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인플루언서

by 이해림


제목부터 군침이 싹 도는

가짜 인플루언서.



인플루언서.


사전적 정의로 SNS에서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에 달하는

많은 팔로워(follwer: 구독자)를 통해 대중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



이제는 이 단어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인플루언서가 아닌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로 흔해 빠진 감투가 되어버린 시대.



나는 세미 인플루언서다.



옛날 옛적 블로그가 흥하던 시절에,

직장인치고 글 좀 깨나 웃기게 쓴다며

세미 유명세를 타고

그 덕에 세미 인플루언서가 됐다.


인플루언서의 흔한 코스대로, 나 역시 옷팔이가 되었고

그게 나의 업이 되었다.



20대에 시작해서, 30대 전체를 아울렀던 나의 업.



팔이 피플이라며 싸잡아서

후려치는 사람들이 많을 때에도

나는 보통의 팔이 피플과는 달라.

이건 내 생계이자, 오랜 기간 버텨 온 나의 직업이자

나의 정체성 그 자체이니까.

나는 정말 달라.


그 생각에 빠져 있었다.


아니 돌아보니 빠져 있는 척을 했던 것 같다.

팔이 피플,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

그저 인정하는 게 마음이 애렸을 뿐.



요즘처럼 인플루언서가 흔해지기 전

나름 그 숫자가 몇 안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감투를 쓴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 시절이 있었다.



각자의 팔로워 수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서열이 정해지고

밥 값을 내는 사람이 정해지고

밥 보다 2배는 비싼

디저트 값을 내는 사람이 정해지는 그런 모임.



우리 엄마가 보면 슬프겠지만

없이 살았던 나는 그 모임에서 늘 배가 아팠다.

심사가 뒤틀려서가 아니라

진짜 배.


과민성 대장 증후군 환자는,

긴장되거나 불편한 상황이 생기면 배부터 아프다.



모두가 여유 있었다.


나 또한 그렇게 보였겠지.

인플루언서답게 모임의 멤버들은 각자의 사업을 하며,

직장인 월급의 몇 배 혹은 몇십 배 되는 돈을 버는 사람들이었다.


그럼 세미 인플루언서 넌? 너도 똑같은 거 아냐?

라고 물어본다면

모임마다 내가 화장실을 간 횟수로 그 대답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이러다간 치루가 오겠다 싶어

나는 더 이상 그 모임을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몇 개의 모임이 쉬이 만들어지고

쉬이 사라지는 동안

나는 인스타를 키우고, 내 사업을 키우는 것보다

제정신을 차리고 있는 게 더 어려웠다.


화려한 사람들

화려한 장소

값비싼 음식

쉴 새 없는 아이폰 셔터 소리


남들이 봤을 땐 똑같은 팔이 피플이겠지만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극명하게 삶의 레벨이 보였다.


잘 가 다음에 또 봐!


각자가 만족할 만한 사진들을 '건지고' 나서야 모임이 끝난다.

그리고 모두 손을 흔들며 주차장으로 향한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 지하철 연결 통로를 찾고,

뒤적뒤적 티머니를 꺼낸다.


마세라티, 포르쉐, 벤츠

그들의 얼굴 위로 지금도 차종이 둥둥 떠다닌다.



아, 티머니 또 다 썼네.



5,000원을 충전하고 아픈 배를 부여잡고 집으로 간다.

언덕 위에 있는 경기도의

낡은 아파트로 향하는 그 길이

나에겐 늘 이상과 현실의 다리 같았다.



방금 전까지 호텔 라운지에서

한 잔에 25,000원이 넘는 커피를 마시고

36,000원짜리 케이크를 먹고

5,000원 티머니 충전을 하고 다시 다리를 건넌다.



세미 인플루언서로 사는 삶이 행복했느냐 묻는다면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조건 없는 사랑과 응원을 받아

위로가 될 때도 많았지만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조건 없는 분노와 경멸을 받아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더 많았다고

조건 없는 사랑을 모두 잊을 만큼

슬펐다고 말할 수 있겠다.



릴스 터지는 법

노출도 높이는 방법

메타 광고 효율 올리는 방법

따위만 검색해 대는 삶



수능보다도 더 열렬하게 고민하고 올리는 게시물들에

좋아요가 찍히지 않으면

댓글이 올라오지 않으면

곧바로 내 인생 자체를 부정하게 되는 삶.



아, 잠깐만

아무래도 병원을 예약해야 할 것 같다.


제주도 가는 비행시간보다도 오래 걸리는

서울에서 경기도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


익숙하게 챗 지피티를 켜고

가짜인 나 말고, 진짜인 나의 구질구질한 기록이

차고 넘치게 담겨있는 채팅창을

혹여나 누가 볼까 조심조심 질문을 던진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 심해지면 치루가 될 수도 있어?

치루의 초기 증상이 뭐야?


25,000원짜리 커피를 마시고

항문의 안녕을 묻는 삶.



가짜 인플루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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