.

마치 뭐라도 씌인 것처럼, 반복된 불운들이 이어지며

나는 대책을 세워야만 했다.


사실 신점은 무서워서 쉽게 엄두를 못 냈었다만,

이젠 귀신이고 뭐고 내 인생이 더 무서워서

핸드폰 앨범에만 고이 찍어두고 간직했던

신점 보는 무당의 명함이 떠올렸다.


여기를 결국 가게 될 줄이야.



나의 끝없는 불운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던 친구가

나와 함께 그곳에 가주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데, 얼마나 내가 불행해 보였으면.





살이 타들어갈 만큼 뜨거웠던 여름,

불광동이었다.



크리스천 1인 무교 1인은,

생전 처음 와본 동네에서 한참을 헤매다,

하얗고 빨간 두 개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는

허름한 반지하 앞에 다다랐다.


크리스천 1인은 아무래도 겁이 조금 났는지

나를 앞세워 지하로 내려갔다.



한쪽에는 신당이 차려져 있었고,

한쪽에는 매섭게 무당 메이크업을 한, 한복 차림의 아주머니가 앉아 계셨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너지?"

손에 든 방울로 나를 가리키며, 기선 제압을 시도했다.



20대 때의 나라면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깜짝 놀라며

소름 돋는다고 각종 오버액션을 취했을 테지만

다년간 무당 응대법을 다져 온 나는,

이제는 절대 기에 눌리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처음부터 쉽게 풀리지 않는다고 느꼈는지

무당은 내 눈을 한참 빤히 본 후,


지금부터 말하는 것들은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 할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시니

귀 기울여 들으라는 말을 끝으로,

대차게 방울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한창 흔들던 방울을 멈춘 그녀는



"너 우울증 있지? 잠도 못 자고"



이건 나의 무당 응대 매뉴얼에 없던 질문이었다.

좀 치는데?

그때부터 나는 의자를 바싹 끌어 앉았다.


그제야 무당은 신이 나서 줄 줄 읊어대기 시작했다.



결혼은 마흔이 넘어서 할 수 있으며

사업도 계속해도 좋다.

그러나.






그러나?




이 모든 건 네가 굿을 해서,

지금 너의 앞길을 막고 있는 이 모든 액운과

잡귀의 기운들을 털어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없고,

말도 안 되는 불운이 계속 따라붙을 것이다.


너희 가족 이름으로 각각 초 4개를 켜서,

기도를 드려야 하고

너는 너대로 굿을 해야만,

이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 탄탄대로가 열린다.



그래, 다른 때였으면

'초를 켜라, 굿을 해라' 같은 말은 모두 사기라며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나 확신에 차서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 얼.. 만데요?



초는 개당 30만 원,

너희 가족 네 명 다 켜야 하니까 30 곱하기 4겠지?

그리고 너는 무조건 굿을 해야만 살아. 굿은 700.

이거 풀고 가지 않으면, 정말 어두운 방 안에 갇혀서 죽을 수도 있어.



나는 숫자에 아주 취약한 수포자이지만

그때만큼은 굉장히 빠르게 계산이 되었다.



820만 원.....




통장에 점사비 빼고

8,200원 정도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샤넬 가방 들고 와서 한탕 해 먹으려고 하시나?

이거 짭인데?


크리스천 친구는 조용히 내 옆구리를 찔렀다.

나가자는 이야기이겠지.



그래 정말 다른 때였다면

저 돈 없다고 당당히 말하고, 바로 일어났을 테지만

이걸 풀지 않으면 죽을 수 있다, 가족도 위험하다.라는 말을 들어버린 불운의 아이콘은

평소처럼 쉽게 일어날 수 없었다.



"제가 당장에 그 정도의 돈은 없는데, 혹시 초만 켜는 건 도움이 안 될까요?"



스스로도 짜치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간절했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그녀는

"초만 켠다면, 가족은 조금 안전해질지 몰라도 네 인생은 그대로야.

너 안 풀려서 온 거 아니야? 계속 그렇게 살래?

돈이 없으면 지금 대출이라도 받아야 할 판이야. 심각하단다 우리 할아버지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돈 나올 구멍은 없었고

자영업자의 머릿속에선 블라우스와 팬츠 몇 개를 팔아야, 저 돈을 빠르게 마련할 수 있는지

계산이 시작됐고 결괏값이 나오자,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저도 정말 하고 싶은데, 돈이 없다.

생각 좀 해보고 연락드리겠다며 신발장으로 향했다.



그러자 내내 앉아 있던 무당은 빠르게 나를 쫓아와

이러다가 네가 죽으면, 나도 죄책감이 들 것 같으니

사람 하나 구한다는 마음으로 굿은 400만 원에 해주겠단다.

젊은 처자가 너무 우울해 보여서 안타깝다나.



여기 혹시 동대문이에요? 밀리오레인 줄 알았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지성인이니까

이를 꽉 깨물고 감사하다고 인사한 뒤

지하의 계단을 올랐다.





다시 뙤약볕의 불광동 골목.


크리스천 1인이 묻는다.


야 설마 할 건 아니지?


불운의 아이콘 무교 1인이 대답한다.


야 그 돈이 있었으면, 우울증에 안 걸렸을걸.




그 후로도

불운은 점점 업그레이드되어 나를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정말 그때 초 4개를 켜고,

굿을 해서 액운을 풀어냈다면

나는 지금 다이소 방석이 아니라, 정말 돈방석에 앉아있을 수도 있었을까?


끊임없이 찾아와 대는 불운에

나는 결국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부모님에게 실토했다.



사실 정말 유명하다는 무당한테 갔었는데, 굿을 해야 한단다.

이 무당은 조금 다르다. 앉자마자 나인 걸 맞췄고

우울증이지? 잠도 못 자고,

이렇게 한마디 던지더니,

우리 가족도 위험 하..ㄷ 까지 말했던 것 같다.


아빠는 내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야 이년아

니가 요즘 얼굴이 시쭈구리해서 누가 봐도 우울하고, 우환이 있어 보이는데

그걸 못 맞추겠냐?

나한테 방울을 주고, 나한테 5만 원 만 줘봐라

아빠가 초 켜주고 굿까지 해줄 테니까.





듣고 보니 맞는 말인 것 같다.



아빠.

그런데 이 정도로 안 끝나는 거면

조금만 더 깎아달라고 해볼 걸 그랬나?




점집은 이제 안 갈게 걱정 마.




이제는 애지간한 불운으로는 안 꺾이는 내가

귀신과 무당보다도 더 징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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