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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세 Oct 25. 2015

해세 하루 - 드로잉 그리고 시

교양있는 생존기


어제까지 수정 작업을 하느라 드로잉 첫 수업을 미리 준비하지 못 했다. 며칠 전부터 준비물을 알리는 문자가 왔지만 마감 기한 내에 글작업을 마무리하겠다는 생각에 드로잉 준비가 자꾸만 밀려난 탓이다. 이번 일주일간 끔찍한 수정 작업에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였지만 드로잉 첫 수업이 있는 일요일을 은근히 기다리는 마음으로 버틸 수 있었다. 내가 교묘하게도 드로잉 날짜를 일요일에 맞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요일과 드로잉이라니, 나른하고 여유로움이 어딘가 닮았다.


수업 전에 드로잉 북과 지우개, 펜을 사기로 했다. 나는 학창시절부터 유난히 문구류를 고를 때 시간이 많이 걸렸다. 종이질, 줄간격, 디자인, 쓰임새 등을 까다롭게 고르다가 몇 백원짜리 공책들 사이에서 한참이나 방황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문방구 아저씨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받으며 신중하게 준비물을 골랐다. 남들에게는 거기서 거기인 공책 하나일지 모르지만, 니체 아저씨가 그랬다, 모든 것은 상징이라고. 내가 고른 드로잉북 하나에서도 나의 취향과 마음가짐이 표현되는 것이다. 그래서 뭔가를 새로이 소유하게 될 때, 조금더 신중해진다. 예전과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가격과 쓰임새 못지않게 나의 취향을 따른다는 점. 그래도 돈이 없어서 나의 취향을 접어두어야 하는 순간은 쪼금 슬프다. 


내 순수한 한달 수입의 절반을 투자해서 등록한 드로잉 수업이다. 수업에 임하는 자세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건하고 진지하게, 하지만 즐기는 마음으로. 모든 일은 처음이 가장 중요하고 또 처음에서의 첫마음 가짐이 중요하다. 내가 가볍게 생각하면 가벼운 일이 되고 소중하게 생각하면 소중한 시간이 된다. 신기하게도 정말 그렇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즐기고자 했다. 나는 실제로 수업 두 시간 동안, 이제까지 그림을 그리지 못해 죽고 싶었던 사람처럼 맹렬하게 몰두했다. 심지어 수업이 거의 끝날 때 쯤에야 내가 안경 조차 쓰지 않아서 드로잉 북에 코를 박고 그리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사실이 나를 기쁘게 만들었다. 뭔가에 흠뻑 빠질 수 있다는 것, 그 느낌이 너무 좋다.


 첫번째 미션은 좋아하는 캐릭터 따라 그리기였다. 처음 내 생각은? 너무 쉬운 거 아냐? 였다. 그래서 2D도 아닌 3D 캐릭터를 선택한 것이다. 평소 좋아하는 <몬스터 주식회사>의 설리반과 와조스키, 부까지도 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시간 제한이 있으니 가볍게 와조스키를 그려보자, 처음엔 그런 여유로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 일 정말 쉬운 것이 없구나 다시 한 번 느낀다. 대충 그렸을 때는 금방 그렸지만 세밀한 부분까지 똑같이 그리려고 노력하자 모든 것이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얼굴 비율이 넓적해서 줄이려고 하면 덩달아 팔 다리까지 줄여줘야 했고 미세하게 위치를 바꿀 때마다 캐릭터의 느낌이 미묘하게 변했다. 선 하나를 어떤 기울기로 그리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글에서 단어 하나, 어미 하나가 중요하듯이 그림에서도 똑같았다. 작은 것들이 모여 큰 것을 만들었다. 나는 와조스키가 그렇게 균형잡히고 매력적인 캐릭터인지 이제까지는 알지 못했다. 와조스키의 가느다란 팔 다리, 그의 통통한 몸통을 그리면서 더욱 그를 사랑하게 됐다. 


사랑하면 세세한 부분까지 알고 싶다. 반대로 세세한 부분을 알면 사랑하게 될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만약 화가여서 모델의 잔머리와 손의 주름까지 자세하게 그려야 한다면 모델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될 지도 모른다. 사랑은 아름다운 곳에서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불완전하고 주름진 곳, 불균형하고 얼룩진 곳을 더듬다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지도 모른다. 문득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주 사소한 부분들이 생각난다. 이빨처럼 돋아난 손톱 끝이나 눈꼬리, 목덜미에 자란 머리카락 같은 것. 그런 것들을 다시 보고 싶다. 


와조스키를 그리다보니 도너츠가 떠올랐다.


수업을 끝내고 보니 나는 오랜만에 홍대에 와 있었다. 벼르고 있던 구제샵을 가볼까 하다가 근처에 서점에 들렀다. 잠깐 휙 둘러보고 가야지 하던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시집의 제목이었다.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이래서는 도저히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유혹적인 문장 때문에 서점을 배회하게 되었고 결국 두 시간 후에 책 두권을 들고 나왔다. 나를 서점 밖으로 쫓아낸 것은 배고픔이었다. 언제나 이 망할놈의 배고픔. 그러나 뭔가를 맘껏 먹게 되겠다는 생각에 행복해지기도 한다.


가방 속엔 고장난 텀블러가 자꾸만 커피를 토해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드로잉북과 책 두권을 사수해야 했다. 겨우 좌석에 앉아서 책을 보는데 그만 커피가 쏟아지고 말았고, 대충 가방에 손을 닦으며 다시 책을 읽으려는데 옆사람이 물티슈를 내밀었다. 책을 적시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으리라. 하지만 나는 옆사람의 호의가 왠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시집의 문장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삭막한 지하철에서 그런문장을 자기 대신 짊어지고 가줘서 고맙다는 뭐 그런 느낌. 나는 읽지 않지만 내 대신이라도 시를 읽어줘서, 그래서 세상에 여전히 시가 있게 해줘서 고마워요, 그런 느낌. 옆사람은 아무 의도가 없었다고 할지라도 나는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소비적이고 사치스러운 다른 무언가를 들고 있더라도 저런 호의를 베풀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하철을 갈아탔는데 이번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나는 책들을 간신히 옆구리에 끼고 책을 읽고 있었는데 내 앞에 앉았던 할아버지가 나를 힐끔대더니 선뜻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할아버지를 의아하게 쳐다봤더니, 그 인자한 표정으로 내게 고개를 끄으덕 끄으덕 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 다정하고 따뜻한 움직임. 그래, 그런 책을 읽으려면 편하게 앉아서 읽어야지. 여기서 오래오래 읽으렴. 


나는 조금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나 혼자의 착각일지라도 그냥 따뜻한 기분을 즐기고 싶었다. 사람들은 문화에 대한 갈증이 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자꾸 잊고 살게 돼서 그게 가끔 슬픈 것이다. 그래서 그런 야릇한 지점을 자극하는 것들을 보았을 때 마음이 동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서 시가 멸종하지 않도록 더욱 맹렬하게 읽어주겠다. 그리고 사람들이 목 마를 때 내 가 읽었던 시 중에서 절묘한 표현들을 건져올려 단비처럼 뿌려주겠다. 


그리고 내가 오늘 받았던 호의처럼, 언젠가 남루한 행색으로 허겁지겁 책을 읽고 있는 청년을 만난다면 따스하게 내 자리를 내주겠다. 내 작은 호의로 책이, 그림이, 문화가 연명할 수 있다면 나는 몇 정거장 쯤 서서 가겠다. 


절묘한 제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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